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먼 훗날 우리 리뷰 사랑이 무채색이 되는 순간

이별의 색깔을 묻다

by 필름과 펜

영화 먼 훗날 우리 (Film #59)

common (88).jpg 샤오샤오 역의 "주동우"와 젠칭 역의 "정백연"

유약영 감독의 영화 '먼 훗날 우리'를 보며 나는 멜로드라마가 가진 본질적 잔인함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우리가 아무리 후회해도, 아무리 그리워해도 시간은 무심하게 앞으로만 흐른다. 이 영화의 슬픔은 바로 그 시간의 일방통행에서 온다.


2007년 춘절, 기차 안에서 만난 젠칭과 샤오샤오. 그리고 10년 후 2017년, 비행기 안에서의 재회. 기차가 비행기로 바뀌었고, 방향은 고향행에서 베이징행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그들이 얼마나 멀리 왔는지, 그리고 그 거리가 얼마나 되돌릴 수 없는 것인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영화의 교차 편집 구조를 통해 우리는 이미 그들이 헤어졌음을 안다. 그래서 행복했던 과거의 모든 순간이 더 아프다.


이 영화에서 진짜 실질적 주인공은 세 명이다. 젠칭, 샤오샤오, 그리고 도시 베이징이 아닐까.


베이징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그것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 연인이자, 그들을 갈라놓은 장벽이며, 동시에 그들이 꿈꾸던 대상이다. 젠칭과 샤오샤오는 사실 서로와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니라 베이징이 약속하는 성공과 사랑에 빠진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자신의 고향을 떠나 베이징으로 온 수많은 젊은이들!... 그들에게 베이징은 희망이자 지옥이다.


중국의 호구제도 아래에서 다른 도시 출신이 베이징에서 자리 잡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영화는 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젠칭과 샤오샤오가 처한 현실의 무게는 바로 이 사회 구조적 문제와도 관계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되었다.


흑백과 컬러, 그 반전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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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영화가 과거를 흑백으로 표현한다면, 이 영화는 반대다. 현재가 흑백이고 과거가 컬러다. 왜일까?


일반적인 해석은 이렇다. 과거가 더 생생했기 때문에, 가난했지만 사랑했던 그때가 진짜 삶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나는 다르게 본다.


흑백은 완결을 의미한다. 2018년 재회한 그들의 현재가 흑백인 이유는, 그들의 이야기가 이미 끝났기 때문이다. 젠칭은 결혼했고 아이가 있다. 샤오샤오는 여전히 혼자지만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그들 사이에는 더 이상 가능성이 없다. 흑백은 바로 그 '종결'의 색이다.


반면 과거의 컬러는 미완성을 뜻한다. 그때의 그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무엇이든 가능했다. 그래서 컬러다. 심지어 싸우고 헤어지는 순간까지도 컬러인 이유는, 그 순간들조차 아직 열려있는 가능성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화 마지막, 샤오샤오가 게임 속 메시지를 발견하고 다시 컬러로 돌아오는 순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다. 오히려 과거를 온전히 받아들임으로써 현재가 다시 열리는 것이다. 종결되었던 것이 다시 살아난다. 단, 연인으로서가 아니라 기억으로서...


춘절, 귀향의 역설


이 영화에서 춘절(설날)은 중요한 시간적 축이다. 2007년 춘절에 만나 2017년 춘절에 재회한다. 춘절은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명절이고, 모두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하지만 역설이 있다. 젠칭과 샤오샤오는 고향에 갈 때마다 실패를 확인한다. 젠칭은 식당을 하는 아버지를 본다. 샤오샤오는 재혼한 어머니의 빈자리를 느낀다. 고향은 위안이 아니라 상처다. 그들이 베이징을 떠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곧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다.


2017년 비행기에서의 재회가 춘절 이후 베이징으로 돌아가는 길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그들은 이제 고향이 아니라 베이징으로 '귀향'한다. 베이징이 그들의 진짜 고향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고향에는 사랑이 없다. 젠칭과 샤오샤오는 온전한 베이징 사람이 될 수는 없지만, 이미 야오장 사람도 아니었다...


miss, 놓치다 그리고 그리워하다


영화의 백미는 재회 후 차 안에서 나누는 대화다. 젠칭은 샤오샤오에게 말한다. "그때 내가 널 놓쳤어(I missed you)."


영어의 'miss'는 두 가지 뜻을 가진다. 놓치다, 그리고 그리워하다. 젠칭의 말은 중의적이다. 그는 그녀를 놓쳤다. 지하철역에서 붙잡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그녀를 그리워했다. 10년 동안.


이 단어의 이중성이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놓친다. 그리고 평생 그리워한다. 놓침과 그리움은 동전의 양면이다.


샤오샤오가 고향에서 젠칭의 "집을 샀으니 다시 합치자"는 제안을 거절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녀는 안다. 놓친 것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그리워한다고 해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게임, 숨겨진 고백


젠칭이 만든 게임 속 메시지 "이언은 영원히 켈리를 사랑해"는 영화에서 가장 논쟁적인 부분이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연인으로서의 영원한 사랑으로 해석하고, 어떤 이들은 미련의 표현으로 본다.


