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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허 없는 사람도 풀악셀 한번 밟고 싶어지는 엔진 소리

2025_30. 영화 <F1 더 무비>

by 주유소가맥

1.

몇 번 고백한 적 있지만 나는 차에 관심이 없다. 면허 자체도 20대 중후반에 들어서야 취득했으니 취득 시기도 꽤 늦었고, 실제 운전 또한 작년 말쯤에야 몇 백짜리 중고차 하나 사다 놓고 느지막이 시작했으니 운전 실력이 뛰어날 리도 없다. 그런 고로 당연하게도 F1 경기 또한 별 관심 없다. 구독하고 있는 OTT 서비스에서 F1 경기 중계를 한다고 듣기는 했다만, F1 경기는 커녕 사실 그 OTT 어플 자체를 실행시킨 적이 거의 없다. 영화 <F1 더 무비> (이하 <F1>)로 나를 이끈 것은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린 속도로 내달리는 화려한 자동차 경주가 아니라 조셉 코신스키 감독과 브래드 피트 배우일 것이다. 딱 그 정도쯤이었다.


2.

<F1>은 레이싱 영화다. 조금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자신의 모든 매력을 레이싱 경주에 올인한 영화다. 이는 그만큼 레이싱 경주가 주는 매력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고, 반대로 레이싱을 제외한 다른 부분의 매력이 다소 부족하다는 의미기도 하다. 물론 영화 자체가 복잡하고 어려운 서사가 아닌 역동적인 레이싱을 보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만든 영화다 보니, 연출가 자체도 서사에 대한 고민이 그렇게 크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영화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는 다소 빈약한 편이다. 우선 설정 자체도 많이 낡은 편이다.


common (1).jpeg 영화 <F1 더 무비>

과거의 영광을 가지고 한물 간 드라이버로 활동하는 소니 헤이스에게 F1 팀을 운영하는 옛 동료가 찾아오고 이를 계기로 F1 팀에 합류하게 된다. 젊은 신참이 무시하기도 하지만 결국 실력으로 스스로를 증명해 낸 소니는 점차 사람들을 하나의 팀으로 뭉치게 만들고, 가장 높은 목표를 향해 질주한다.


이 이야기에서 '소니 헤이스'라는 이름과 'F1'이라는 스포츠 종목만 가린다면 아마 <F1> 외에도 떠오르는 영화들이 꽤 있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많은 영화가 이런 이야기 구조를 가지기 때문이다. 당장 조셉 코신스키 감독의 전작 <탑 건: 매버릭>만 보더라도 위 이야기 구조와 거의 흡사하다.


물론 이 영화에서 스토리 라인에서 기시감이 느껴지고 단순하다는 이유로 비판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 단순한 이야기 속에서도 설명이 빈약한 부분이 있는데, 이는 확실히 비판할만한 부분이다. 조슈아가 소니에게 감화되는 과정을 중간중간 보여주긴 하지만 마지막 깨달음에 도달할 때는 너무 급하게 초월한 듯한 인상을 심어준다. 마지막 레이싱 때, 소니의 부상으로 인한 컨디션 저하는 뭔가 일이 있을 것처럼 보여주다가 결국 '기합'으로 이겨낸다.


F1 경기를 잘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시즌 마무리도 못하고 중반 즈음에 퇴출될 법한 주인공의 경기 스타일도 '영화니까' 정도로 넘기고 가는데, 창작에 방해가 될 정도의 고증까지는 필요 없겠지만 상당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요컨대, 이 영화에서 받는 쾌감은 대부분 시각적인 부분에만 기인한 것이다. 스토리가 단순할 순 있지만 흐지부지하게 마무리하는 것은 확실히 아쉬운 부분.


3.

그런데 이 모든 단점을 상쇄하는 것이 바로 경기 장면이다. 영화는 시작과 함께 주인공 소니의 레이싱을 보여준다. 영화는 이 장면에서, 그러니까 시작과 동시에 '이제부터 레이싱 장면들로 관객들을 압도하겠습니다', 선언한다. 그리고 영화는 이 선언을 러닝타임 마지막까지 어기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간다. 역동적인 레이싱 연출과 압도적인 사운드 효과는 극장이 아니라 실제로 F1 경기장에서 경기를 직관하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여기에 드라이버 시점의 경기 진행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니 관객을 넘어 실제 경기에 참여한 듯한 착각까지 불러일으킨다.


F1 더 무비 포토.jpeg 영화 <F1 더 무비>

사운드 부분이 굉장히 훌륭하다. 단순히 엔진음 정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레이싱 장면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하더라도 영화가 경기 중계가 아닌 이상 달리는 자동차만 보여줄 수는 없다. 물론 달리는 자동차가 나오는 와중에도 무조건 엔진음만 들려줄 수도 없다. 이때 배경음악들이 그 사이의 공백들을 꽉꽉 눌러 담아 채워준다. 적어도 청각적인 부분에 있어서 심심할 틈이 전혀 없는 영화임은 분명하다.


모든 영화들은 극장에서 봐야 그 의미가 훨씬 더 크다고 믿긴 하지만 이런 영화일수록 더더욱이 극장에서 봐야 그 재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과연 집에서 OTT를 통해 이 영화를 봤다면 이 선언이 감상자에게 온전히 전달될 수 있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4.

어느 한 부분만 높은 평가를 받는 영화가 있다. 당연하게도 어느 한 부분이 낮은 점수를 받는 영화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딱 들어맞게 강력한 장점이 단점을 덮어주는 영화는 오랜만에 만나는 것 같다. 아마 면허 없는 사람이더라도, 고속도로에서조차 속도 내는 것이 무서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본다면 아마 한 번쯤은 풀악셀 한번 밟아보고 싶은 충동이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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