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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고 죽여도 또 죽이는 시리즈의 여럿 죽어나가는 신작

2025_32. 영화 <발레리나>

by 주유소가맥

1.

솔직히 고백하자면 난 영화 <존 윅> 시리즈가 이렇게까지 거대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는 비단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을 것이다. 은퇴한 전직 킬러가 소중한 무언가를 잃고 다시 복귀하여 복수를 위한 여정을 떠난다는 내용은 너무나 흔한 이야기지 않는가. 아마 아무 OTT에서 '복수' 카테고리를 검색하면 열에 아홉은 이런 내용일 정도로 비슷한 내용의 영화는 수도 없이 많다.


영화 <발레리나>

그런데 <존 윅> 시리즈는 뭔가 달랐나보다. 첫 편이 개봉한지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생생한 생명력을 가지고 세계관을 넓혀왔다. 이제는 <존 윅> 시리즈의 스핀오프까지 나왔다. 영화 <발레리나>는 '존 윅'이 아닌 새로운 캐릭터 '이브'를 중심으로 기존 시리즈와는 또 다른 새로운 도전을 한다.


2.

냉정하게 이야기 하면 <존 윅> 시리즈는 서사가 압도적으로 중요한 시리즈가 아니다. 어느정도 기본만 지켜주면 많은 관객들이 오히려 관대해지는 영화다. <발레리나> 또한 마찬가지다. 눈에 띄는 서사 구조 같은 것은 없지만 불필요한 이야기는 걷어내고 이브라는 새로운 캐릭터와 그 인물이 보여주는 화려한 액션에 집중할 수 있다. 게다가 기존 세계관의 설정을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는데, 새로운 설정을 구태여 추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따로 관객들을 이해시켜야 하는 수고가 없고, 덕분에 주인공에 집중한 상태로 내닫을 수 있다. 이 부분은 확실히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주인공 이름을 '이브'로 짓고, 극 중 이브가 상대하는 악당은 일종의 종교집단으로 묘사되며, 극 중에서 실제로 '아담과 이브'를 언급하는 것으로 봤을 때, 어떤 의도가 있었음에는 분명하다. 이 부분을 조금 더 재밌게 살릴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정도로 활용하지는 못한 것 같아 아쉽다.


3.

영화 <발레리나>

또 한가지 아쉬운 점은 영화가 쌓아온 규칙과 선을 너무 쉽게 넘나든 다는 것이다. 극 중 컨티넨탈 호텔은 살인이 엄격하게 금지된 곳으로 기존 시리즈에서는 2편 후반부에 되어서야 겨우 그 규칙을 깨는 장면이 나온다. 이후 3편은 사실상 컨티넨탈 호텔의 규율을 어긴 것을 수습하는 내용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발레리나>에서는 컨티넨탈 호텔 내에서의 살인이 너무 쉽고 빠르게 일어난다. 물론 이후 규칙을 어긴 자들의 최후를 보여주는 등 그래도 기존의 설정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지만, 그 과정 또한 쉽고 빠르게 지나간다. 이 전 영화에서 규칙의 절대성을 표현하기 위해 쌓아온 서사들이 생각나 아쉽다.


4.

결국 이 영화의 키포인트는 액션이다. '존 윅 세계관'이라는 설정을 달고 나온 이상, 사람이 기대하는 것이 분명히 존재하고, 이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면 아무리 잘 만든 영화라 할지라도 관객들은 채워지지 않는 허함을 가지고 극장을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액션은 충분히 보여준다. 사실 이 영화는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액션 없는 장면이 거의 없다. 러닝타임 전체를 통틀어 가장 오랜 시간 액션 없는 구간은 마지막 스텝롤 올라갈 때다. 매 씬마다 적어도 한 두명씩 죽어나가는 것을 보고 있자면 아마 이 세계관에서는 아직도 70억 인구를 넘지 못했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하게 한다.


영화 <발레리나>

개인적으로 <존 윅> 시리즈는 1편과 2편, 그리고 3편과 4편으로 묶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1, 2편도 도심 속 무협이긴 했지만 3편부터는 현실과 아득히 멀어져버리기 때문에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다르고, 액션의 결도 다르다. 굳이 따지면 <발레리나>는 <존 윅> 3, 4편과 결이 비슷하다. 아마 시리즈 후반부의 <존 윅>을 좋아했다면 이번 편도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총격전 내에서의 다양성을 추구하기 보다는, 주위 물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기발한 방식으로 악당들을 때려 눕힌다. 특히 스케이트 날을 무기로 이용한다거나, 권총에 식칼을 붙여 활용하는 모습은 기존 시리즈와 차별을 둔 액션의 대표적인 예다.


여러 액션들이 쉼없이 나오지만 아무래도 화염방사기 전투 장면이 마지막 하이라이트로 등장하기 때문에 가장 인상깊게 봤을 관객들이 많을 것이다. <존 윅 4>의 'Dragon's Breath' 전투만큼의 임팩트는 없었던 것 같아 아쉽긴 하지만 확실히 어느정도 쾌감은 전달준다. 수 많은 액션들 중에서 개인적으로는 고립된 상태에서 수류탄만을 이용하여 악당들을 상대하는 장면이 이브라는 캐릭터와 그가 행하는 액션의 정체성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직은 많은 미션을 수행하지 못한 새내기 킬러의 '우격다짐', '막무가내' 액션의 정점으로 보이고 시각적으로도 굉장한 쾌감을 선사한다. 확실히 기존 시리즈에서 보지 못한 액션임은 분명하다.


영화 <발레리나>

아무래도 새내기 킬러다보니 깔끔하게 사람을 죽이지는 못하고 당연하게도 기존보다 훨씬 더 잔인해졌다. 물론 기존 시리즈 또한 온순한 편은 아니었지만 이번 편에서는 사람이 폭탄에 터져 죽는 모습, 도끼가 얼굴에 박히는 모습 등 다소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는 장면들을 가감없이 표현하다.


5.

영화 <발레리나>

예고편에서도 이미 공개했듯 존 윅이 직접 등장한다. '오랜만에 그의 액션을 볼 수 있어 반가웠다'라고 하기엔 영화 <존 윅 4>가 개봉한 지 2년 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등장만으로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는 어쩔 수 없이 적긴 하다. 보통 후속 시리즈를 이끌어갈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 때 기존 캐릭터를 낮춰 묘사하며 새 인물을 띄워주는 경우가 많은데, <발레리나> 속 존 윅은 여전히 세계관 최강자임을 공고히 하며 여유롭게 타 캐릭터들을 제압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충분한 예우를 보여준다. 비록 그의 비중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기존 팬들이라면 만족스럽게 볼 수 있었을 것이다.


6.

꽤 재밌는 스핀오프 작품이다. 기존 시리즈의 설정도 나쁘지 않게 차용하고, 기존 주인공에 예우도 보이면서 새로운 인물과 새로운 스타일을 새롭게 펼쳐냈다. <존 윅> 시리즈가 당분간은 계속 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와 같이 준수하게 관련 영화들을 제작한다면 당분간 이 시리즈의 생명력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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