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_16. 영화 <퍼시픽 림: 업라이징>
1.
2013년, 벌써 10년 하고도 1년이 더 지난 시간. 강산이 한번 변하고도 조금 더 지난 시간. 당연하게도 그때 난 어렸다. 그것도 꽤 많이. 어린 시절 추억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많은 기억들은 잊히고 남아있는 기억들은 미화되어 정확한 사실 관계를 추정하기 힘들지만,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몇 가지 에피소드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영화 <피시픽 림>을 극장에서 관람한 경험이다. 단순히 언제 어디서 봤었는지 뿐만 아니라 영화관 뒷 편의 분식집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때웠던 것도 기억나며 영화를 함께 보았지만 지금은 연락조차 닿지 않는, 그저 아무 소식 들리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어련히 잘살고 있지 않을까 추측할 뿐인 두 대학 선배도 기억난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나는 로봇을 좋아했다. 요즘도 영화 <고질라 X 콩: 뉴 엠파이어> 같은 영화가 개봉할 때면 꾸준히 주장하는 것이 3대 로망인데, 바로 로봇, 괴물, 영웅이다. 사회인으로 성장했어야 할 지금 나이에도 이 세 가지 요소만 보면 가슴이 두근두근 뛰는데, 열 한살이나 어렸던 당시에는 오죽했을까. 심지어 괴물까지 나와서 치고받고 싸우지 않는가. 영화 <퍼시픽 림>을 극장에서 보는 것은 당시 나에게 있어서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사건처럼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하다.
2.
영화 <퍼시픽 림>은 다소 투박하지만 중량감 느껴지는 액션을 구사했다. 때문에 속도감은 잃어 답답함을 느낄 수 있지만 반대로 거대 로봇이 주는 압도적인 박력을 얻었다. 이런 스타일은 11년 전에도, 지금도 찾아보기 힘든 스타일이었다. 영화가 끝난 뒤, 나는 함께 감상한 대학 선배들에게 '육중함'이라는 단어를 끊임없이, 아주 지겹도록 강조했다. 사실 이 영화가 왜 내 취향인지 더 자세히 파고들어 논리적으로 설명할만한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앵무새처럼 그 말만 반복한 것도 없지 않지만, 영화를 분석하고 묘사하는 능력을 떠나 <퍼시픽 림>이 '육중함' 그 자체였다는 것은 누구도 반박할 수 없을 것이다.
소위 돈 냄새나는 거대 로봇 영화는 예나 지금이나 많이 제작되는 편이 아니다. 때문에 극장에 걸리는 한편 한편이 무척 소중하다. 게다가 오랜 기간 기다려 마침내 본 그 거대 로봇 영화가 취향에 딱 맞는 액션을 펼치고 있으니, 거대 자본 들인 현실감 있는 CG의 블록버스터 영화에 어릴 적 봤던 특촬물 스타일 연출이 그럴듯하게 덧입혀졌으니, 어떻게 싫어할 수 있겠는가. 내가 <퍼시픽 림>에 얼마나 빠졌을지는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 덕분에 '3대 로망'에 대한 열정이 더 단단하게 굳어져 1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아마 <퍼시픽 림>이 시원찮게 만들어지고 형편없이 흥행에 실패해 버렸다면 아마 나는 '3대 로망'과 같은 철없는 순위 놀이는 이미 애저녁에 끝내고 더 성숙한 취향을 가진 어른이 됐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몸만 커버린 철없는 어른의 애꿎은 핑계쯤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름 오랜 기간에 걸친 철저한 분석을 통해 도출한 결론이다. 진지하다는 뜻이다.
3.
<퍼시픽 림>의 속편을 기대하게 된 것은 너무 당연한 수순이었다. 긴 시간이었다. 그 사이 나는 군대도 다녀오고, 대학 복학은 물론, 더 나아가 졸업하면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이 되었다. 많은 것이 변했다. 한 가지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취향이었다. 나는 속편 제작 취소 루머가 돌 때에도,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하차했을 때에도, 비록 공개된 예고편이 내가 알던 <퍼시픽 림>과는 많이 달라진 분위기를 풍기더라도 <퍼시픽 림>에 대한 기대를 놓지 않았다. 5년 전 느꼈던 그 짜릿함을 다시 느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4.
본인의 매력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며, 동시에 무척 어려운 일이다. 본인을 제대로 파악하는데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자기 객관화라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나 능숙하게 본인에 대해 파악할 수 있었다면 세상에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며 모든 사람이 사랑 가득 찬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이는 사람뿐만 아니라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본인이 어떤 매력을 관객들에게 어필하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정 수준 흥행에 성공한 대부분의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잊힐 때쯤 속편 소식을 들고 다시 돌아오는 것이 관례 수준을 넘어 공식이 되어버린 할리우드 시장을 생각했을 때, 매력 파악은 북미 쪽 영화 제작사들에게 특히 강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법칙에 가깝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영화 <퍼시픽 림: 업라이징>은 해당 분석에 철저하게 실패한 영화였다. 예고편에서 느꼈던 불안함은 100분이 넘어가는 러닝타임동안 영화를 가득 채웠다. 볼링공을 굴리러 갔는데 탁구공을 치고 있으니 무게감이 줄고 속도감이 올라갔음에도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답답함이 끓어올랐다. <퍼시픽 림>의 매력은 육중함이었다. 오히려 과해 둔탁함과 육중함 사이를 오가는 그 무게감이 예거와 카이주의 전투신을 가득 채웠어야 했다. 건물만 한 로봇이 말도 안 될 정도의 무게감을 기반으로 통통 튀는 액션을 구사하는 것이 보고 싶었다면 <퍼시픽 림> 시리즈가 아니라 영화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찾아봤을 것이다. 심지어 거기는 더 긴 시간 동안 질리도록 날뛰지 않는가.
1편 개봉 당시 숱하게 나왔던 불호 반응과, 뜨뜻미지근했던 흥행성적을 생각하면 노선 변화가 이해 못 할 부분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단단히 잘못되었다. 대중적인 노선을 택하느니 기존 1편의 스타일에 큰 호감을 느꼈던 팬층을 위하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흥행을 생각하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냐 반문할 순 있겠지만, 그래서 이 영화가 노선을 틀어서 흥행했는가. 적어도 내 기준에서 <퍼시픽 림: 업라이징>이 전편보다 나아진 것이라곤 밝은 배경을 통한 시야 확보뿐이었다. 실망감을 넘어선 배신감을 느낀 나는 <퍼시픽 림> 시리즈에 대한 애정이 크게 식어버렸다. <퍼시픽 림: 업라이징> 3년 후, 스핀오프 격 애니메이션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지만 이내 놓아버린 기대는 나를 붙잡지 못했고 그렇게 <퍼시픽 림> 시리즈는 나와 영영 이별해 버렸다.
5.
그래서 본인의 매력을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를 좋아했던 이들이 왜 나를 좋아했는지 본인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면, 전혀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얻기 위해 헛물켜다 모두를 놓치게 될 것이다. 세상의 많은 영화 업계 종사자들 또한 이를 제대로 알았으면 좋으련만. 이후로 나는 영화를 볼 때면 내가 어떤 부분에서, 왜 매력을 느꼈는지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됐다.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교훈에서부터 영화를 감상하는 방식까지, 어쩌면 나는 <퍼시픽 림> 속편을 기다린 몇 년의 시간 동안 인생의 한 부분을 배웠는지도 모르겠다. 비록 영화 <퍼시픽 림> 시리즈는 죽었지만 내 영화 인생 속에는 살아있다. 어쩌면 3대 로망에 어울리는 결말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