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 앞에 무너지는 이성
루치노 비스콘티 감독의 1971년 작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침묵의 영화다. 대사는 최소한이다. 대신 음악이 말한다.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 이 곡이 영화 내내 반복되며 모든 감정을 대신한다.
왜 말러인가? 왜 이 곡인가?
말러는 42세에 사랑에 빠졌다. 알마 쉰들러를 만났을 때 이 악장을 썼다. 사랑의 노래이면서 동시에 죽음의 노래. 이 곡의 주제가 바로 "사랑과 죽음"이다.
특히 이 악장에서만 등장하는 악상 기호가 있다. "morendo". 죽어서 사라지듯이. 그리고 곡은 pppp(피아니시시시모)로 끝난다.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작은 소리로, 사라지듯이...
영화 속 아센바흐가 타지오를 사랑하는 방식도 그렇다. 소리 없이. 말하지 않고. 그리고 죽어가며... 여운은 길게 남는다. 사랑이 죽음까지 이어지듯이 말이다...
토마스 만(Thomas Mann)의 원작 소설은 1912년 작품이다. 주인공은 작가 "구스타프 폰 아센바흐"이지만 비스콘티 감독은 그를 음악가로 바꾸었다. 왜 그랬을까?
개인적 생각으로는 그는 말러의 음악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감독은 또한 "심장병"이라는 설정을 추가했는데 원작에는 없는 것이다. 아센바흐의 심장은 베니스에서 마지막으로 격렬하게 뛴다. 타지오를 바라보면서...
음악 교수 아센바흐(더크 보거드)는 요양을 위해 베니스의 리도 섬으로 온다. 호텔에 도착한다. 카페테리아에서 식사를 기다린다.
그곳에서 본다. 타지오(비요른 안드레센)를...
열네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 신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피조물. 그리스 조각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금발의 흰 피부 완벽한 얼굴선도 인상적이다.
그 순간부터 아센바흐의 눈은 타지오에게 고정된다. 시종일관... 식사할 때도, 산책을 할 때도, 해변에 있을 때도 그의 시선은 타지오를 따라간다.
이것은 사랑인가? 아니면 집착인가? 예술적 감상인가? 아니면 병적인 열망인가? 영화는 판단하지 않는다. 다만 보여줄 뿐이다. 한 남자가 아름다움 앞에 무너지는 과정을...
영화 초반, 아센바흐는 모래시계를 본다. 틈이 아주 좁아서 모래가 빠지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모래시계.
그는 말한다. "모래가 줄었다는 걸 아는 건 마지막 순간이다!"
이것은 노화와 죽음에 대한 은유다. 우리는 늙어간다. 매일... 하지만 느끼지 못한다. 거울을 매일 보기 때문에 변화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다가 어느 날 깨닫는다. 많이 늙었음을... 시간이 거의 다 됐다는 것을...
아센바흐도 그렇다. 그는 갑자기 늙은 것이 아니다. 천천히 보이지 않게 늙어왔다. 하지만 타지오를 본 순간 깨닫는다. 자신이 늙었음을. 아름다움이 자신에게서 떠나갔음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모래시계는 또한 베니스 자체의 은유이기도 하다. 베니스는 가라앉고 있다. 천천히. 보이지 않게. 언젠가는 바다에 잠길 도시에서 점점 생을 다하는 남자가 죽어가는 사랑을 한다...
베니스에 콜레라가 퍼진다. 전염병으로 사람들이 죽어간다. 당국은 관광산업을 위해 숨기려 한다. 하지만 소문은 퍼진다. 사람들은 떠나기 시작한다.
에센바흐도 떠나야 한다. 안전을 위해서. 그러나 떠나지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타지오 때문에, 타지오가 아직 베니스에 있으니까...
콜레라와 사랑이 병치된다. 둘 다 급속히 퍼진다. 통제할 수 없이 치명적이다. 아센바흐가 타지오에게 빠지는 속도는 마치 콜레라가 확산되는 그 속도만큼 빠르고 치명적이다. 소용돌이치듯.
그는 원래 품위 있는 사람이었다. 절제적이면서도 이성적이었다. 더 중요한 건 동성애자는 더더욱 아니었다. 미성년자에게 단 한 번도 끌린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이 무너진다. 품위, 절제, 이성, 타지오라는 전염병 앞에서 말이다.
아센바흐는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염색하고 분을 다르고 립스틱을 칠한다. 젊어 보이기 위해서다.
