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_28. 영화 <슈퍼맨>
1.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자면 예고편이 나올 때마다, 새로운 장면들이 공개될 때마다 기대감이 떨어졌다. 기대하던 슈퍼맨의 이미지와 크게 다른 설정에, 어쩌면 내가 원하던 슈퍼맨의 이미지는 앞으로도 오랜 시간 동안 영화에서 볼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영화가 됐든 뭐가 됐든 보지 않고는 모르지 않는가. 게다가 내 기대감이 떨어진 건 영화 질에 대한 문제 때문이 아니라 내가 원하던 방향과 다를 것 같아서 그런 것이지 않는가. 그렇게 영화 <슈퍼맨>이 개봉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나 또한 하게 되었다. 왜 불길한 예감은 왜 빗나가질 않는 걸까.
2.
영화는 슈퍼맨의 앞선 서사를 크게 다루지 않는다. 언제부터 메타 휴먼들이 지구상에 나타났고, 칼 엘이 지구에 언제 왔고, 슈퍼맨으로 언제부터 활동했으며, 지금 전투에 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짧은 자막으로 처리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사실 대중문화를 한 번이라도 접한 사람이라면 슈퍼맨을 모를 수가 없다. 게다가 12년 전에도 영화 <맨 오브 스틸>을 통해 슈퍼맨의 기원을 다루기도 했다. 어차피 알만한 내용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넘어가는 것도 나름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영화의 아쉬운 부분도 이 서사 생략에서 나온다. 앞선 서사를 생략해 버리니, 슈퍼맨이라는 캐릭터를 설계할 때 꼭 필요한 요소들도 같이 사라져 버린다. 외계에서 온 칼 엘이 지구인 클락 켄트로 성장하고, 그가 어떻게 인간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얻게 되는지 설명하는 것은 그가 슈퍼맨으로 활동하는 당위성을 주고, 이는 조나단과 마사, 즉 지구인 부모와의 관계에서 만들어진다. 슈퍼맨의 과거 서사가 생략되니, 부모님과의 관계성 또한 묘사를 못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슈퍼맨을 인간으로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힘이 떨어지게 된다. 로이스 레인과의 관계도 붕 뜬다. 둘 사이의 관계는 알겠지만, 그렇게 로맨틱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둘 사이 관계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서사를 포기할 거라면 다른 부분에서 임팩트를 크게 줬어야 하는데, 영화 전반적으로 그 정도 임팩트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3.
기존 슈퍼맨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노력한 부분들이 상당수 눈에 띈다. 슈퍼맨이 희망의 상징이라는 것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전과 같이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그 힘을 올곧은 곳에 쓰며, 일종의 절대자 같은 역할을 하며 부여받은 희망이 아니다. 이번 슈퍼맨은 예전처럼 '압도적'이지 않고, '올곧은 곳'이 어딘지 모른다. '절대자'라기에는 영화 대부분 (물리적이든, 여론전이든) 패배하고 있다. 본인의 감정 또한 꽤나 역동적으로 표현한다. 이전 슈퍼맨이 선하기 때문에 인간적이었다면, 이번 슈퍼맨은 감정적이기 때문에 인간적이다. 다만, 그것이 그렇게까지 매력적으로 보였는지는 의문이다. 압도적인 무력을 보여주지도, 그렇다고 압도적인 선함을 보여주지도 못한, 중심을 제대로 못 잡은 캐릭터로 보인다.
렉스 루터는 예전부터 참 아쉬운 캐릭터다. 단순한 시기심이나 열등감 정도로 슈퍼맨을 노리는 것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느껴진다. 슈퍼맨을 노리는 이유를 그렇게 만들 수밖에 없는지 아쉬움이 항상 남는다. 내가 생각하는 렉스 루터는 오히려 영화 <인크레더블 2>의 '에블린'에 가깝다. 다만, 이는 개인 취향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에 관객마다 다를 것으로 보인다.
4.
추가로 나온 메타 휴먼들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다. 그린 랜턴은 영화 <그린 랜턴>이 이전에 제작되긴 했지만 크게 실패했고, 심지어 이번 영화에 나온 그린 랜턴은 할 조던이 아닌 가이 가드너다. 호크걸의 경우 영화 <블랙 아담>을 통해 호크맨이 소개되긴 했으나 해당 영화 또한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고, <블랙 아담> 내용 안에도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길게 있지는 않았다. 미스터 테리픽은 애초에 소개된 적 없는 캐릭터기도 하다. 물론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대충 눈치로 어떤 캐릭터인지 알 수는 있으나 정확히 어떤 인물인지 이해할 수는 없다. 짧게라도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물론 새로운 슈퍼맨을 소개하는 영화기 때문에 다른 캐릭터들에게 크게 시간을 할애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캐릭터를 애초에 많이 등장시키면 안 되지 않았을까. 모든 관객들이 미국 코믹스 팬은 아니라는 것을 한번 더 생각했어야 했다.
5.
액션 자체는 좋다. 속도감이 느껴지는 편집은 눈에 띈다. 감독 특유의 화려함도 꽤 눈길을 끈다. 다만 울트라맨과의 마지막 전투는 다소 맥 빠지게 끝나기 때문에 아쉬움은 남는다. 또한 액션이 전반적으로 무게감이 부족하다. 단순히 영화 톤이 밝아져서 무게감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 정도 슈퍼맨이 말 그대로 '슈퍼'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면 편집을 통해서든, 속도감을 통해서든, 아니면 그들의 액션으로 인한 주위의 리액션을 통해서든 육중한 무게감을 더해줬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6.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많다는 것도, 그리고 그걸 실제로 영화에 많이 집어넣은 것도 알겠다. 하지만 다소 과했고 조금 번잡했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래도 아직 첫 편이다. 불호평을 많이 이야기했지만, 그렇다고 아예 못 만든 영화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앞으로 제임스 건 감독이 이끌어갈 DC 세계관을 조금은 더 지켜봐야 알 것 같다. 애초에 시리즈의 생명력을 단 한 편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으니. 다음 슈퍼맨은 조금 더 다듬어져 나오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