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_20. 영화 <비공식작전>
1.
어쩌다 이렇게까지 한참 늦어서야 보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재작년 개봉한 영화 <비공식작전>을 홍보하기 위해 배우 하정우와 주지훈이 출연한 한 웹 예능을 시청하게 되었다. 두 배우는 영화 <비공식작전> 흥행이 왜 이렇게까지 부진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연기를 해본 적도, 할 계획도, 심지어 크게 마음 먹고 연기에 도전한다 하더라도 그럴듯한 배역을 꿰찰 재능 같은 것이 없는 나로서는 주연 배우가 가지는 중압감을 평생 이해할 수 없겠지만, 흥행 부진에 눈물까지 흘렸다는 두 배우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그 심적 압박이 얼추 짐작 가는 것 같기도 했다.
이는 비단 영화 <비공식작전>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팬데믹 이후, 창고에 박혀있던 크고 작은 여러 영화들이 개봉했지만 흥행되는 영화는 손에 꼽는다. 그저 그런 흥행 성적을 가지고 씁쓸하게 상영관을 떠난 영화들에 대한 예시를 하나하나 들며 설명하지 않더라도 영화 팬들 머릿속에 수많은 영화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을 것이다.
2.
하정우 배우는 해당 예능에서 영화 <비공식작전>을 '장점도 단점도 없는 영화'라고 표현했다. 본인이 출연한 영화인데 안 좋게 이야기했을 리는 없고, 당연히 그 얘기는 반대로 말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호불호가 없는 영화라는 표현이었는데, 뭐랄까, 적어도 한국 극장 시장에 있어서 '호불호'가 없는 영화는 그것이 칭찬이든 욕이든 더 이상 어떤 관심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이는 그냥 글로 읽었을 때 공감 정도로 끝날 수 있는 말이지만, 상업영화 시장에 있어 엄청난 위협으로 다가오는 아주 중요한 말이다.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영화의 발전은 장르 영화의 발전과 떨어뜨려 놓을 수 없다. 1915년 미국 대법원은 "영화 상영은 이윤을 위해 시작되고 수행되는 단지 하나의 사업일 따름이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렇다. (적어도 상업 영화만 따졌을 때) 영화는 단지 하나의 사업이고, 그 사업들이 모여 산업이 된다. 특정할 수 없는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사업에서 가장 먼저 제거해야 하는 불확정성은 바로 '호불호'다. 호불호를 최대한 줄여야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취향의 격차와 상관없이 영화를 볼 것이고, 그래야 적어도 상업적 성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영화는 그렇게 발전했고, 장르 영화가 그렇게 발전했다. 그리고 그렇게 발전한 미국 영화 산업은 세계 영화 산업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우리나라의 상업 영화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적어도 상업영화에 있어 호불호는 영원히 견제해야 할 적이 수밖에 없다.
3.
이 상황에서 '장점도 단점도 없는 영화'가 가지는 의미가 크다. 호불호 없는 영화는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영화가 맞았다. 그리고 이는 흥행으로 이어졌다. 적어도 이전까지는. 하지만 이제 한국 영화 시장에서 호불호는 필수적인 요소가 되어가고 있다. 물론 이전까지의 흥행공식이 정말 무력화되었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상당수 늘어나고 있다. 최대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들을 뽑아내 규격화하여 무려 100년이라는 시간 동안 발전시킨 장르의 역사가 점차 깨지고 있다.
4.
이 얘기를 하면서 바로 반례를 제시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긴 하지만 정 반대의 경우가 있다. 언제나 그렇듯 시장의 흐름을 읽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까. 작년의 경우를 살펴보자. 2024년 손익분기점을 넘은 영화는 단 10편으로, 그중 유난히 눈길이 갔던 영화는 바로 영화 <소방관>이다. 그런데 <소방관>을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이 영화가 기존의 규칙에서 벗어난 영화인가? 물론 <소방관>을 폄하하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왜 요즘 극장 영화들이 힘을 쓰지 못할까,를 논의했을 때 자주 거론되는 이유들 중 많은 요소들이 포함된 영화인 것도 맞지 않는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2024년 흥행작 10편 안에 들었다는 것이 신기하지 않은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시장의 흐름을 읽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호불호가 없는 영화는 흥행하기 힘들어졌지만, 반대로 기존의 공식을 따라가 손익분기를 넘은 영화 또한 존재한다. 사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나로서는 가늠하기도 버겁다.
5.
확실한 특색. 전체를 만족시킬 수 없더라도 특정 인물들에게 만족을 주는 한 영화만의 색깔. 너무 좋은 것들이다. 그리고 그런 영화들이 많아야 영화 예술을 발전시킨다. 하지만 반대로 영화는 산업이다. 심지어 적당히 몇 억대 자본이 들어가면 소규모 영화 소리를 듣는 시장이다. 한 영화만의 짙은 색깔은 위협 요소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영화는 이 두 가지 요소 사이의 아슬아슬한 균형 사이에서 발전해 왔다. 하지만 이제 그 균형이 점차 깨지고 있다. 적당히 짐작할 수 있는 균형을 벗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영화 산업은 어디로 가게 될까. 우리 관객들은 어떻게 상업영화를 받아들여야 할까. 너무 어려운 문제다. 그리고 이 논의 과정은 너무나도 뼈아픈 영화 시장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이 과도기를 넘어서는 순간, 새로운 균형이 다가올 거라고 믿는다. 그때를 기다리며 극장을 찾는다. 앞서 말했듯 나는 주연배우가 가진 중압감을 모른다. 사실 미국 대법원도 관심 없고 흥행 법칙도 내가 아닌 남들이 세운 것들을 주워들은 것이다. 업계 종사자나 전문가들도 모르는 것을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아무것도 모른다. 그저, 한 명의 관객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