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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이진 Dec 12. 2020

'나도, 에세이스트' 당선된 날

 퇴근시간이 다가온다. 불현듯, 오늘이 당선자 발표일이라는 것이 떠오른다.

'아, 아직까지 연락이 없는 걸로 봐서는 안됐나 보다. 하긴 처음 해 본 공모전인데 이렇게 쉽게 될 리가 있나.'

 휴대폰을 가지고 화장실에 간다.

'공지사항이 떴는지 확인이나 해보자.'

 볼일을 보며 예스 24의 공지사항을 확인해본다. 마침 수상자 발표 공지가 떠 있다. 휴대폰으로 PC버전을 보려니 글씨가 너무 작아서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아이디와 제목만이 명단에 보인다. 순간 내가 쓴 글의 제목이 무엇이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인했지만 내 글은 없는 것 같아서 자연스럽게 심사평을 읽기 시작한다.

 '어?'

 익숙한 아이디의 앞부분이 갑자기 눈에 들어온다.

 '어? 어?'

 내 아이디와 글의 제목이 '가작'부문에 쓰여있는 것을 확인한다. 화장실 칸 안에서 내적 비명을 지른다. 진짜로 됐다. 마음속으로 대박, 대박을 계속 외친다. 손을 씻으며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확인한다. 너무 좋아서 눈물이 찔끔 나오는 것 같다. 동시에 당선 소식 알림 메일이 휴대폰으로 들어온다.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주변인(물론 아직 부끄러워서 글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들에게 기쁜 소식을 알린다. 지하철 역까지 걸어가는 발걸음이 너무나 가볍고 마스크 속 내 얼굴은 계속 웃고 있다.

 집에 가는 길에 심사평을 읽고 또 읽는다. 영국에서부터 마음속으로 내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고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은 했지만, 내가 잘하고 있는지 확신이 필요했다. 우연한 기회로 YES24에서 주최하는 <나도, 에세이스트>라는 작은 공모전이 매달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응모를 했다. 주제와 분량이 정해져 있었고 주제를 보자마자 소재가 떠올라서 글을 썼다. 이런 공모전은 처음 도전해 보는 탓에 오히려 분량을 줄이는데 좀 애를 먹었다. 당선이 된다면 정말 본격적으로 글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감사하게도 좋은 결과를 얻었다.

 집에 오자마자 이불속에 들어와 여러 가지 상념들을 곱씹어 본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넘쳐나는 코로나 확진자들로 직장과 집만 왔다 갔다 하면서 '이러다가 코로나 블루에 걸릴 것 같아'라는 말을 했었는데 오늘은 진심으로 기분이 좋은 날이다. 갑자기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이 생각난다. 나는 아이들이 '이거 하면 뭐 줘요?', '상품 있어요?' 하는 말을 싫어했다. 외적인 보상에 목을 매는 것보다 내적 성취감이 우선이 되기를 바랐다. 아이들이 동물처럼 행동주의에 익숙해지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그런데 작은 공모전에, 심지어 겨우 가작 당선에 이토록 좋아하며 글을 더 쓰고 싶은 동기가 샘솟는 나를 바라보며 지난 10년 간 내가 아이들에게 너무 고상한 심리를 요구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의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이 원한 것은 그저 작은 마이쮸 하나였을지도 모르는데.



제13회 나도, 에세이스트 공모전

주제 : 버리지 못하는 물건


 <이건 모으고 저건 버리고>


 “그거 어디 갔어? 작년에 입었던 체크무늬 남방 있잖아.”

  “아, 그거.. 너무 오래돼서 이제 못 입어요. 버렸어요.”

  “뭐? 아니 왜 말도 없이 버려? 충분히 몇 년은 더 입겠구만. 하여간 버리는 데는 선수야. 에잇, 제발 마음대로 버리지 좀 마쇼.”

 위 대화는 자주 반복되는 어머니, 아버지의 레퍼토리이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물건에 대한 태도는 서로 극과 극에 자리하고 있다. 뭐든지 모아두는 아버지와 뭐든지 버리는 어머니의 결합은 두 분의 결혼 생활 내내 무던히도 많은 갈등과 다툼을 낳기도 했다.


 내가 초등학생 때의 일이다. 우리 집은 새로운 TV를 구입했다. 아무리 지식인들이 TV를 바보상자라고 떠들어봤자 인터넷이 없던 그 시절, TV는 우리 모두의 친구였다. 새로운 TV에 환한 화면이 켜지고 나자 아버지는 자연스럽게 스티로폼을 다시 상자 안에 넣기 시작하셨다. 그리고는 곧 그 상자를 장롱 위에 올려놓으셨다.

  “아니, 그 상자는 왜 그 위에 올려요?”

