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네트 리뷰 사랑의 환상이 남긴 상처

사랑이라는 폭력, 노래하는 비극

by 필름과 펜

영화 아네트 (Film#26)


레오 카락스 감독의 '아네트'는 독창적이며 평가가 극명하게 나뉘는 영화다. 2021년 칸 영화제 개막작이자 감독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전통적인 서사를 거부하고 록 오페라 형식으로 한 가족의 파국을 그려낸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성 스루(Sung-Through)' 기법이다.


거의 모든 대사가 노래로 이루어진 이 방식은 처음엔 낯설지만, 점차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날것 그대로 전달하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일상적 대화마저 멜로디에 실리면서, 현실과 무대 사이의 경계가 흐릿해진다.


스탠드업 코미디언 헨리와 오페라 가수 안의 사랑은 처음부터 어딘가 불안정하다.


두 사람 모두 무대 위에서 빛나는 공인이지만, 그들의 사랑은 관객의 시선과 박수갈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인형, 아이, 그리고 착취


영화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요소는 헨리와 안 사이에서 낳은 딸 아네트를 마리오네트 인형으로 표현한 점이다.


처음엔 당혹스럽지만, 이는 곧 영리한 선택임이 드러난다.


나무 인형인 아네트가 불빛 아래서 노래를 부를 때, 우리는 그녀가 단순한 아이가 아니라 부모에 의해 조종되는 존재임을 직감한다.


인형으로 아네트를 표현한 아이디어는 Sparks 형제의 원안에서부터 있었다.


당초 2010년 컨셉 앨범과 투어 공연으로 기획되었을 때, 그들은 실제로 장난감 인형을 들고 다닐 계획이었다.


카락스는 이를 영화로 옮기면서 CGI 사용을 거부하고 실제 인형을 사용했다. 신생아는 연기를 할 수 없고, CGI는 그의 미학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헨리가 아네트의 재능을 무대에 올리는 장면들은 섬뜩하다. 헨리는 안이 죽고 나서 아기를 쇼비즈니스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과정이 노골적으로 펼쳐지면서, 우리는 부모의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착취를 목격하게 된다.



상징으로 가득한 화면


극 중, 안(마리옹 꼬띠아르)의 모습


카락스 감독은 영화 곳곳에 상징을 배치한다.


안 곁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사과는 원죄를, 좁은 수영장은 억압된 감정을, 광활한 바다는 해방을 암시한다. 특히 안이 폭풍우 속에서 바다로 떨어지는 장면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헨리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행위로 읽힌다.


수영장과 바다의 대비는 이 영화의 핵심 메타포다.


통제 가능한 인공적 공간인 수영장에 갇혀 있던 인물들이, 결국 거대하고 예측 불가능한 바다로 나아간다. 안은 바다에서 죽음으로써, 아네트는 바다에서 노래함으로써 헨리의 그림자에서 벗어난다.



감독의 고백: 비극에서 탄생한 예술


(카락스 감독과 딸 나스티야의 모습)


이 영화를 더욱 절절하게 만드는 것은 카락스 자신의 삶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감독과 딸 나스티야가 함께 나오는 오프닝으로 시작한다.


러시아 여배우 예카테리나 골루베바는 카락스의 파트너였으나 2011년 45세에 세상을 떠났고, 당시 겨우 여섯 살이던 딸을 카락스가 혼자 키우게 되었다.(감독은 딸에게 생물학적 아버지는 아니다)


카락스는 영화 말미에서 특수 분장을 통해 헨리를 자신과 닮게 만든다.


감옥에 갇힌 헨리가 카메라를 피하며 "Stop watching me"라고 말하는 장면은 단순한 연출이 아니다.


파트너의 죽음 이후 홀로 딸을 키우며 느꼈을 좌절과 죄책감, 그리고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두려움까지 담겨 있다.


헨리는 나르시시즘과 폭력성을 지녔지만, 동시에 자신의 결함을 인지하는 비극적 인물이다.


사랑의 방법을 모른 채 결국 사랑하는 이들을 파괴한다.


영화 마지막 면회 장면에서 아네트와 아버지가 나누는 대화는, 순수한 감정만으로 이루어진 유일한 노래다. 이 순간 영화는 지적 유희를 멈추고, 한 아버지의 절실한 사죄로 변한다.



용서할 수 없는 이기심



영화의 마지막, 인형이던 아네트가 진짜 소녀로 변하는 순간은 강렬하다.


그녀는 면회 온 아버지에게 "Stop calling me"라고 말한다. 이는 단순한 거부가 아니라, 자신을 도구나 소유물로 봤던 부모로부터의 독립 선언이다.


아네트가 부모를 용서하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헨리는 딸을 착취했고, 안은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딸을 방치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욕망을 우선시했고, 그 대가를 아이에게 떠넘겼다. 아네트의 거부는 세대 간 상처의 대물림을 끊어내는 행위다.



아담 드라이버의 한계: 그러나 그것이 의도였을까



아담 드라이버는 훌륭한 배우지만, 스탠드업 코미디언을 연기하기엔 무언가 부족했다.


그의 공연 장면들은 긴장감은 있으나 유머는 결여되어 있었다.


흥미롭게도 카락스는 원래 호아킨 피닉스를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피닉스는 만남을 제안받았지만 너무 수줍어서 거절했다고. 만약 피닉스가 헨리를 연기했다면? '조커'에서 보여준 그의 광기 어린 코미디 감각이 이 역할에 더 잘 맞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의도된 것일 수도 있다.


재능 없는 코미디언이 추락하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실제로 웃기지 않아야 했을 테니까.


