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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소가맥 Feb 03. 2024

사랑에 대한 푸념으로 시작하는 사랑 가득 담긴 청춘영화

2024_05. 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

1.

 주인공 '맨발'은 사무라이 영화의 열렬한 팬이자 영화 제작 동아리 회원이다. 동아리를 통해 본인의 시나리오 <무사의 청춘>을 제작하고자 계획하지만, 주야장천 사랑 타령뿐인 로맨스 영화의 압도적인 득표로 무산되고 만다.(<무사의 청춘>이 득표한 단 한 표 또한 정황상 맨발 본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맨발은 친구 '킥보드', '블루 하와이'와 함께 사무라이 영화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하며 아쉬움을 달랜다.


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

 어느 날, 우연히 극장을 찾은 맨발은 <무사의 청춘>의 주인공 역할로 제격인 '린타로'를 발견하게 되고, 잠정 중단 되었던 <무사의 청춘> 제작 프로젝트가 재가동된다. 하지만 순조롭게 진행되던 영화 촬영도 잠시, 어딘가 수상한 린타로의 비밀이 하나둘씩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2.

 영화 속 여름에는 파릇파릇한 생기가 가득하다. 그렇다, 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는 너무 당연하게도 청춘 영화다. 이를 의식하 듯, 영화 곳곳에 청춘이라는 단어와 이를 연상할 수 있는 설정들을 집어넣는다. 심지어 팀을 꾸린 후 맨발이 가장 먼저 하는 말도 '너희들의 청춘을 내가 좀 쓸게'지 않는가. 대다수의 청춘 영화는 성장과 맞닿아있다. 청춘은 살면서 가장 어린 시기임과 동시에 가장 큰 성장을 이뤄내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미래에서 온 린타로는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사람이다. 적어도 그에게 있어 과거 사람들은 결괏값이 고정된, 변수란 없는 온전히 완결된 사람들이다. 린타로는 맨발의 첫 영화가 유실될 것이라는 것도, 유실되지 않더라도 본인이 그렇게 만들어야 할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최선을 다해 촬영에 임한다. 지나가는 한마디 대사조차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몰입한다. 그리고 맨발에게 그 영화를 반드시 찍어야 한다고 몇 번이나 강조하고 부탁한다. 


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

 우리는 살아가며 어릴 적 총기를 잃는다. 시간이 흐르면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늙어 간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젊음의 희생을 담보로 발전된 내일을 얻는다. 어차피 없어질 청춘이라고 무턱대고 낭비하면 내일의 나는 없다. 영화는 이 교훈을 맨발의 첫작에 빗대어 생기롭게 전달한다. 누군가의 젊음처럼 어차피 사라져 버릴 것이 뻔한 작품이지만 그 작품을 열심히 찍지 않으면 맨발은 거장 감독으로 발전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썸머 필름을 타고!>는 영화에 빗대어 우리의 청춘이 언젠가 잃어버릴 과거의 한 조각이 될지라도, 그것을 다신 찾을 수 없을지라도 그 젊음을 허투루 보내선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영화다.


3.

 맨발은 영화를 통해 미래와 현재를 잇는 존재가 되려고 한다. 맨발은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존재'라 이야기하며 '내 영화를 통해 미래와 연결하고 싶다'라고 이야기한다. 맨발의 목표는 영화를 통해 세대를 잇는 것이다. 하지만 린타로의 말에 따르면 미래에는 영화가 없다. 길어야 몇 초 정도밖에 되지 않는 영상들 밖에 없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맨발에게 영화가 없어진다는 것은 영화를 제작해야 하는 이유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큰 혼란에 빠진다.


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

 린타로는 다시 맨발의 혼란을 바로잡아 준다. 미래에서도 영화가 없어지지 않도록 어떻게든 노력할 테니 영화를 끝까지 제작해 달라 부탁한다. 린타로는 절대다수가 영화의 가치를 경시하는 사회가 된다고 하더라도 마지막까지 그 가치를 고수하는 한 사람이다. 이는 맨발 또한 마찬가지다. 영화에서 장르로 스케일이 축소되었을 뿐, 맨발이 사무라이 영화의 가치를 호소하는 것은 린타로가 영화의 가치를 호소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 누구도 사무라이 영화를 좋아하지 않지만, 맨발만은 끝까지 남아 사무라이 영화를 직접 제작하며 그 명맥을 이어가고자 한다. 어쩌면 이 영화가 보여주는 진짜 타임머신은 린타로가 가지고 있는 기계가 아니라 영화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맨발은 린타로 주연의 영화감독이자, 린타로가 사랑하는 상대, 그리고 동시에 사무라이 영화를 제작했던 과거 누군가의 린타로가 된다. 이때 <썸머 필름을 타고!>는 영화를, 더 나아가 한 존재를 인정하고 그 가치를 수호하는 누군가를 담은 영화다.


4.

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요소는 영화 속 그 누구도 갈등을 심화시키지 않는 착한 인물들만 있다는 것이다. 카린은 맨발을 무시하지만 <무사의 청춘> 촬영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현장 일을 돕는다. 맨발은 라이벌이라 생각한 카린이 재생한 영화가 그토록 무시하던 로맨스 영화였음에도 끝까지 보고 결국 눈물을 훔친다. 딱 봐도 불량한 양아치는 부탁 한 번에 아무 불만 없이 조명 감독을 맡으며, 감독의 잠수에 촬영 일정이 미뤄져도 한 순간의 짜증만 있을 뿐 촬영이 시작하면 귀신같이 자기 자리에 찾아간다. 킥보드는 짝사랑하던 상대가 다른 사람을 만나더라도 멀리서 지켜볼 뿐 둘 사이를 훼방 놓지 않는다. 이 영화 속, 인물이 야기한 갈등은 없다. (영화의 주제와도 상통하는) 한 가지 갈등은 '미래에는 영화가 없다'라는 사실을 알게 된 맨발 혼자만의 내적 갈등뿐이다.


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

 이게 가능한 이유는 극 중 모든 등장인물이 (그것이 무엇을 향한 어떤 형태의 사랑이든지)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리만 듣고도 어떤 선수가 던진 공인지 맞추는 사람도, 검술만 보고도 어떤 영화의 누구인지 맞추는 사람도, 사랑하는 한 분야를 미친 듯이 파고든 사람들이다. 좋아하는 감독이 고등학생 때 만든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시공을 뛰어넘은 린타로에게 영화 속 검술을 따라 하는 맨발이 이상하게 보일 리 없다. 야구에 미친 듯이 몰입한 코마다와 마스야마는 영화에 대한 맨발의 열정에 쉽게 응했을 것이다. 심지어 맨발의 내적 갈등 또한 결국 영화를 미친 듯이 사랑하기 때문에 느낀 심란함이었다. 본인이 사랑하는 것이 있기에 상대의 사랑 또한 이해한다. 맨발이 내심 미워하던 카린도 사실 누구보다 로맨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맨발을 울릴 수 있는 영화를 재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무엇보다 사랑 영화다. 영화의 시작은 보기 민망할 정도의 사랑 고백과 그런 사랑 영화에 불만을 표하는 맨발의 푸념으로 시작하지만, 이 영화는 그 어떤 영화보다 사랑으로 가득 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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