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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기 May 27. 2022

영화 자산어보를 보고

탁월함의 깊이를 지키는 법  


두려움이 친근함으로 변할 때

영화 <자산어보>를 봤습니다. 미려한 흑백의 화면으로 그려낸 흑산도의 풍광과 그 속에서 무르익는 인간들의 관계에선 신선한 바다내음이 났습니다. 중국은 기원전 4세기에 산해경(山海經)을 통해 어류에 대한 지식을 기록했습니다. 산해경은 중국의 식물학/동물학의 최초 기록서로서 고대 해양과 관련된 전설과 설화를 담은 탓에 중국인들의 해양 관련 상상력의 보고로 자리 잡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흔히 <세종실록 지리지>처럼 단순하게 물고기의 이름과 산지를 기입하여 공납 목적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심해와 표해를 오가며, 그 생물자원을 연구대상으로 바다를 받아들인 것은 17세기나 되어야 시작되었고요. 그런 맥락에서 19세기 초『자산어보』는 우리나라 최초의 어류 생태서입니다. 그 의의가 크죠. 



정약전: 융합형 인간의 전형

다산 정약용의 둘째 형이었던 정약전이 이 영화의 주인공입니다. 흑산도에 유배를 왔을 때 그에게 생생한 자연의 관찰기록과 지식을 전해주는 창해라는 인물과 함께 자산어보를 써갑니다. 저는 영화 속 정약전의 모습에서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주의를 이끌었던 백과사전파 철학자들을 떠올립니다. 철학자 디드로가 유리공장에서 유리제품을 만드는 과정을 기술하며 언어로 설명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머리카락을 한 움큼씩 빠지는 고통을 겪였다고 하더군요. 놀라운 건 정약전이 물고기의 이름을 짓고, 그 특성을 묘사하며 글로 남기는 과정이 정교하다는 점이었습니다. 그가 타인에게 질문하고, 담론 밖의 세계를 알려는 순수한 호기심을 보일 때, 저는 그에게서 내면의 깊음을 가진 존재의 눈빛을 봤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삶의 자리가 실용이 되고, 지식이 되려면 어떤 자세가 필요한지 그는 영화 속에서 찬연하게 보여줍니다. 



탁월함은 지워지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정약전이 이 오징어 항목을 정리하는 부분이 나오는데요. 이때 설경구 씨의 목소리로 듣는 대사가 귀에 꽂혔습니다. “오징어의 주머니에는 먹물이 가득 차 있다. 만일 적이 나타나 침범하면 그 먹물을 뿜어내어 주위를 가리는데, 그 먹물로 글씨를 쓰면 빛깔이 매우 윤기가 있다. 단 오래되면 벗겨져서 흔적이 없어진다. 그러나 다시 바닷물에 넣으면 먹의 흔적이 다시 새로워진다고 한다" 윤기 나는 오징어 먹물이 시간의 흐름 속에 옅어지고, 그 흔적이 사라진 듯하다가 왜 바닷물에 넣으면 그 흔적이 원래대로 복원되는 걸까요? 이 대사가 주는 마음이 울림이 넉넉합니다. 성취란  시간이 지나면 지워지기 마련입니다. 



새로운 것이 나오고, 더 나은 것이 대체하지요. 그럼에도 성취를 가능케 한 탁월함의 지표는 변하지 않습니다. 두려움으로 가득한 채 만났던 흑산도가, 공포의 검정이 아닌, 깊고 현묘한 검은색의 섬이 되기까지 정약전에게는 '이방인의 따스한 호기심'이 있었습니다. 호기심은 로컬의 생생한 지식을 잘 알고 있는 또 다른 지식인과의 만남을 통해 빛을 발하게 되죠. 그가 '나는 성리학을 통해 서양의 기하학과 천주학을 받아들였다'라고 하면서요. 관계를 통해 지식은 깊어지고 지금껏 정약전이 누적해왔던 다양한 시각은 현장의 지식을 더욱 정밀하게 기억하고 정리하는 추동력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지식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흐뭇했던 것은 어느 시대나 진정한 지식인에겐 '호기심'이 충만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질문할 줄 알고요. 영화 속 대사처럼 '질문하는 게 공부야, 암기만 하니 이 땅의 성리학이 썩어버렸다'는 정약전의 말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며 '공부'를 하는 저에게도 가슴 한편을 쓸어 담게 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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