 아버지의 행동이 못마땅스러운 듯이 어머니는 날카롭게 질문하셨다.

  “이사 갈 때 다시 넣어서 가져가려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셨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분명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저 상자와 스티로폼을 버리실 것이라는 것을.

 아버지께서는 물건을 쌌던 일명 뽁뽁이도 모아두셨다. 아니, 뽁뽁이뿐만 아니라 집에 들어오는 모든 물건을 모으시는 것 같았다. 나중에 필요할 때 쓸 것이라는 명목으로. 대부분의 물건들이 어머니가 보시기에는 쓰레기처럼 보였으리라. 그러면 어머니는 아버지 몰래 그 물건들을 내다 버리셨다. 그 후에는 어떤 물건이 필요해서 찾으시는 아버지와 필요 없어서 버렸다는 어머니의 불꽃 튀는 대화를 듣게 된다.

 나와 오빠가 성인이 된 후에는 이런 류의 대화가 비단 아버지와 어머니만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오빠가 큰 맘먹고 구입한 ‘이문열 삼국지’ 전집을 어머니가 말도 없이 내다 버리셔서 화가 난 오빠는 며칠 동안 어머니와 대화를 하지 않았다. 수족냉증이 있는 나는 겨울에 족욕기를 자주 애용하곤 했는데 9개월 정도 영국 생활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족욕기를 찾는 나에게 어머니는 예의 그 말을 하셨다.

  “그거 버렸어. 자리만 차지하고 어디다 둘 데가 없어서.”

 이제는 화도 안 날 지경이다. 이미 족욕기를 찾기 시작할 때부터 어머니가 버렸을 것이라는 직감이 왔으니까.


  이렇듯 무소유의 우리 어머니께서 버리지 못하시는 물건은 없다. 오직 버리지 못하는 추억들만 있을 뿐이다. 어머니는 사골을 우려내듯 옛날이야기를 반복하는 걸 유난히 좋아하신다.

  “우리 아부지가 나를 7살에 학교에 보내셨어. 그냥 동네에서 뛰어놀던 아이 손을 낚아채서 학교에 입학시켜 버린 거지. 그러니 뭘 알아 애가? 학교에서 받아쓰기를 봤는데 빵점을 맞아서 선생님한테 된통 혼이 난 거야. 그래서 막 울면서 집에 들어가서 일렀어. 내가 잘못한 게 하나도 없는데 선생님이 때렸다고. 그랬더니 아부지가 할아버지한테 나를 데리고 선생님한테 가보라고 했지. 그다음 날 할아버지 손을 붙잡고 교문 앞까지 가서는 내가 그랬어. ‘할아버지 이제 가. 나 혼자 들어갈게.’ 나도 내가 잘못한 게 있는 걸 알았던 거지. 아하하.”

 어머니는 마치 처음 하는 얘기처럼 신이 나서 말씀하시는데 나는 같은 이야기를 계속 듣는 것이 고역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군말 없이 듣는 이야기가 있다.

  “친엄마는 내가 5살 때 돌아가셨어. 엄마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남은 우리 남매들이 걱정되셨는지 그렇게 동네 사람들을 불러다가 음식을 대접하시더라고. 당신이 돌아가셔도 우리 애들 잘 봐달라고. 너무 어릴 때 돌아가셨으니 보고 싶은 것도 모르고, 바로 새엄마 손에 컸으니까 그냥 새엄마가 우리 엄마인 것처럼 생각하고 살았어. 근데 첫 아이를 낳고 나니까 얼굴도 잘 기억 안 나는 친엄마가 그렇게 보고 싶더라…….”

 모든 물건을 버리고 추억만을 모으시는 어머니. 나는 그런 우리 엄마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김신회 작가의 심사평

<이건 버리고 저건 모으고>를 읽다가 자신의 부모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은 독자들이 있을까요! 어르신들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데도 그 긴 세월을 함께 살아오신 걸까 싶어요. 그리고 그분들의 자녀인 우리 모습을 비교해 봐도 한 핏줄임에도 이렇게 다르다는 사실을 자꾸 실감하게 됩니다.

그 공감대 넘치는 소재를 잘 풀어 써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유머러스한 글 같아 웃음을 지었지만, 끝으로 갈수록 울컥한 부분이 등장해 어느새 엄숙해졌습니다. 글 한 편으로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그걸 해내셨네요.

더불어 물건은 버려도 추억만은 모으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정리와 관련한 명쾌한 해답을 발견한 것 같아 마음이 상쾌해졌어요. 글쓴이의 부모님 이야기는 이것 말고도 무궁무진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부모님 이야기가 글쓴이의 에세이 쓰기에 좋은 소재들이 되어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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