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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기 Mar 20. 2021

굿바이, 엘사

보석 디자인의 전설, 엘사 퍼레티를 보내며

엘사 퍼레티를 생각하며

'나도 나이가 들었구나'라는 걸 부쩍 의식하게 될 때가 있어요. 지금껏 제가 연구하고 쓰고 강의하는 테마, 바로 패션의 세계에 눈을 뜨게 해 준 이들이 주변에서 하나씩 사라지는 것을 볼 때입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의 슬픔은 자꾸 회고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라지요. 제가 좋아하던 보석 브랜드 티파니의 대표 디자이너인 엘사 퍼레티가 지난 목요일, 향년 80세의 나이로 타계했습니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모두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는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이 떠오릅니다. 인간은 일방향의 시간 속에서 운명적으로 퇴화되는 유기적인 존재입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유기체의 선 Line과 형태 Shape를 볼 때 매혹을 느끼는 것은 이런 공통된 운명이 만들어낸 '끌림'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엘사 퍼레티는 유명한 패션모델이었고 자선사업가이기도 했어요. 주얼리 분야에서 엘사가 없는 티파니는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녀가 디자인한 컬렉션은 보스턴 파인아트 미술관, 브리티시 뮤지엄, 휴스턴 미술관 등 굴지의 기관에서 소장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부고 소식에 티파니의 한 중역은 "엘사는 단순히 디자이너가 아닌 그 자체로 삶의 방식이었다'라고 말합니다. 능숙한 장인으로서 보석 디자인의 세계에 혁명을 일으킨 사람이었죠. 저는 엘사 퍼레티의 디자인을 유독 좋아했습니다. 과거 티파니 전시 때 특별 도슨트로 관객 분들을 만나곤 했는데요. 1837년에 설립된 전통적인 보석 하우스지만, 퍼레티가 티파니와 협업을 시작한 1974년 이후로 티파니는 전통적 장인의식과 함께 70년대에서 90년대에 이르는 현대사의 미적 감성을 잘 포용하는 디자인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젊은 날 퍼레티는 인테리어 공부를 위해 건축에 투신했고, 건축의 논리를 익히기도 했죠. 그녀의 디자인에 드러나는 일련의 구조적인 단단함은 이런 과거의 흔적입니다.

피렌체 출신으로 로마에서 성장한 그녀는 1960년대 뉴욕으로 이주하며 패션모델로 활동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당시 미국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로 불리던 조르지오 디 산탄젤로와 미국 패션계에 '바디 컨셔스 : 신체를 고혹적으로 감싸안는 실루엣'으로 유명세를 얻은 할스턴 Halston의 보석 라인을 맡아 디자인을 시작했지요. 특히 할스턴과는 막역한 친구였습니다. 티파니에서 그녀가 처음 내놓은 컬렉션은 '순삭' 되듯 완판이 되었습니다. 단순하고, 접근 가능하며, 언제나 착용할 수 있는 그녀의 보석 디자인은 미국의 새로운 세대의 감성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것이었어요. 그녀의 커프스와 오픈 하트 디자인, 깍지콩의 형상을 닮은 디자인 모두 오늘날 티파니를 대표하는 시그너처 디자인입니다. 사실 티파니 전체 매출의 7퍼센트를 차지할 만큼 그녀의 컬렉션은 인기가 많죠.

우리는 왜 보석에 끌릴까요? 이 말은 광물질이 가지고 있는 영속성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인간은 앞에서 말했듯 태어나는 순간부터 폐기를 향해 가는 유기적 존재이기에, 더 오랜 시간을 버티며, 연단과 성장의 시간을 겪어내는 보석을 보며 감정의 친화성을 갖게 되죠. 그녀의 디자인을 살펴볼 때마다, 푸가라는 악곡의 형식을 떠올리곤 합니다. 엘사 퍼레티는 긴 세월을 보석 디자인에 바쳤습니다. 그녀가 남긴 작품들은 개별 악기의 개성을 그러모아  4중주를 연주하는 콰르텟의 조화를 닮았어요. 음악에서 하나의 중심 선율을 각 악기가 서로 주거니 받거니, 모방하고 변형하기도 하며 조화를 향해 가는 푸가곡을 들으며 그녀가 남긴 디자인을 하나씩 반추해봅니다.

패션의 역사를 공부하는 제겐 이런 부고 기사가 마음이 아프면서도, 젊은  패션에 빠져들게 했던 전설의 디자인을 하나씩 보내야 하는  아련함이 저를 움직이게 합니다. 일종의 엔진처럼요. 그녀의 뒤를 잇는 좋은 디자이너를 찾아내는 , 시대의 감성을 대변할 형태와 선과 미학을 '언어' 풀어내는 지치않는 이런 이유겠지요.  가요 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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