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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해져 버린 전작의 재치와 생기가 아쉬울 뿐

2025_34.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

by 주유소가맥

1.

청년백수 길구 집 아래층에 이사 온 선지 가족. 길구는 '천사가 있다면 이렇게 생겼을 것 같은' 선지에게 첫눈에 반한다. 그리고 다음날, 술에 취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던 길구는 어제와 다르게 강렬한 화장을 하고 자신을 잡아먹을 듯이 달려드는 선지를 보고 혼란에 빠진다. 선지의 아빠 장수에게 선지 몸에 깃든 악마에 대해 듣게 되고, 매일 새벽 깨어나는 악마를 케어하는 보호자 역할의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2.

영화 <엽기적인 그녀>

극을 끌고 가는 소재가 어느 정도 눈에 익는 편이다. 누구나 첫눈에 반할만한 청순한 인물이 전혀 반대의 괴팍한 행동을 하며 그 간극을 통해 매력을 만들어내고 웃음을 유발하는 영화는 이전에도 있었다. 바로 떠오르는 영화는 <엽기적인 그녀>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전혀 다른 인격과 만나 혼란에 빠지는 캐릭터 또한 영화 <두 얼굴의 여친>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엽기적인 그녀>가 2001년에 개봉했고, <두 얼굴의 여친>은 2007년에 개봉했으니 많으면 24년, 적게 잡아도 17년 전부터 많은 관객들이 접해본 이야기다.


3.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는 이 두 영화에 오컬트 요소를 가미해 새로운 매력을 심어주고자 시도한 영화다. 다만 아쉽게도 그게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코미디 장르를 표방하고 로맨스를 메인에 두는 이상 오컬트 장르 쪽의 모습들을 깊게 파고들어 보여주기는 힘들다. 진짜 악마나 귀신처럼 남을 해하거나, 보는 이로 하여금 소름 끼치는 행동들을 넣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은 이해한다.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

결국 <악마가 이사왔다>에서 선택한 방법은 '악마가 깃들었다'라는 소재를 말 안 듣는 고집 센 중고등학생 정도의 행동으로 축소시키는 것이다. 물론 행동이 사소한 것은 문제 되지 않는다. 이를 얼마나 매력적, 혹은 재밌게 표현하느냐가 문제인데, 이 부분을 그다지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보이지 않는다. 극 중 대부분의 악행들은 임윤아 배우의 과한 액션에 기대고 있다. '지금 코미디 연기 하고 있어요'(대표적으로 사재기한 편의점 케이크를 우악스럽게 먹는 장면)라는 것을 과시하는 것처럼 보여주는데, 그 자체가 매력적이거나 재밌게 보이기보다는 단지 부담스러움이 느껴지는 정도라 아쉬움이 느껴진다.


4.

극 전반적인 감정선이 명확하지 않다. 길구는 선지에게 반해 선지 주위를 맴돌다가 새벽마다 선지 몸에서 깨어나는 악마를 케어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 이후 영화는 길구와 선지 사이의 감정선보다 길구와 선지 몸 안에 깃든 악마와의 교류에 조금 더 무게를 둔다. 길구가 악마가 아닌 선지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느낀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작 러닝타임 내내 웬만한 사건은 선지가 아닌 악마와 겪기 때문에 보고 있으면 관객 입장에서는 어떤 관계에 더 몰입해야 할 지 갈피를 못 잡을 수밖에 없다. 선지와의 사랑과 악마와의 유대, 모두 다루고 싶었다면 지금의 분량 배분보다 조금 더 좋은 방식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5.

예전처럼 단순하게 한 장르만 표방하는 영화는 드물다. 이제 장르는 <악마가 이사왔다>처럼 가족, 코미디, 오컬트, 미스터리 등 다양한 종류가 혼합한다. 장르뿐만 아니라 하나의 영화 안에 다양한 메시지나 주제를 섞어 보여주기도 한다. 이를 통해 전혀 새로운, 신선한 영화들이 나오며 발전한다.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

다만, 단순히 한 자리에 모아둔 것과 적절히 배분하여 조화한 것은 다르다. 이 부분에서 감독이 모아둔 장르들이 적절히 혼합되었는지 의문이 든다. 이상근 감독의 전작인 영화 <엑시트>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정확히 말하면 비교될 수밖에 없다. 재난영화를 표방하여 그 안에 가족 이야기, 청년문제를 끌고 들어왔고, 이를 아주 훌륭하게 섞어냈다. 이번 <악마가 이사왔다>에서는 <엑시트>에서 보여줬던 재치와 생기가 많이 희미해져 아쉬울 뿐이다.


6.

영화가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사람들이 가진 따뜻함이다. 사랑, 선의, 온기 등 사람이기 때문에 베풀 수 있는 따뜻한 감정들, 그리고 이로 인해 상처받은 영혼이 위로받는 이야기다. 물론 전달하는 방식에서 아쉬운 지점들이 보이긴 했지만, 죽고 죽이며, 터지고 시끄러운 영화들이 대부분인 극장가에 한 번씩 필요한 주제임은 확실하다. 이상근 감독은 웃음과 온기, 그리고 가족들 사이에 피어 나오는 애정을 다루고 싶어 하는 감독인 것 같다. 이번 작품이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다음번에는 조금 더 좋은 작품으로 관객들에게 온기를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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