헨리의 쇼는 스티브 마틴이나 앤드류 다이스 클레이를 떠올리게 하지만, 그들이 가진 진정한 카리스마는 부족하다. 그것이 바로 헨리라는 인물의 본질이다. 그는 무대 위에서조차 진정성을 잃어버린 아티스트다.



뮤지컬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 컨셉 앨범에서 영화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단순히 영화화한 작품들과 달리, '아네트'는 처음부터 영화로 기획된 뮤지컬이다.


Sparks 형제는 2010년부터 이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당초 컨셉 앨범으로 기획되었고, 투어 공연을 위해 등장인물을 네 명으로 제한했다. 러셀 마엘이 헨리 역을, 론 마엘이 지휘자 역을 맡고, 오페라 가수가 안 역을 맡을 예정이었다.


2012년 칸 영화제에서 운명적인 만남이 일어났다. 카락스는 'Holy Motors'로, Sparks 형제는 잉마르 베리만에 관한 뮤지컬 제안으로 에 있었다.


카락스는 베리만 프로젝트는 거절했지만, Sparks가 보낸 '아네트' 데모를 듣고 2주 만에 연락했다. "이걸 내 다음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1970년대부터 Sparks의 팬이었던 카락스에게, 이는 예정된 만남이었다.


그렇게 컨셉 앨범은 8년의 작업 끝에 칸 영화제 개막작이 되었다.


원래 80곡이 넘던 노래는 42곡으로 압축되었고, 카락스는 "Girl from the Middle of Nowhere"와 "Sympathy for the Abyss" 같은 새로운 곡들을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노래하는 아이' 콘셉트가 추가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카락스가 배우들에게 현장에서 라이브로 노래하도록 요구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뮤지컬 영화가 사후 더빙을 하는 것과 달리, '아네트'는 촬영 중 실시간으로 녹음했다.


마리옹 꼬띠야르의 오페라 파트만 전문 소프라노가 대역했을 뿐이다.


이런 선택 덕분에 배우들의 감정이 목소리에 생생하게 담겼다.



예술가와 관객: 무대 위의 삶



이 영화는 예술가와 관객의 관계를 깊이 탐구한다.


헨리는 코미디언이 된 이유를 "사람들을 무장해제시키기 위해서.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그의 무대는 점점 진실에서 멀어진다.


반대로 안은 매일 밤 무대에서 죽는다. 오페라의 비극적 히로인을 연기하며 극도의 감정을 관객에게 전달하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무대 뒤편이나 어둠 속 실루엣으로만 보인다. 예술로서는 높이 평가받지만, 관객과의 거리는 멀다.


영화는 계속해서 무대를 보여준다. 코미디 클럽, 오페라 하우스, 무대 뒤, 오케스트라 피트, 기자회견장, 스타디움, 심지어 법정까지도 극장 안에 설치되어 있다. 카락스는 삶 자체가 하나의 공연이며, 우리 모두가 관객이자 배우임을 보여준다.


영화 속 가십 뉴스 프로그램이 등장하고, 파파라치는 헨리와 안의 삶을 관객의 비유에 맞게 마음대로 다룬다. 이는 유명인의 삶이 어떻게 미디어에 의해 상품화되고 소비되는지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헨리는 카메라를 향해 "Stop watching me"라고 말하고 벽을 향해 돌아선다. 관객은 이제 쇼를 충분히 봤으니 떠나라는 것이다. 이는 헨리가 자신의 관객에게 던지는 말이자, 동시에 카락스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우리는 왜 타인의 비극을 소비하는가?...



결국 '아네트'는 사랑에 대한 영화다.


하지만 낭만적인 사랑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지배와 소유, 착취에 관한 이야기다. 헨리는 안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녀를 통제하려 들고, 안은 아네트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자신의 커리어를 우선시한다.


영화에는 #MeToo 운동을 연상시키는 장면도 등장한다.


헨리의 과거 여성들이 나타나 그의 독성 남성성을 폭로하는 순간이다.


이 장면은 2017년 이후 터져 나온 수많은 폭로를 떠올리게 한다. 카락스는 남성 예술가의 폭력성을 미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얼마나 파괴적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진정한 사랑은 무엇인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유를 허락하는 것이 사랑인가, 아니면 소유하고 통제하려는 욕망이 사랑인가?


아네트가 마지막에 보여주는 거부는, 왜곡된 사랑으로부터의 해방이다. 그녀는 더 이상 부모의 환상을 채워주는 도구가 아니라, 독립적인 인격체로 거듭난다.



놓칠 수 없는 비하인드 스토리들


폭풍우 장면의 진짜 물: 배 위의 왈츠 장면은 처음엔 실제 바다에서 촬영할 계획이었다고~


하지만 Spaks 형제의 요청으로 실내 수조에서 촬영되었다.


카락스는 유럽에서 가장 큰 실내 수조를 찾아냈고, 실제로 배를 흔들고 물을 뿌려 배우들이 진짜로 미끄러지도록 만들었다. 이는 인공적이면서도 실제적인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So May We Start'의 또 다른 의미: 개막곡 'So May We Start'는 단순한 오프닝 넘버가 아니다. 2021년 칸 영화제는 코로나로 인해 2020년이 취소된 후 돌아온 첫 페스티벌이었다. 러셀 마엘은 이 곡이 "시네마가 다시 함께 모이자"는 의미의 페스티벌 비공식 주제가가 되었다고 말했다.


'아네트'는 편안한 영화가 아니다.


영화가 주는 불편함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진실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 사랑과 집착, 예술과 착취의 경계에서 이 영화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모든 이에게 추천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라는 매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궁금한 이들에게는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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