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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이진 May 26. 2022

국제학교 교사 면접 보기

  이야기를 듣자마자 생각했다.


  '아, 이건 내 자리다.'


  제주도에 국제학교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물론, 한국인 교사를 뽑는다는 것은 몰랐다. 2021년 겨울, 나와 같이 비 간헐적인 글쓰기 모임을 하는 동료 선생님으로부터 정말 우연히(아니면 필연적으로) 국제학교에 국어교사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내년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나에게 이건 계시 같았다. 바로 국제학교에 대해서 알아봤다. 제주도에는 총 4개의 국제학교가 있었고, 그중 한 곳에서 한국어 교사를 뽑고 있었다. 타이밍이 기가 막힌다. 나는 영어를 계속 사용하고 싶고, 다양한 문화를 좋아하는데 코로나 시국에 굳이 외국에 가지 않고 마치 외국에 있는 것처럼 일할 수 있는 곳이라니. 바로 이력서와 자소서를 준비했다. 영어로 구직을 하는 것은 처음이라 양식이나 글을 완성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문제는 이 학교에서 상시 모집 중이어서 언제 연락이 올지, 아니면 내가 떨어진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야속하게도 전화를 해서 물어봐도 정확한 답을 듣기 어려웠다.


  또 우연히(아니면 필연적으로) 지인을 통해서 또 다른 국제학교의 모집공고를 전달받게 되었고, 나는 첫 번째 학교에 마음이 있었지만 언제 연락이 올지 모르고 혹시 모르니 두 번째 학교에도 이력서를 넣었다. 두 번째 학교는 굉장히 한국적인 시스템이어서 면접일자와 합격일까지 표기되어 있었다. 서류를 접수하고 바로 그다음 주에 면접일자가 잡혔다. 면접은 한국어와 영어 두 가지로 진행된다고 했다. 말로 먹고살아와서 그런지 면접은 떨리지 않았는데 그걸 영어로 해야 한다니 많이 긴장이 되었다.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이 학교의 건립 배경과 핵심 가치, 교육 방향 등을 공부했다.


  면접 당일, 줌으로 하는 면접이지만 화장을 하고 옷을 갖춰 입었다. 낮이지만 모든 조명을 켜고 거실 식탁에 앉았다. 면접관은 교감선생님(외국인), 행정실장님, 외부면접관 2분이었다. 면접 진행 안내를 듣고 나는 당황했다. 한국어로 물어보면 한국어로 대답하고 영어로 다시 설명, 영어로 물어보면 영어로 대답하고 다시 한국어로 설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꽤나 전문적인 학교와 교육에 관한 질문들을 받았다. 영어로 질문을 받고 영어로 대답한 뒤, 그것을 한국어로 다시 언급하는 것은 그래도 괜찮았다. 하지만 한국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다시 영어로 반복할 때는, 이미 내가 어려운 용어를 한국어로 사용했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영어로 설명하는 것이 고역이었다. 짧은 시간 순발력과 지혜가 필요했다. 어찌 저찌 긴장되는 면접이 30분가량 진행되었고, 다 마치고 나서는 기초적이지만 나름 이중언어를 구사한 면접이었다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내가 면접하는 장면을 녹화하려고 했는데 설정을 잘못해서 녹화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버벅대는 모습을 다시 보는 게 낯간지러긴 해도 추억에 남을 수 있었는데 말이다.


  합격자 발표 날, 나는 제주로 놀러 온 친구와 서귀포 휴양림을 걷고 있었다. 애써 다가오는 시간을 무시하며 한라산이 보이는 전망대까지 올라가서 너른 풍광과 함께 사진을 찍으려는 찰나, 이메일 알림이 왔다.


  "아아아ㅇ아ㅏ아아아아아악 어떡해, 어떡해."

  "왔어? 합격 발표??"

  "응응 아아ㅏ아아아아아."


  한껏 상기된 표정과 긴장된 손으로 메일함을 클릭했다.


  '초등 교원 면접전형에 합격하셨습니다.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설 연휴 이후에 관련하여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합격했다. 제주 국제학교 한국어 교사 자리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내가 제주에 온 것부터 시작해서 뜻하지 않게 알게 된 국제학교 교사 정보와 면접까지 일련의 일들이 나만의 노력이 아닌 것만은 확실했다. 우리와 다른 학기제 덕분에 2022년 8월부터 일을 시작하므로 3-7월까지 즐거운 백수 생활을 하면 된다. 전망대에서 나와 친구는 호들갑을 떨며 축하의 기쁨을 함께 나눴고, 가볍다 못해 통통 튀는 발걸음으로 내려왔다.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가는 길을 택했다. 의원면직을 했고, 해외에서 흔하지 않은 경험들을 했고, 제주도로 내려왔다. 그리고 이제 국제학교 교사가 된다. 새로운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다른 새로운 길이 열리는  같다. 국제학교 교사가 공립학교 교사보다 월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냥 분야가 다른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다르다. '제주도에서 기간제 교사로 있어요.' 하는 것보다 '국제학교 교사로 가게 되었어요.'라는 말에   리액션을 보내준다. 어차피 이것도 계약제 교원인데 말이다. 국제학교는 어떨지, 나와 맞는 곳인지 얼마나 일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백수로서 제주를 즐기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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