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윤희에게 리뷰 달이 차오르듯 빛을 되찾는 사람들

만월이 되기까지의 시간

by 필름과 펜

영화 윤희에게 리뷰 (Film#21)


영화 윤희에게 포스터 중에서


이 영화를 왜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논리적인 답을 내놓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영화를 볼 때마다 가슴속 어딘가가 뚫리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마치 겨울 내내 수북이 쌓였던 눈을 치우고 나서야 비로소 길이 보이는 것처럼. 오랫동안 말할 수 없었던 것들이 마침내 입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되는 순간의 해방감 같은 것!


"윤희에게(Moonlit Winter)"라는 제목부터 의미심장하다. 달빛이 비치는 겨울. 만월(달이 완전히 둥근 모양).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달의 변화를 쫓아간다. 초승달처럼 숨죽이던 감정이 점점 차오르다 마침내 보름달이 되는 여정. 그것이 이 이야기의 본질이다.




20년 만의 편지


줄거리는 단순하다. 고등학교 때 만나 사랑했던 윤희와 쥰.


하지만 주변의 반대로 헤어진 두 사람은 20여 년을 아무 연락 없이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쥰이 보낸 한 통의 편지가 윤희에게 도착하면서, 임대형 감독의 영화 "윤희에게"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놀라운 것은, 사랑을 직접 말하는 장면이 거의 없다는 점! "사랑해!"라는 고백도, 격정적인 키스도, 눈물로 범벅된 재회도 없다. 대신 눈이 내리고 침묵이 흐르고, 시선이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우리는 안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이 두 사람이 서로를 얼마나 깊이 사랑했는지를.


현대 영화들이 사랑을 증명하려고 애쓰는 방식과 정반대다. 이 영화는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더 많이 말한다. 비움으로써 채운다. 그 절제가 만드는 여운이 강렬하다.



색을 잃은 여자, 윤희


(극 중, 윤희 역의 김희애)


윤희를 처음 볼 때 느껴지는 건 눈에 생기도 없고 표정에 온기도 없으며 사랑하는 딸을 볼 때조차 시건은 무척이나 공허해 보인다는 것!


영화 전반부는 의도적으로 채도를 낮춰 촬영을 했다. 회색빛 하늘, 무채색 옷, 생기 없는 아파트. 모든 것이 윤희의 내면을 시각화한다. 그녀는 살아 있되 살아 있지 않다. 움직이되 마치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이것이 사랑을 억압당한 사람의 모습이다. 자신의 진짜 감정을 숨기고, 그 위에 다른 삶을 덧씌우고 매일 조금씩 진짜 자신으로부터 멀어진 사람. 윤희는 쥰을 떠난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버렸다!...


그래서 그녀에게는 색깔이 없다. 빛이 없다. 출근하고 밥 먹고 잠을 자긴 하지만 그 모든 행위가 자동화된 것처럼 보인다. 마치 기계처럼.




벽 너머의 여자, 쥰


(극 중, 쥰 역의 나카무라 유코)


쥰은 윤희와 다르다. 겉으로 보기엔 밝고 친절하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미소도 잘 짓는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녀 주변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는 것을...


아무도 쥰에게 사실은 다가갈 수 없다. 고모를 제외하고는. 그리고 편지를 쓸 때를 제외하고는...


쥰은 윤희와 달리 자신의 과거를 완전히 묻지 않았다. 편지라는 형태로, 고모와의 대화로, 담배를 피우며 떠올리는 기억으로 그 감정을 살려두었다. 그래서 쥰에게는 아직 색깔이 있다. 그녀가 사는 집에는 따뜻한 붉은빛이 감돌고 그녀가 입는 옷에는 생기가 있다.


두 사람의 차이는 명확하다. 윤희는 도망쳤고 쥰은 기다렸다. 윤희는 과거를 지웠고 쥰은 과거를 품었다. 그래서 재회의 순간,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것은 쥰이다.




달의 언어: 차오르는 시간



영화는 달을 통해 시간을 말한다. 서울의 윤희 아파트 위로는 초승달도 뜨지 않는다. 아니 뜨는지조차 모른다. 윤희는 하늘을 안 보고 사니까...


하지만 딸 새봄과 함께 밖을 보는 순간부터 달이 보이기 시작한다. 처음엔 가늘고 점점 두터워지고 오타루에서 쥰을 만날 때쯤엔 거의 보름달에 가깝다.


