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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소가맥 Feb 10. 2024

꾸준한 미디어 프랜차이즈의 존재는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2024_06. 영화 <명탐정 피카츄>

1.

 한참 전에 놓았던 게임을 아주 즐겁게 하고 있다. 예전만큼 밤을 새워가며 게임을 즐길 정도로 체력도 좋지 않고 이제는 게임에 그렇게까지 열정적이지도 않아 다른 게이머들의 '즐겁게 즐긴다'의 선에서 크게 벗어난 수준일 수도 있지만, 오랜만에 영화 이외의 것에 큰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어떤 게임이냐고? 바로 포켓몬스터다. 마지막으로 포켓몬 게임을 즐겼던 것이 중학교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으니, 10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넘어 다시 그 세계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여러 게임들의 호평으로 '나도 한번 해볼까?'하고 몇 년 동안이나 구매를 미루고 미뤄왔던 콘솔 기기가 우연치 않게 손에 들어왔다. 막상 손에 들어오니 콘솔 기기 구매를 고민하게 했던 다른 게임은 단 한 번의 고민조차 하지 않고 완전 뒷전이 되어버렸고 오로지 포켓몬, 포켓몬만 붙들고 있다.


2.

 생각해 보면 포켓몬과 함께 했던 미취학 아동 시기와 10대는 물론이고, 20대도 나는 포켓몬과 함께 했다. 때는 군대 휴가 때, 조금 더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아마 상병 말에서 병장 초쯤의 휴가 때로 기억한다. 대학 시절 시간만 나면 함께 희희낙락 거리던 형과 만나 생산성 없는 말장난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밤을 새우며 게임하는 것은 이미 사치의 영역으로 넘어간 지금과 다르게 그 당시 우리의 신체 조건은 건강 관리를 하지 않았음에도 하룻밤 정도 뜬 눈으로 보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와 같았다. 아니, 식은 죽을 먹는 것이 차라리 더 어려웠다.


영화 <포켓몬 더 무비 XY 후파: 광륜의 초마신>

 그렇게 아침 해가 뜨는 것을 바라보는데 문득, 영화를 봐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부대 내에 갇혀 있는 동안 영화관에 목말라 있던 나는 며칠 굶은 걸인마냥 휴가 기간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영화란 영화는 몽땅 관람하고 난 이후였다. 하지만, 운명과도 같이 딱 한 편, 마침 내가 보지 않은, 마침 지금 출발하면 딱 맞는 시간에 상영하는 영화가 걸려 있었으니, 바로 <포켓몬 더 무비 XY 후파: 광륜의 초마신>이었다. 


3.

 지금 생각해도 꽤 웃긴 그림이었다.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밤을 새워서 붉게 충혈된 눈과 떡진 머리, 후줄근하고 꾀죄죄한 옷차림, 그리고 전역을 앞두고 괴롭히는 이 하나 없이 편해진 부대 생활에 극심하게 불어버린 몸무게, 누가 봐도 아저씨 둘이 포켓몬 극장판을, 그것도 조조 영화로 보러 온다니 말이다. 그 당시는 키오스크가 활성화된 지금과 다르게 직원과 직접 대면하고 표를 뽑았는데, '사은품 드릴까요?' 물어보며 피식하고 웃던 그분이 눈에 선한 것까진 아니지만 얼추 기억이 난다. 약간 민망해진 우리는 표만 받고 후다닥 상영관으로 들어가려 했는데, 문득 기념이 될 수 있겠다 생각이 들어 나 혼자 다시 돌아가 상품을 받아갔다. 아마 게임 속 포켓몬을 받을 수 있던 코드로 기억한다. 물론 나에겐 쓸모가 없었지만.


4.

영화 <명탐정 피카츄>

 그리고 또 몇 년이 흘렀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이라는 극심한 스트레스 요소를 해결하지 못해 고통받던 시기였다. 영화 <명탐정 피카츄>가 개봉했던 것도 그즈음이었다. 꿈으로만 여기던 포켓몬 실사판이라니, 게다가 라이언 레이놀즈가 피카츄 연기를 하지 않는가. 오랜만에 동심으로 돌아가 포켓몬을 보고 있자니 졸업이라는 부담과 취업이라는 벽이 뿌옇게 옅어진 것만 같았다. 영화도 예상외로 그럭저럭 잘 만들었던 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귀엽지 않는가.


5.

영화 <명탐정 피카츄>

 이렇게 생각해 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거칠었던 시기에도,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도 나는 포켓몬과 함께했다. 그리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영화들을 봤을 때 아주 재밌었다는 것이다. 세상의 찌든 때를 토로하듯 털어놓는 여러 영화들을 보던 어른들에게는 다소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실제로 타겟층이 어린 IP 긴 하지만 이상하게도 너무 즐거웠다. 그런 말이 있지 않는가, 가장 순수할 때 만난 친구가 평생 가는 친구라고. 어쩌면 어릴 적 봤던 포켓몬은 나와 평생 함께 가는 가장 편한 친구이지 않을까, 그래서 그렇게 즐겁게 그 영화들을 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 보면 포켓몬은 어린 나와 지금의 나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와 같은 역할을 한다. 어린 시절의 나부터 지금의 나까지 꾸준하게 즐길 수 있는 IP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리고 나는 30대의 초입에서 다시 포켓몬을 만났다. 이 게임을 언제까지 플레이할는지 나조차도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쨌든 나는 지금 너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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