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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은 규모의 경제를 따르지 않는다, 비례해서 커질 뿐

2025_31.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

by 주유소가맥

1.

영화 제작 국가가 한국이라는 이유만으로 엉성한 영화에 높은 점수를 주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제작 국가는 제작 국가고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이미 전 세계를 대상으로 영화를 만드는 나라 아닌가. 그럼에도 하나의 문화권에 소속되고, 국적을 가지고 있으며, 이 나라에서 나고 살고 했던 평범한 한 사람인 이상, 국내 영화계가 잘됐으면 하는 생각이 마음 한편에 존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세상에 자기 나라 산업 모조리 말아먹었으면 좋겠다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 나는 우리나라 영화계가, 그리고 극장산업이 잘 됐으면 좋겠다. 그런데 조건이 있다. 단순히 아무 영화나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영화가 나오고, 관객들이 그 영화를 찾아 흥행하고, 이를 통해 다시 좋은 영화가 제작되고, 좋은 영화를 봤던 관객들이 그 경험을 기반으로 다시 극장을 찾는 선순환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의미다. 물론 말도 안 될 정도로 순수한 욕심인 것은 알고 있다. 그래도 이상적인 꿈을 꾸는 것은 사람의 본능이니까.


전지적 독자 시점 포토 (4).jpeg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

그런 이유로 나는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이 제작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당연하게도 진심으로 잘됐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요즘같이 제작투자에 소극적인 시기에 큰돈 들여 만든 블록버스터 영화인데, 흥행까지 시원하게 성공하면 앞으로의 영화 제작 시장에 다시금 활력을 불어넣어 줄 마중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쉬움 크게 남는 만듦새는 영화에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들게 만들었다. '잘됐으면 좋겠다'는 한국영화시장에 대한 막연한 바람이다. 그 막연한 바람을 위해 아쉬움 큰 영화에 높은 점수를 줄 수는 없다.


2.

눈앞에 보이는 게임 UI, 디스토피아 세계관, 코인, 아이템, 도깨비, 스킬, 성좌 등 다양한 설정들이 나온다. 설정이 많긴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게임 세계관이구나'라는 것만 받아들이면 사실 나머지는 노력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이해가 따라온다. 무엇보다 김독자와 도깨비의 입을 통해 지나치게 친절하게,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다소 과하게 모든 것을 대사로 설명하기 때문에 억지로나마 이해시킨다. 아마 어렸을 적 게임을 조금이라도 즐겼던 사람이라면 급하게 쏟아내는 설정들에 잠시 과부하가 걸릴지라도 이해를 못 하지는 않을 것이다.


전지적 독자 시점 포토 (5).jpeg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

이는 반대로 이야기하면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의 관객이라면 이 설정들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요컨대 모든 설정을 대사로 설명하는데, 그 설명조차 이해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주인공의 입을 빌린 것은 수많은 설정들을 빠르게 풀어놓기 위한 선택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관객을 설득하는 것으로 까지 이어졌는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설정이 복잡할지언정 이야기 자체는 쉽고 빠르다. 설정만 빠르게 받아들인다면 그 외 이야기는 영화만 따라간다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영화는 이타주의라는 가치를 전달하기를 원하고, 이를 위해 플롯을 꼬아놓거나 어려운 복선을 마련해 둔 것 없이 단순하게 밀고 나간다. 또한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야기에서 오류가 크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관객들이 의문을 표할 부분도 적다.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은 아쉽지만 이야기 자체의 큰 문제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3.
결국은 액션 영화고 블록버스터 영화다. 액션이 뛰어나고 잘 때려 부수어주며 시각적인 쾌감을 선사하면 기본적인 재미를 마련해 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부분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전반적으로 액션이 무게감이 없다. 강력한 한 방을 준비할 때에는 다소 투박하고 무거운 느낌을 통해 힘이 응집되는 느낌을 줘야 한다. 멀리 뛸 때는 도약 자세, 활공 속도 등을 조절하여 관객들에게 인물이 거스르는 중력을 느끼게 해야 한다. 괴물의 강력한 한방을 방패로 막아낸다면 밀려나는 방패의 움직임과 인물의 신체 반동을 이용하여 인물이 느낄 육중함을 표현해야 한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그런 부분들이 많이 아쉽다. 때문에 액션 장면이 영화 대부분이라 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분량을 차지하나 그 쾌감이 부족하다.


전지적 독자 시점 포토 (1).jpeg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

컴퓨터 그래픽 또한 다소 아쉬운 편이다. 처음 도깨비가 나왔을 때 약간 당황한 관객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게임 세계 속이라고 생각한다면 (의도했는지는 모르지만) 이질적인 그래픽의 이유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다소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


4.
영화 외적인 이야기지만, 다른 영화들에 비해 비교적 제작진 인터뷰가 많은 것 같이 느껴졌다. 그만큼 주목을 많이 받는 영화고, 냉정하게 얘기하면 큰 규모의 제작비를 썼으니 홍보차 인터뷰가 많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 또한 자연스럽게 인터뷰를 읽어보았는데, 몇몇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었다. '비정규직', '지방대', '홀어머니'를 언급하며 힘든 사회 속 부침을 겪는 청년 세대들을 다루고자 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사실 위 설정들은 영화 속에서 어떤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무언가 공감대를 얻고자 하는 인터뷰로 보였으나, 오히려 일반 관객들에게 긍정적 효과보다는 영화의 어딜 보고 제작진의 의도를 읽어야 할지 의아함이 더 크게 남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5.

전지적 독자 시점 포토.jpeg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

영화가 잘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은 진심이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좋은 평가를 줄 수 없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진심이다. 이 영화가 앞서 언급한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을는지는 모른다. 확실한 것은 이런 영화를 만드는 것은 큰 도전이고 이런 도전 자체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다 많은 도전을 기다린다. 그 영화들은 지금의 아쉬움을 조금 더 채워줄 수 있는 영화들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도전들로 인해 성공할 언젠가의 영화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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