달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한다. 태양의 빛을 받아 반사할 뿐이다. 윤희도 그랬다. 혼자서는 빛날 수 없었다. 하지만 쥰이라는 존재를 마주하면서 조금씩 빛나기 시작한다.


이 은유가 아름다운 이유는 시간성 때문이다. 달은 하루아침에 차오르지 않는다. 매일 조금씩,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차오른다. 치유도 그렇다. 사랑도 그렇다. 자기 자신을 되찾는 일도 그렇지 않나.


영화가 끝날 무렵, 만월이 뜬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달은 다시 이지러질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중요한 것은 한 번이라도 완전해졌다는 경험이니까.




기차는 앞으로만 달린다.


쥰의 마음이 편지로 표현된다면, 윤희의 마음은 기차로 드러난다.


윤희가 직장을 그만두고 나오는 장면, 그때 그녀 주변에 기차가 지나가는데, 화면이 오타루로 가는 기차와 오버랩이 된다!


이 시퀀스는 몇 번을 봐도 절묘한 편집이다. 한 문장의 대사도 없이 윤희의 결심을 보여준다.


기차는 선로를 따라간다.

정해진 길을...

멈출 수도 되돌아갈 수도 있지만 결국 앞으로 나아가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20년이나 멈춰있던 윤희의 마음이 편지 한 통으로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중요한 건, 윤희가 스스로 기차에 올랐다는 거다. 딸이 제안했지만 결정은 윤희 자신이 했다. 이 영화를 멜로드라마 이상으로 만드는 지점이다. 수동적이었던 사람이 능동적으로 변해가는 과정. 기차는 그 전환의 상징이다.



담배 연기 속의 기억


(극 중, 딸 새봄과 엄마 윤희의 모습)


담배는 이 영화에서 단순한 소품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로 가는 통로다.


윤희가 담배를 피우는 순간, 그녀는 20년 전으로 돌아간다. 쥰이 담배를 피우는 순간, 그녀는 윤희와 함께했던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연기가 피어오르듯 기억도 피어오른다.


고모가 쥰에게 "언제 담배 끊을 거냐!"라고 물을 때,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건강에 대한 걱정이지만, 실제로는 "언제 그 사람을 잊을 거냐!"라는 질문이다. 하지만 쥰은 끊을 수 없다. 담배를 끊는 것은 윤희를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호텔 바에서 윤희가 한국어로 거짓말을 하는 시퀀스. 그녀는 담배를 피우며 쥰과의 과거를 말한다. 그 순간 담배는 진실을 숨기는 도구이자, 동시에 진실을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눈의 의미


쥰과 윤희의 재회 장면


"오랜만이네..." "그러네!"


다시 만난 두 사람은 눈 내리는 길을 걷는다. 대화는 적다. 하지만 그 침묵이 말한다. 눈은 그들을 감싸며 "괜찮아, 다 괜찮아!"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눈은 이 영화의 핵심 시각 언어다. 눈은 덮고, 감추고 모든 것을 하얗게 만든다. 추한 것도 아픈 것도 더러운 것도 눈 아래 묻힌다.


두 사람의 상처도 그렇게 쌓여있었다. 20년 동안 차곡차곡. 하얗게 차갑게... 하지만 눈은 봄이 오면 녹는다. 그리고 그 아래 땅에서 새싹이 돋는다.


영화 내내 내리는 눈은 과거를 묻으면서 동시에 미래를 준비한다. 겨울이 있어야 봄이 온다는 자연의 섭리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고모의 말을 따라서 하는 쥰


윤희와 만나고 돌아온 후, 쥰은 고모가 늘 하던 말을 한다. "눈이 언제쯤 그치려나!"


고모가 이 말을 할 때마다 쥰은 핀잔을 주곤 했다. 그런데 이제 쥰 자신이 똑같은 말을 한다. 하지만 그 뉘앙스가 완전히 다르다.


고모에게 그 말은 지긋지긋함이었다. 끝나지 않는 겨울에 대한 짜증이었다. 하지만 쥰이 그 말을 할 땐 장난기가 묻어난다. 넉살이 느껴진다.


이것은 쥰이 변했다는 증거가 아닐는지.


예전의 쥰은 너무 조심스러웠다.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윤희를 만나 후 쥰은 더 인간적이 된다. 더 자연스러워진다.