나는 이것을 '사후 고백'으로 본다. 젠칭은 샤오샤오와 함께 있을 때는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다. 그는 현실에 짓눌려 폭력적이 되었고, 다른 여자와 채팅했고, 그녀를 그림자로 만들었다. 그가 제대로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녀를 잃은 후다.


게임 속 메시지는 그래서 슬프다. 그것은 현재의 고백이 아니라 과거에 했어야 했던 고백이다. 너무 늦은 말. 하지만 샤오샤오는 그 메시지를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그녀 역시 안다. 사랑은 시점이 맞아야 한다는 것을. 그때의 그들은 서로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을.


게임이라는 매체를 선택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게임은 되돌릴 수 있다. 실패하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젠칭은 게임 속에서만 완벽한 사랑을 구현할 수 있었다. 이것은 그의 패배이자, 동시에 그의 성숙이었다...


아버지, 사랑의 다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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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칭 아버지의 존재는 영화에서 쉽게 간과된다. 하지만 그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진짜 사랑의 형태를 보여준다.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아버지는 아들의 여친 샤오샤오를 따뜻하게 대한다. 그리고 그들이 헤어진 후에도 샤오샤오에게 편지를 쓴다. 그녀의 행복을 바란다는 편지!...


이것이 사랑이다. 소유가 아니라 축복. 함께 있지 않아도 상대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 젠칭과 샤오샤오가 배워야 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아버지의 편지를 받은 샤오샤오는 무엇을 느꼈을까? 아마도 그녀는 깨달았을 것이다. 아버지가 젠칭의 가족으로서 그녀를 진짜 사랑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랑은 연인 관계의 종료와 함께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편지는 영화 전체의 톤을 바꾼다. 이것은 단순히 실패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사랑에는 여러 형태가 있고, 어떤 사랑은 이별 이후에도 계속된다는 이야기다.


소중한 이를 잃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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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엔딩 크레딧에는 실제 사람들이 그리운 이에게 보내는 영상 편지가 나온다. "미안하다고 말하세요. 사랑한다고 말하세요. 너무 늦기 전에."


이것은 영화의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하지만 나는 이 엔딩이 조금 아쉽다. 너무 교훈적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미 충분히 말했다.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것을. 소중한 사람을 잃기 전에 말해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동시에 영화는 다른 진실도 보여준다. 때로는 말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젠칭이 샤오샤오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어도, 그들의 현실은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말이 아니라 상황이었으니까.


그래서 이 엔딩 메시지는 반쪽짜리 진실이다. 우리는 사랑한다고 말해야 한다. 하지만 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랑은 행동이고, 희생이고, 타협이다. 젠칭과 샤오샤오는 그것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음악, 말하지 않는 언어


영화 이야기에서 특히 "먼 훗날 우리"의 OST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유약영 감독이 가수 출신인 것은 이 영화에서 큰 행운이다. 음악은 대사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한다.


특히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순간, 음악은 시간의 경계를 흐린다. 우리는 음악을 통해 2007년과 2018년이 사실은 같은 순간임을 느낀다. 시간은 흘렀지만 감정은 그대로다.


재회 장면에서 흐르는 음악은 폭발하지 않는다. 조용히, 거의 들릴 듯 말 듯 흐른다. 이것이 이 영화의 미학이다. 격정을 억누르는 것. 울고 싶지만 참는 것. 그 참음 속에서 더 큰 슬픔이 터져 나온다. 행복의 순간에도 이미 상실의 그림자를 넣어두며 사랑의 순간에도 이미 이별의 선율이 숨어있는 게 이 영화라고 생각되었다.


영화를 보게 되면 관객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나는 누구의 샤오샤오였을까? 누가 나의 젠칭이었을까?


사랑이란 무엇인가? 함께 있어야만 사랑인가? 헤어져도 기억한다면 그것도 사랑인 것일까?... 영화는 명확한 답을 주지는 않는다...


결국 이 영화는 젠칭과 샤오샤오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것은 꿈을 좇아서 낯선 도시로 간 모든 이들의 이야기다.


서울이든, 베이징이든, 뉴욕이든, 베를린이든. 우리는 모두 어딘가의 좁은 방에서 꿈과 현실 사이를 헤맨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고, 놓친다.


이 영화가 주는 "위로"는 이것이다.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우리 모두 그렇다고. 그리고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성장의 과정이라고.


젠칭과 샤오샤오는 2018년에 비로소 제대로 이별한다. 그들은 10년이 걸려서야 서로를 축복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사랑의 완성이다.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떠나보낼 수 있는 것!...


먼 훗날, 우리들도 영화 속의 그들처럼 우리가 놓친 사람들을 떠올리며 미소 지을 수 있을까? 후회가 아니라 감사로? 이 영화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시간이 흐르면. 충분히 흐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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