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이 사라졌다'(What Happened to Monday)는 토미 위르콜라 감독의 영화로 독특한 설정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인구 과잉과 식량난으로 인해 1 가구 1자녀 정책이 시행되는 근미래, 7 쌍둥이 자매가 한 사람의 이름으로 숨어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외할아버지 테렌스(윌렘 대포)는 죽은 딸의 이름 '카렌 셋맨'을 물려받은 손녀들에게 요일 이름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차례대로 이름을 준다. 그들은 각자의 요일에만 외출할 수 있고, 밖에서의 모든 경험을 공유해야 하는 삶을 살게 되는데, 30년간 완벽하게 지켜온 이 비밀은 "월요일"의 실종으로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 영화의 백미는 단연 누미 라파스의 1인 7역 연기다. 단순히 7명을 연기하는 수준을 넘어, 각 캐릭터에게 뚜렷한 개성을 부여했다. 지적이고 냉철한 화요일, 운동을 즐기는 활동적인 목요일, 파티를 좋아하는 자유로운 금요일 등 한 명의 배우가 만들어낸 일곱 개의 세계는 놀랍도록 생생하다.
특히 후반부 월요일과 화요일의 대결 장면은 영화사에 남을 만한 순간이다. CG와 스턴트의 조화 속에서 라파스는 두 캐릭터를 동시에 살려내며, 자매이자 적이 된 두 인물의 비극을 완벽하게 구현해 냈다.
영화가 던지는 가장 강렬한 질문은 이것이다. 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욕망이 과연 이기적인가? 월요일은 사랑하는 남자와 미래를 꿈꾸며 임신하게 되고, 처음으로 온전한 자신만의 정체성을 갖고 싶어 한다. 그녀의 선택은 자매들을 위협에 빠뜨리지만, 동시에 지극히 인간적인 갈망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카렌 셋맨'으로 살기 싫어했던 목요일이 결국 그 이름을 갖게 되고, 반대로 화요일은 '테리'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얻는 게 결말! 이것은 자유를 위해 투쟁한 자들이 얻은 역설적 결과기도 하다.
라파스는 각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해 수개월간 준비했다고 알려져 있다. 7명의 서로 다른 걸음걸이, 말투, 몸짓을 만들어내기 위해 각 캐릭터별로 백스토리를 상세히 작성했다. 촬영장에서는 같은 장면을 7번씩 촬영해야 했고, 자신과의 대결 신에서는 상대역의 동선을 완벽히 기억해야 하는 고난도 작업이었다고!
윌렘 대포가 연기한 테렌스는 영화의 도덕적 중심축이다. 법을 어기면서도 생명을 지키려는 그의 선택은 관객으로 하여금, 옳은 법이란 무엇인가, 시스템이 생명을 위협할 때 개인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끝없는 질문을 던진다.
이 영화는 "인구 통제"라는 극단적 설정을 통해 현대 사회의 통제 메커니즘을 은유한다. 니콜렛(글렌 클로즈)이 대표하는 권력은 '공공의 선'이라는 명분으로 개인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린다. 아동할당국이 냉동 보관한다는 '여분의' 아이들은 실제로는 제거되고 있었다는 반전은 체제의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영화가 제시하는 미래는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니다. 기후 위기, 자원 고갈, 그리고 이를 해결한다는 명목의 통제 ~이 모든 것이 현재 진행형인 우리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영화의 원제 'What Happened to Monday'는 단순한 의문문이 아니다. 이는 두 가지 질문을 동시에 던진다. 첫째, 월요일이라는 인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둘째, 월요일이라는 '요일' 자체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이렇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지는데...
7명이 한 명의 일주일을 나눠 살던 시스템에서 월요일이 사라진다는 것은, 단지 한 사람의 부재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 자체가 멈춘다는 의미다. 이는 공동체 안에서 개인의 존재가 얼마나 절대적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7 쌍둥이가 어린 시절, 테렌스가 외출 규칙을 어긴 자매들의 손가락을 자르는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인 순간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폭력이 아닌, 생존을 위해서였다. 모든 자매가 같은 손가락을 잃어야만 '한 사람'으로 위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상처는 평생 그들을 따라다니는 낙인이 된다. 그들이 개별적 존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역설적으로 동일한 상처만이 그들의 생존을 가능케 했다. 개성은 위험이고, 동질성만이 안전이라는 잔혹한 진실을 상징하는 장치였다고나 할까.
영화는 7명의 자매가 결국 한 정체성을 완벽하게 공유할 수 없다는 걸 치밀하게 풀어낸다. 아무리 매일 밤 경험을 공유해도, 각자가 느낀 감정과 생각까지 완전히 전달될 수는 없다. 화요일이 경험한 사랑을, 목요일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특히 월요일이 연인 애드리안을 만나며 느낀 감정은 오롯이 그녀만의 것이었다. 다른 자매들은 그의 얼굴과 목소리를 알아도, 월요일이 그와 나눈 내밀한 순간의 온도까지는 공유할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월요일이 배신을 선택하게 된 근본적 이유다.
영화 속에서 쌍둥이를 임신한 월요일의 아이들이 인공자궁에서 자라는 마지막 장면은 희망과 불안을 동시에 안긴다. 산아제한법은 폐지되었지만, 세상은 정말 더 나아질까? 두 명만 살아남은 자매들의 승리는 완전한가?
더 섬뜩한 것은 월요일의 아이들이 또다시 쌍둥이라는 사실이다. 이 아이들은 어머니가 그토록 원했던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통제와 마주하게 될까? 영화는 답을 주지 않고, 질문만을 남긴다.
'월요일이 사라졌다'는 액션 스릴러를 띄고 있지만, 그 안에는 정체성, 자유, 그리고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묵직한 질문들이 담겨 있다. 123분의 러닝타임 내내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이 영화는, 디스토피아 장르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얼마나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꽤 인상적인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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