"눈이 언제쯤 그치려나"는 "이 고통이 언제 끝나나"라는 뜻이다. 하지만 쥰에게 이제 눈은 고통이 아니다. 윤희와 함께 걸었던 그 눈은 축복이다. 그래서 같은 말이지만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윤희가 웃는다. 진짜로 환하게.


영화 내내 윤희는 한 번도 진심으로 웃지 않았다. 억지 미소를 짓거나 예의상 입꼬리를 올리거나 딸 앞에서 괜찮은 척 수긍했다.


하지만 마지막에 그녀는 웃는다. 누구에게 보여주려는 웃음이 아니라, 행복해서 웃는 웃음!


그 웃음 하나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 윤희가 자기 자신을 되찾았다고. 20년 만에 자신에게 돌아왔다고. 이제는 정말 괜찮다고.


고통스러운 터널을 통과한 사람이 마침내 햇빛을 보는 표정! 오랫동안 숨을 참고 있다가 수면 위로 올라온 사람의 표정처럼, 그것이 윤희의 마지막 미소에 담겨 있어서 더욱 인상적이었다.




새봄과 고모 마사코: 세대를 잇는 다리


극 중, 새봄 역의 김소혜


영화는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조명하고 있지만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있는데 특히 딸 새봄과 고모 마사코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새봄은 엄마의 비밀을 알게 되나 비난하지 않는다. 놀라지도 않으며 오히려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엄마가 쥰을 만날 수 있도록 여행을 제안한다.


대부분의 자식들은 부모의 과거 약점을 알게 되었을 때 배신감을 느끼는데 새봄은 달랐다. 그녀는 엄마를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


극 중 마사코 역의 키노 하나


마사코도 마찬가지다. 조카의 사랑을 이해하고 반대하지 않고 은밀하게 돕는다. 윤희가 찾아왔을 때 둘이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든다.


이 두 사람이 없었다면 윤희와 쥰의 재회는 불가능했을 것! 가족은 때론 우리를 옭아매지만, 때로는 우리를 위한 사람들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새봄이 엄마에게 오타루 여행을 제안하는 장면은 상징적이었는데 젊은 세대가 나이 든 세대에게 "당신의 사랑은 정당하다!"라는 걸 말해주는 것으로 이것은 엄마와 딸이 함께 성장하는 성장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를 "퀴어 영화"로만 분류하면 아쉬울 것 같다. 물론 동성 간의 사랑을 다루고 있고 그것은 중요하다. 한국에서 중년 여성의 동성애를 이토록 섬세하게 그린 작품도 드물다.


하지만 이 영화는 퀴어 영화 이전에 억압당했던 감정, 말하지 못했던 사랑, 자신을 잃어버렸던 사람이 다시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것!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의 진짜 감정을 숨겨본 적이 있다. 사회가 인정하지 않는 무언가를 원해본 적이 있지 않나. 그래서 이 영화는 공감된다. 윤희와 쥰의 이야기는 그러하기에 특별하면서도 보편적이기도 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사랑의 대상이 누구인지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랑이 진짜였다는 것! 그 사랑 때문에 상처받았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랑을 인정받고 싶었다는 것이 아닐까.




"윤희에게"라는 제목의 의미



영화의 타이틀이 "윤희와 쥰"이 아니라 "윤희에게"인 것도 심오한데...


이것은 쥰이 윤희에게 보내는 편지이며 쥰의 시점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은 윤희가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윤희에게"는 "나 자신에게"라는 뜻이며, 윤희가 잃어버렸던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야기. 스스로에게 편지를 쓰는 여정과도 같다고 하겠다.


사랑이 끝나고 20년 후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 "윤희에게"는 헤어졌지만 어떤 의미로는 헤어지지 않았으며 사랑이 끝났으나 사라지지도 않았고 형태를 바꿔서 계속 존재하는 특별함이 존재하는 영화다.


윤희와 쥰은 다시 만났지만 다시 함께 하는 건 아닌데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그들의 사랑이 정당했다는 것을 확인하는 그것이 그들에게는 중요했다고 생각되었다.




이 영화가 내게 잊힐 수 없는 이유는 진심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화려한 영상도, 극적 전개도 없다. 하지만 억압당한 감정에 대한 깊은 이햐가 있다.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희망이 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면 이상하게 후련하다. 내 이야기가 아닌데도 내 이야기 같다.


이상으로, 적당하게 절제를 할 줄 알면서 수다보단 침묵을 택하며 섬세한 연출로 내 마음을 아련한 감성으로 가득 채워놓은 영화 "윤희에게"의 후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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