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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이진 Oct 05. 2023

[#33 성매매를 막는다는 것]

Anti-trafficking

[2019.06]


  카페인을 섭취한 것도 아닌데 가슴이 뛰고, 손끝이 조금 차가워지고, 눈은 초롱초롱해지면서 지금이라면 모든 시험에서 만점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어. 바로 그 영상을 봤을 때.


  영국에서 9개월 간의 여정이 끝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어. 영국에서 봉사자로서 DTS(제자훈련) 받는 사람들을 보기만 했는데 이번에는 내가 그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 그 프로그램을 하는 곳 중 내가 아는 곳은 하와이밖에 없어서 영국에 있을 때 잠깐 같은 방을 썼던 하와이안 친구에게 물어보기로 했지.

  그 친구에게 DM을 보냈더니 이렇게 답변이 왔어.


   "코나도 좋은데 좀 작은 지부를 선택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특히 네가 한국인들이 많은 것이 싫다면 코나는 비추야. 캐나다는 잘 모르겠고, 미국에서는 오리건이나 캘리포니아, 몬태나에 있는 지부들이 좋아. 그치만 나는 서부 쪽을 추천해."


  알고 보니 그 친구는 LA지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고 하와이로 넘어간 것이더라고. 그 친구가 추천해 준 곳들의 홈페이지를 하나씩 찾아보기 시작했고 캘리포니아 LA 지부의 홈페이지에서 한 영상을 보게 되었지.


  Justice DTS.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바로 Anti trafficking 안티 트레피킹. 직역하자면 불법 밀매매를 막는 것. 구체적으로는 인신매매를 막는 것, 더 구체적으로는 성매매를 당하는 여성들을 그곳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있도록 교육과 회복,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내가 찾던 바로 그런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성매매와 관련한 가장 처음의 기억은, 어머니의 고향인 동두천에 갔다가 정육점 같은 빨간 불빛들 아래에 젊은 언니들이 짧은 치마를 입고 창가에 바짝 붙어 앉아 있는 걸 본 거야. 그 외에는 간접적인 소식이나 뉴스 등을 통해 알고 있는 것이 전부였지. 그와 관련한 지식은 부족했지만 나만을 위한 무언가 보다는 다른 사람을 조금이라도 돕는 일을 하고 싶었어. 그리고 심지어 Los Angeles 라니! '라라랜드'의 배경인 바로 그곳에 가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LA의 건조하지만 후덥지근한 공기가 느껴지는 듯한 기분까지 들더라. 마침 9월에 시작하는 프로그램이 있었고 나는 8월까지 기간제 계약이 되어 있었기에 딱이다 싶었지. 바로 이메일로 문의를 했고, 지원서를 쓰고 인터뷰까지 하게 되었어. 그나마 영국 갈 때 해봤던 비슷한 절차이기에 이번에는 긴장감이 덜했어. LA와의 시차 때문에 의도치 않게 출근하는 지하철에서 전화 인터뷰도 했어. 비몽사몽 한 아침, 갑자기 영어로 대화를 하게 되었으니 뭐라고 했는지 잘 기억이 안나는 건 당연한 것 같아.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여름방학이 시작된 아침, 그들은 내 지원서를 놓고 기도를 하고 회의를 했다고 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와 함께하고 싶다는 합격 메일을 받았어. 교육비의 일부를 달러로 송금하고 난 후, 내가 정말 LA로 가게 되었다는 게 조금 실감이 나더라.


  출국일까지의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어. 의원면직 후, 두 번째 커다란 모험이 기다리고 있는 터라 매일 같이 여러 지인들을 만나며 기대감을 나누었어. 그중에 영어회화 모임에서 만난 미국인 친구들이 송별파티를 해 주면서 엄청 강조한 게 있었어.

   '절대 가방이나 핸드폰 등을 카페나 식당에 두고 다니지 마라!'

   '한국과는 다르다!'

  처음 가는 미국인지라 진지하게 친구들의 조언을 귀에 꼭꼭 눌러 담으며 LA로 향했지.





*메인 사진 출처 : https://www.vecteezy.com/free-vector/human-traffic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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