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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기 Apr 14. 2020

친밀감을 파는 세상

임블리 씨, 그 많던 블리님들은 누가 다 먹었을까

우리가 잃어버린 기술

미국인 중 43퍼센트가 자신이 타인과 맺는 관계가 무의미하며, 자신이 정서적으로 소외되어 있다고 생각한답니다. 특히 X 세대는 가장 외로운 세대입니다. 이들은 디지털 기기를 다른 집단보다 많이 사용하며 온라인상의 관계 맺기에 열을 올리지만, 실제로는 단절감을 가장 많이 느끼는 세대입니다. 친밀함의 후퇴는 전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상당수의 선진국 사회들은 외로움이란 전염병에 직면해있고 이로 인해 마음챙김Mindfulness 은 하나의 확고부동한 트렌드로 뜬 지 오래입니다. 우리는 타인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까를 익히기 위한 다양한 사회의 학교를 찾아가고 그곳에서 어떻게 마음의 상처를 덜 받고 타인들과 깊은 유대관계를 쌓을 수 있을까를 배웁니다.


팬덤과 친밀감 사이

저는 최근 한국의 중견 쇼핑몰 임블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임블리는 작년부터 호박즙 문제, 부패성 화장품 판매, 지적재산권을 보호한다는 미명 하에 법적 위임 단체를 이용한 합의금 장사, 상표권 침해 등 셀 수 없이 많은 실책을 범했습니다. 이로 인한 소비자 손실은 눈덩이처럼 커졌지만, 모회사인 부건 F&C는 성의 없는 사과를 하면서도 뒤로는 소비자를 고소하는 나쁜 관행으로 일관해왔지요. 오늘은 임블리가 '블리님들'이라 부르는 팬덤에 대한 생각을 해보려고 합니다. 쇼핑몰 임블리에게 '블리님'이라 불리는 두터운 팬들의 힘은 강력했습니다. 그들은 마치 종교 전도자의 마음으로, 임블리 브랜드의 성장에 견인차 역할을 했어요. 원래 팬덤(Fandom)이란 말도 라틴어로 교회 내 종교적 열정으로 넘치는 이들을 뜻하는 판타스티쿠스Fantasticus 에서 온 팬 Fan과 세력의 범위를 뜻하는 접미어 Dom이 붙어서 만들어진 말이었어요. 그만큼 특정 셀러브리티를 찬미하는 집단에는 이런 유사종교적 열망이 담겨있니다.


돈을 위해 친밀감을 팔다

심리학자 매튜 켈리는 <친밀감>이란 책에서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자신을 성숙하게 드러내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무엇보다 친밀함의 실천을 위해 자신과 상대방 간의 공통된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같은 목적을 함께 나눌 수 있을 때 그 인간관계는 특별해진다는 어찌 보면 진부한 이야기를 하죠. 중국의 인터넷 셀럽인 왕홍들 사이에선 15도 미녀와 45도 미녀란 표현이 있다네요. 45도 미녀란 목을 45도 들어서 우러러보는 탕웨이 같은 확고부동한 인기 연예인을 뜻한 답니다.  반면 15도 미녀는 약간의 깨끔발만 들고도 내가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아 더욱 친밀감을 느끼는 이들을 뜻한데요. 일반 소비자들은 이 15도 미녀에게 흠뻑 빠져듭니다.

                                                                                                                                         

'임블리'란 넘볼 수 없는 연예인이 아닌, 지근거리의 언니처럼 느껴졌을 거예요. 임블리의 팬들은 이런 친밀감의 호소에 매력을 느꼈을 겁니다. 매튜 켈리는 ‘인간관계란 당신과 나의 것에서 우리의 것으로 가는 여행이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임블리에게 '블리 님'들은 결코 서로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기업의 재무적 가치를 향상하는 수단일 뿐이었지요. 팬은 시녀가 아닙니다. 팬과 셀럽 사이에는 헤게모니 Hegemony가 있으며, 그 힘은 서로에게 작용합니다. 임블리에게 팬은 상호 간의 삶을 구축하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 사이에 대화적 공동체가 들어설 자리는 없었지요.


친밀감은 돈이된다

세상에서 가장 나쁜 인간은 인간을 수단으로만 쓰는 자입니다. 사람은 사랑받고 누군가와 친밀해지려는 근원적인 욕망이 있어요. 이 친밀감을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사용할 때, 팬들은 얼마나 처참한 존재가 될까요? SNS를 이용해 물건을 파는 이들은 하나같이 이 친밀감을 초기에 무기로 내세워, 사람을 끌어모읍니다. 그들의 방법이 악하다고 비평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금전적인 대가를 통해 누군가와의 '제조된 친밀감 Manufactured Intimacy'을 구매해야 하는 존재가 된 지 오래입니다. 얼마나 평소에 친밀감에 굶주렸길래, 근거 없이 구매 추천을 해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추천했다는 이유로, 물건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들과 우리사이에 놓여진 마음의 거리는 개인이 느끼는 주관적인 심리적 거리감일 뿐입니다. 거짓 친밀감에 속아  인간에게 중독된 자의 맹목은 무서웠습니다. 


블리들을 위한 편지

임블리 씨. 지금껏 신상품이 나올 때마다 소환했던 당신의 '블리님'들의 안녕을 진심으로 빌어보세요. 이야말로 지금껏 그들을 수단으로만 착취해온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예의'입니다. 그리고 블리 님들에게도 한마디 해야겠어요. 친밀감을 얻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온건한 나 자신'이 되는 것이라고 하네요. 결국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 나 스스로 서지 못한 사람은 관계상의 비대칭성을 경험하게 됩니다. 임블리 씨! 고대 로마인들은 타인의 안부를 묻는 편지에서 이렇게 글을 마무리했답니다. "Si vales bene valeo : 당신은 잘 계신가요? 저는 잘 있습니다"라고요. 나의 안녕보다 타인의 안녕이 우선이고, 그것이 확보될 때 내 삶의 안녕도 이뤄진다는 믿음, 그것을 가지고 생을 살아내 보자고 했던 그들의 말로 오늘의 글을 마무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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