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씨어터 창의 <굿EXORCISM-사도> 리뷰
저는 매주 금요일이면 아르코 예술극장에 갑니다. 이곳에선 현대무용공연들이 자주 열리는 편입니다. 최근 한국의 무용전문매체인 댄스포스트코리아의 필진으로 활동하게 되면서, 더 많은 공연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과거 오마이뉴스의 필진으로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 발레단의 공연을 빼놓지 않고 리뷰를 했었거든요. 당시 서울 국제무용제 시즌이 되면, 세계 유수의 현대무용단이 내한하게 되는데, 저로서는 그들의 공연 속 몸으로 표현하는 사회적 의제들이 와닿아서 매일 극장에 가서 살다시피 했던 적이 있습니다.
댄스씨어터 창의 <굿(Exorcism)-사도>를 보았습니다. 국내에서 연출된 현대무용작품으로는 장르 간 융복합 시대를 여는 첫 시도였습니다. 무용은 지금껏 매우 독립적인 장르였습니다. 몸으로 표현하는 무언의 세계를 너무나 당연히 받아들여야 했고, 언어의 부재로 인한 소통의 어려움은 관람객의 미적 체험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였지요. 하지만 신체로 의미를 발화해야 하는 무용의 역동성과, 그것이 만드는 전율을 한 번이라도 경험하면, 무용은 연극이나 뮤지컬 장르와 다르게 더 오래 기억에 각인이 되더군요.
이번에 본 <굿-사도>는 한국의 역사 속 가장 참혹한 비극 중 하나로 기록된 영조와 사도세자 간의 사건을 다루었습니다. 여기에 최근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아동학대 사건인 정인이의 사연을 연결해 수미상관의 구조를 가진 극으로 만들었습니다. 혹시 여러분, 미장 아빔(mise en abyme)이란 개념을 들어보셨습니까? 이것은 극의 서사를 복합적으로 만들기 위해 마치 액자 속 그림을 보듯, 이야기 속에 이야기를 넣어서 짠 것입니다. 무용 굿 사도는 서사는 과거와 현재를 마치 베틀의 북 shuttle처럼 오가며 한 장의 직물을 짜듯, 관객들의 마음속에 아동학대라는 현대의 사회문제를 환기시키며 아픈 상처의 무늬를 아로새깁니다.
이번 현대무용작품은 많은 여타의 장르들을 끌고 들어옵니다. 장르 간 융복합 공연입니다. 현대연극과 컨템포러리 서커스를 비롯해 라이브 연주로 듣는 거문고 음악,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집단 검무, 극의 의미를 강렬하게 조형하는 조명 디자인, 이외에도 과거와 현실을 오가는 관문인 대형 거울과 극장 바닥을 흐르는 물의 이미지를 만들어낸 무대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많은 요소들이 이음새 없이 맞물리며 서사의 실타래를 풀어가는 장치로 사용됩니다.
생각할 사思에 슬픔 도悼. 사도세자의 뜻을 한자로 풀면 말 그대로 생각할 때마다 슬픔을 억제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영조는 자신의 아들인 사도세자가 소론과 어울리며, 자신의 통치철학에 대해 반감을 표출하자마다 관련이 없는 이유를 대며, 결국 정치적 죽음으로 몰아넣습니다. 실제로 영조는 아들인 사도 세자를 뒤주에 넣어 죽이면서, 통풍이 되지 않게 벽면에 유약을 발랐다고 하지요? 신하들이 밤중에 뒤주 틈새로 물과 음식을 넣어준 것을 목격하고 이를 막기 위해 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공기가 통하지 않는 그 속에서 사도세자는 8일간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며 죽어갔습니다. 이런 비극적 죽음은 현대에서도 아동학대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아이들을 부모의 기분에 따라 때리고 방치하고, 심지어는 여행용 트렁크에 담아 유기한 아이의 죽음은 최근 이 사회의 뉴스란을 달군 각종 아동학대 사건의 일부일 뿐입니다. 연출가는 이 아이들의 죽음에서 사도세자의 죽음을 보았던 것 같습니다.
“내가 바란 건 아버지의 따뜻한 눈길 한 번, 다정한 말 한마디였소”라고 울부짖으며 죽음을 만난 사도세자는 극 중에서 부모의 학대로 죽은 여자아이와 만납니다. 사도에서 여아로 연결된 맞닿은 팔 위로 굴러가는 저 수정구슬은 마치 이 두 사람이 흘려야 했던 눈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네요. 생각보다 무용작품이 서커스와 퍼포먼스가 들어가면서 공간적으로 매우 역동성을 살렸습니다. 사도세자가 죽어가는 순간, 집단으로 칼춤을 추는 이들이 들어와 사도의 목에 칼을 댑니다. 물론 이는 전통 그대로의 검무가 아닙니다. 현대적으로 다시 재해석을 한 탓에, 드라마적 극화를 위해, 감정의 고조를 위한 장치로 효과적으로 쓰일 뿐입니다. 사도세자라는 한국적 소재를 고른 탓에, 현대무용 작품이지만, 그 속에서 고전무용과 현대적 서커스, 요요 yoyo를 이용한 퍼포먼스까지 알차게 넣어서 균형감 있게 연출해냈습니다.
한국적인 소재인 사도세자의 죽음이 주는 사회적 울림이 컸습니다. 아크로바트가 결합된 현대무용 작업은 ‘이미 죽은’ 존재의 슬픔을 선연하고 역동적으로 드러내며, 사도세자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추는 집단적 검무는 사도세자와 아동학대로 죽어간 아이의 죽음이 우리 사회 전체의 책임임을 묻는 것 같았습니다. 모든 것들이 마치 관객의 심장을 향해 힘껏 시위를 당겨 쏜 화살처럼 꽂힙니다.
우리 사회 전체에 만연한 책임의식의 부재를 선연하게 돋을새김 할 요량으로 말이에요. 보고 난 후엔 반드시 무용수들이 등장한 텅 빈 무대를 꼭 응시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네요. 장르 복합적인 공연들은 흔히 산만하기가 쉽습니다. 뭔가를 융합한다는 것은 결국은 극의 요소들의 비율을 정하는 것이에요. 비율을 뜻하는 라틴어 Ratio는 그 속에 '죽음'이란 뜻도 담겨 있답니다. 어떤 것을 살리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죽여야 하는 숙명을 연출가는 마주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 점에서 김남진 안무가의 이번 공연은 꽤 좋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