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제목의 장벽만 넘어서면 my little sodapop

2025_29.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by 주유소가맥

1.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뻔뻔하게 밀고 나가는 것은, 심지어 그것을 꽤 그럴듯하게 설득까지 시키는 것은 그 영화가 가진 힘이다. 사실 뻔뻔하게 밀고 나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뻔뻔함으로 관객을 설득시키는 것은 그 사람의 능력이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그렇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라는 단어 조합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나마 '데몬'과 '헌터스'는 그럴 듯 하지만, '케이팝'은 둘 중 어느 단어에 붙여도 왜 이런 조합이 나왔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꽤 그럴듯하고 심지어 몰입된다. 영화가 끝날 때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나름대로의 실력이 있는, 꽤 영리한 영화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아마 대부분 사람들 그랬을 것이라고 짐작하는데, 대체로 큰 기대는 없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솔직히 <케이팝 데몬 헌터스>라는 제목을 보고 너무 본편이 보고 싶어 발 동동 구르며 기다리는 사람이 얼마나 있었겠는가. 그런데 기대가 크지 않아서일까, 오히려 꽤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도전은 '케이팝'과 '데몬 헌터스'를 묶은 것 정도로 끝난다. 그 외 영화 전반적으로 전형적인 장르 영화 구조를 철저하게 따르고, 그 위에 유려한 애니메이팅 기술과 속도감 있는 액션, 그리고 화려한 음악을 덧씌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복잡하게 잘 만든 영화가 아니라 단순하지만 단단하게 만든 영화다. 쉬이 공감하기 어려운 설정 하나만 남겨두고 나머지 복잡한 내용과 구조를 일부러 쳐낸 것이라면 굉장히 현명한 선택이라고 본다.


3.

영화가 전반적으로 속도감 있다. 시작과 동시에 '옛날부터 이런 사람들이 있었고, 이제는 그 사람들이 케이팝 스타가 됐어'라는 이야기를 2분 30초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짧게 언급하고 바로 현대 시점의 헌트릭스 3인방으로 넘어온다. 그리고 악령들과 싸우는 3인방, 관객으로 가득 찬 콘서트, 팬들 덕분에 더욱 강력해지는 혼문, 이들이 무서워 땅 아래 숨은 악령들까지 보여주는 데 영화 시작으로부터 9분이 채 안 걸린다. 이 짧은 시간 안에 영화의 모든 설정을 다 보여준 것이다.


내용 진행뿐만 아니다. 액션 또한 굉장히 속도감 있고, 역동적이다. 주인공 3인방이 쓰는 무기가 각자 다른데, 해당 무기들을 이용한 액션들도 꽤 개성 있게 잘 뽑아냈다고 보인다. 단순히 때리고 맞는 액션뿐만 아니라, 무대에서 각 인물들이 보여주는 안무들을 봤을 때에도 제작 시 캐릭터 움직임에 얼마나 신경 썼는지 알 수 있다.


4.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아무래도 한국 사람인지라 한국 배경의 영화를 보면 고증까지는 아니더라도 눈에 익는 소품이나 배경을 살펴보게 되는데, 이 부분에 있어서도 꽤 만족스럽다. 타국에서 만들어진 한국 배경 영화 중 이 정도까지 한국을 디테일하고 현실감 있게 묘사한 영화는 없었던 것 같다.(물론 애초에 본격적인 한국 배경 콘텐츠가 많지도 않았지만) 보통 미국 영화에 등장하는 동양식 무기는 대부분 쿠나이, 카타나 정도였는데,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한국 전통에서 따온 무기를 활용하니 꽤 반갑게도 느껴진다.


심지어 무기뿐만 아니라, 극 중 자잘한 소품과 배경, 그리고 무대 백월까지 디테일하게 한국적인 요소들로 채워 넣었다. 아무리 한국계 감독이 연출했다고는 하지만 이 모든 고증을 갖추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영화 너머의 노력이 눈에 선하게 보일 정도다.


5.

사실 이와 같이 음악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하게도 음악이다. 제목에 '케이팝'을 달고 나왔고, 이 제목으로 인해 응당 기대하는 것이 있지 않는가. 악귀를 쫓을 만큼 좋은 음악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부분에서는 충분히 자기 몫을 하는 것 같다. 영화 시작과 동시에 악령을 때려잡는 헌트릭스가 부르는 'How It's Done'은 아직까지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숨기지 못한 관객들에게 신뢰를 불어넣음과 동시에 앞으로 이 영화가 보여줄 전반적인 영화의 톤을 확실하게 인식시킨다. 'Soda Pop'은 영화 속 삽입곡 중 가장 중독성 넘치게 느껴지는데, 심지어 극 중 사자 보이즈가 처음 등장할 때 부른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케이팝 보이그룹의 데뷔 콘셉트의 그것과 너무 닮아 있어 한편으로는 무서울 정도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이 외에도 극 중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부른 'Free'와 가장 극적으로 감정을 몰아치는 'Golden'까지, 여타 다른 음악영화들이 가지고 있는 정석적인 음악 구성을 (그것도 꽤나 완성도 높고 견고하게) 따르고 있다. 물론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은 내가 위 음악들을 디테일하게 뜯어보고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각종 음악차트, 심지어 빌보드 HOT 100 차트 상위권까지 차지하는 것을 보면 대다수 관객들도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6.

사실 제목 자체가 진입장벽이 되어버리면 극장에서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라는 제목을 극장에서 처음 본다면 15,000원을 내고 티켓을 사서 100분 정도 되는 시간을 할애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성공은 어쩌면 어느 정도 진입장벽이 있더라도 경제적 부담 없이 편하게 볼 수 있고 심지어 원한다면 언제든 멈출 수 있는 OTT이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전히 나는 OTT보다 극장을 훨씬 선호하지만, OTT의 효용은 이미 한참 전부터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7.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예상치 못한 준수함에 놀라 좋았던 부분을 더 집중하게 되는 영화다. 아마 제목의 장벽을 넘어서지 못한 사람들이 아직 꽤 있을 것이다. 조금만 용기 내서 그 거부감을 넘어선다면 만족스럽게 'my little sodapop'이라며 흥얼거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