이 시퀀스는 영화에서 가장 고통스럽다. 거울에 비친 그의 얼굴! 화장은 그를 젊게 만들지 못한다. 오히려 더 늙어 보이게 만든다. 마치 비극적 광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알고 있다. 자신이 우스꽝스럽다는 것을. 하지만 멈출 수 없다. 마치 어둠이 가기 전, 마지막으로 빛을 발하려는 촛불처럼. 추한 늙은이의 필사적 몸부림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한껏 부풀어서 분을 칠하고 머리에 물을 검게 들여도 가버린 젊음은 돌아오지 않는다. 타지오에 의해 막연하고 금지된 희망을 품지만, 그게 전부일뿐 타지오를 잡을 수는 없다.
이 장면을 보며 관객은 연민과 혐오를 동시에 느낀다. 불쌍하지만 보기 민망하다. 이해되지만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리고 두려워진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센바흐가 타지오에게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말 그 소년을 사랑하는 것인가?
아마도 아닐 것이다. 타지오는 실체가 아니라 상징이 아닐까. 지나버린 청춘의. 잃어버린 아름다움의. 다시 올 수 없는 시간의...
아센바흐는 늙고 병들었으며 죽음이 가까이 왔다. 그리고 그즈음 타지오를 보게 되었다. 완벽한 젊음을, 무한한 가능성을, 아직 반도 시작되지 않은 인생을...
그는 타지오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타지오가 되고픈 것은 아닐는지. 다시 젊어지고 싶은 것이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불가능하므로 절망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죽기 전 번뜩이는 광기 같은 것으로도 해석된다. 평생 억눌러왔던 욕망이 마지막 순간 폭발하는 것! 그가 행해왔던 모든 삶의 철학, 이성, 절제, 품위 등을 모두 다 뒤흔들어 버린 타지오라는 존재는 타락의 공허한 심연과 같은 존재라고도 할 수 있겠다.
아센바흐의 사랑은 완전히 일방적이다. 타지오는 그의 시선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의미를 모를 것이다. 열네 살 소년이 어떻게 알겠는가. 늙은 남자의 복잡한 감정을...
두 사람은 한 번도 제대로 대화하지 않는다. 아센바흐는 멀리서 바라볼 뿐이다. 따라다니지만 다가가지 못한다. 말을 걸고 싶지만 입을 열지 못한다.
타지오는 가끔 그를 보며 미소 짓는다. 친절한 미소! 하지만 그게 전부다.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아센바흐가 부여하는 의미는 모두 그의 상상 속에만 있다.
생명의 불꽃이 꺼지는 순간, 아센바흐는 타지오를 떠올린다. 마지막까지!... 하지만 정작 타지오는 그의 죽음은커녕 마음조차 알 길이 없다. 헛헛할 뿐이다.
이것이 일방적인 사랑의 비극이라고나 할까. 한쪽은 모든 것을 걸지만 다른 쪽은 전혀 모른다는 그것! 한쪽에게는 인생의 전부이나 다른 쪽에게는 스쳐 지나가는 순간일 뿐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아센바흐는 해변의 의자에 앉아 있다. 화장이 땀에 흘러내린다. 검게 물을 들인 머리에서 물이 떨어진다. 그는 추하고 처참하다.
타지오는 바다에서 친구들과 논다. 햇빛에 물이 반짝이고 소년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아센바흐는 그를 마지막으로 바라본다...
타지오가 멀리 바다 너머를 가리킨다. 무엇을 가리키는가? 수평선? 미래? 아니면 죽음?
아센바흐는 그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긴다. 그리고 의자에 앉은 채 조용히 죽는다. Adagietto가 흐르면서 점점 작아진다. pppp 그러면서 죽은 듯이 사라진다...
이 결말이 아름다운 까닭은 평화롭기 때문이다. 아센바흐는 고통 속에서 죽지 않으며 타지오를 보며 아름다움을 응시하며 죽는다. 어쩌면 이것이 그가 원했던 죽음은 아닐까. 병실이 아니라 아름다운 해변에서 혼자가 아니라 사랑하는 존재를 바라보면서 말이다...
타지오 역의 비요른 안데르센은 당시 열다섯 살이었다. 비스콘티 감독은 전 유럽을 돌며 수백 명의 소년을 오디션 했다. 그리고 그를 선택했다.
왜 그였는가? 그의 얼굴이 그리스 조각처럼 완벽했기 때문이다. 여리면서도 아름답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관객조차 아센바흐의 마음이 되어 몰입하게 된다.
하지만 이 아름다움은 안데르센에겐 저주였다. 영화 이후 그는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었고 타지오로 영원히 기억되었다. 배우로 성공하지도 못했다. 개인적 삶도 파탄이 난다.
2021년 다큐멘터리 "The Most Beautiful Boy in the World"는 그의 삶을 추적한다. 아름다움이 어떻게 한 사람을 파괴할 수 있는지를. 비스콘티 감독이 그를 발견한 것이 축복이었나? 저주였나?...
영화는 아름다움을 숭배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아름다움은 때론 무거운 짐이다. 특히 어린 나이에 그것을 짊어지게 된다면 말이다.
말러의 곡은 특히 교향곡의 느린 악장의 경우는 얼마나 처절하게 아름다운지 듣다가 보면 눈물이 절로 난다. 그것은 비단 아다지에토만 그런 것이 아니며 그의 음악들은 미친 듯 아름답고 강렬하다.
말러는 성격이 까다롭고 괴팍했으며 완벽주의자였는데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무척이나 가혹했다. 교향곡 5번을 가장 많이 수정한 이유도 스스로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화 속의 아센바흐도 비슷한 성향으로 엄격한 예술가이며 타협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자신의 기준을 낮추지 않았다. 그래서 존경을 받긴 하지만 고립되어 있었다.
이런 사람이 타지오 앞에서 무너진다는 것! 평생 쌓아온 자제력이 한순간에 붕괴된다는 것! 이 대비가 영화의 비극을 만들었다.
만약 아센바흐가 원래 방종한 사람이었다면 이 이야기는 비극이 아닐 것이다. 그저 예상된 일일 뿐. 하지만 그는 평생 자신을 통제해 왔다. 그래서 이 붕괴가 더 파국적이다.
예술가는 직업적으로 아름다움에 민감하다. 하지만 그 민감함이 때론 위험하다. 아름다움에 중독될 수 있기 때문에... 아센바흐처럼 아름다움을 위해 모든 것을 다 희생할 수 있기에...
이 영화가 1971년에 나왔다는 것은 무척 중요한데 당시 나이 든 남자와 어린 소녀 사이의 끌림을 다룬다는 것은 금기였기 때문이다. 스캔들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비스콘티 감독은 감히 행동에 옮겼다. 그리고 예술적으로 정당화했다. 이것은 단순한 성적 욕망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름다움과 죽음, 예술과 타락에 대한 철학적 탐구라고...
영화는 선정적이지 않으며 아센바흐와 타지오 사이에 신체 접촉은 없으며 키스, 포옹조차 없다. 오직 시선만 있다. 하지만 그 시선이 모든 것을 말한다.
이것이 감독의 천재성인데, 보여주지 않으면서 관객에게 느끼게 만드는 것! 말하지 않으면서 전달한다는 것! 음악과 이미지만으로 복잡한 감정을 표현한다는 게 그의 능력이 아니면 무엇일까.
이 영화는 대사가 적다. 대부분의 감정이 음악, 이미지, 침묵으로 전달된다. 이것은 단점이 아니라 선택이라고 본다.
사랑은 때론 말할 수 없다. 특히 금지된 사랑은. 아센바흐는 타지오에게 자신의 감정을 말할 수 없다. 사회적으로 도덕 윤리적으로 그래서 침묵한다.
하지만 그 시선이 말한다. 따라다니는 발걸음이, 떨리는 손이 말한다. 감독은 이 비언어적인 표현들을 섬세하게 포착해 내었다.
관객도 말이 필요 없다. 우리는 그저 바라보고 느끼며 이해할 뿐이다. 대사로 설명되면 오히려 얕아질 것들이 침묵 속에서 깊어진다.
이 영화를 보는 것은 취하는 경험이다. 아다지에토에 취하고 베니스의 영상미에 취하고 타지오의 외모에 취한다...
감독은 탐미주의자였다. 아름다움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다. 의상, 세트, 조명, 구도, 모든 프레임이 그림이다.
너무 아름다워서 비현실적인데 그것 또한 의도다. 이것은 사실주의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꿈, 환상, 열정이다. 아센바흐의 주관적 경험!...
우리는 그의 눈으로 본다. 그에게 타지오는 완벽하며 베니스 역시 너무나 아름답다. 거기에 음악은 또 어떠한가. 그렇게 애절할 수가 없지 않나. 이것이 사랑에 빠진 사람이 보는 세계라는 듯이.
이 영화는 50년이 넘게 흘렀지만 여전히 강렬한데 아마도 그 이유엔 노화, 죽음,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 금지된 욕망 등 현재에도 여전히 가질 수 없는 것을 원하는 욕망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는지.
또한 열린 결말 해석은 영화를 더 살아있게 만든다. 시간이 지나도 새롭게 읽힌다. 각자의 경험, 나이,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영화와 함께 아다지에토도 끝나며 아센바흐도 죽으면서 영화는 끝난다..
하지만 여운은 길게 남는다. 음악처럼... 그 여운 속에서 우리는 묻는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욕망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살고 죽어야 하는가?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대답하지 않는다. 다만 아름답게 슬프게 그리고 잊을 수 없이 질문을 던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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