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와 이야기 빼고 다 괜찮은 영화
작년에 개봉한 퍼펙트 데이즈는 여전히 인기가 대단하다.
영화를 좋아하는 지인들의 인스타그램에서 이 작품에 대한 극찬이 심심찮게 보이기 시작했다. 찾아보니 평론가와 대중 모두에게 호평일색이었고, 입소문까지 자자했다. 기대감이 커진 나는 서둘러 예매하고 극장을 찾았다. 그리고 영화를 본 후, 크게 당황했다. 이 정도로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사를 받는 작품이라면 나도 분명 좋아할 거라 확신해 가족까지 데리고 갔는데, 결과적으로 너무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영화를 본 후, '삶을 이렇게 피상적으로 그려놓고 '코모레비'로 낭만화하다니 성의 없다'라는 게 첫 감상이었다. 이후 감독이 빔 벤더스라는 사실과 이 프로젝트의 제작 과정을 알게 되면서, 영화 전반에 왜 피상성이 흐르는지 이해는 했지만, 영화가 더욱 싫어졌다. 결국, 이 영화는 일본을 외부인의 선망 어린 시선과 짧은 이해로 담아낸 것에 불과했고, 본질적으로 '화장실 홍보 영화'였다. 물론, 그런 것 치고는 성의 있는 편이다.
영화의 모든 요소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야쿠쇼 쇼지의 연기는 훌륭했고, 호흡도 안정적이었으며, 연출 또한 나쁘지 않았다. 연기가 좋아서 작품이 좋았다면 인정한다. 하지만 나에게 영화는 결국 배우의 연기, 연출, 호흡이 모여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경험이란 총체가 본질인데, 이 작품은 그 핵심이 너무 얄팍해서 끝까지 몰입할 수 없는 영화였다.
이 영화는 일본 재단(The Nippon Foundation)의 프로젝트라고 한다. 일본 재단의 설립자는 전범이고, 이 재단은 전쟁범죄를 미화하는 역사왜곡에 조직적으로 관여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를 보이콧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열광한다.
이 영화는 일본 재단이 ‘도쿄 화장실 프로젝트’의 홍보용 단편 영화를 의뢰하면서 빔 벤더스가 착수한 작품이다. 도쿄 화장실 프로젝트는 시부야구 내 공중화장실을 유명 건축가들이 리모델링하는 프로젝트로, 단순히 화장실이라는 공간을 재해석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영화의 내용과 모순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결국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외국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사업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영화의 피상적인 태도는 오히려 이 프로젝트의 본질과 정확히 일치하는 셈이다.
아래는 영화를 보고 난 직후에 적었던 감상평이다.
이 영화의 감독은 빔 벤더스, 외국인이다. 작품을 보면서도 일본에 대한 강한 동경이 느껴졌는데, 알고 보니 외부자의 시선에서 만들어진 영화였다. 일본의 풍경은 아름답게 묘사되었고, 화면 구성도 인상적이었으나, 피상성을 지우기 어려웠다.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루틴대로 흘러가는 단조로운 하루도, 그렇지 않은 하루도 모두 완전하다. 삶은 있는 그대로 충만하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코모레비’의 설명으로 이 영화가 존재의 리듬을 찬미하는 작품임이 확실해졌다. 주인공의 삶의 결은 나쁘지 않았고, 사진을 찍는 취미도 좋았다. (물질적으로 순간을 남기는 행위에 대한 복합적인 생각은 차치하고.)
그러나, ‘화장실 청소부’라는 직업을 다루면서도 미학적으로 설계된, 지나치게 깨끗한 화장실만 청소하는 장면이 반복될 줄은 몰랐다. 이 영화가 그리는 '일본'과 '화장실'과 '일상'이 다 비슷하다. 미학적이지만, 그 이면에 존재하는 현실의 추함은 철저히 배제된다. 삶의 양면성을 양(陽)과 음(陰)으로 나눈다면, 이 영화에서 음에 해당하는 요소는 늙음, 화장실 청소부라는 직업, 그리고 설명되지 않은 과거의 조각들 정도로 축소되어 있다. 반면, 양의 요소들은 확대된 수준을 넘어 거짓의 선을 너울거린다. 사실상은 미화인데, '예찬'을 표방한다. 음의 부분을 외면한 채 삶을 긍정하는 것은 기만일 뿐이다.
삶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만하고 완전하다는 명제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런 주제를 탐구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 표면만을 답습할 뿐이다. 이 작품이 따뜻한 영화라는 점은 이미 들어 알고 있었기에, 빔 벤더스의 시선에서 표현된 따뜻함이 어떠할지 기대했지만 (<오키쿠와 세계> 같은 작품을 예상했던 듯하다), 실망스러웠다. 노래조차도 너무 직접적으로 영화의 무드를 휘어잡으려는 듯 강하게 느껴졌다.
또한, 영화 속 인물들은 지나치게 연결되어 있다. (비)대화적 교류, 상호적으로 존재를 인지하는 제스처가 일상적으로 거듭하여 발생한다. 매일 같은 시간 점심을 먹는 회사원, 공원의 노숙자, 오목을 두는 정체불명의 누군가, 지하술집 주인, 책방 주인, 술집 여사장, 지적장애가 있는 아이 등. 일반적인 성인이 도시에서 살아가며 일상적으로 겪는 왠만한 교류보다 많고 따듯한 비대화적 교류들. 이러한 관계망은 인위적으로 보였고, 도시와 문화에 대한 피상적 이해와 선망이 투영된 듯했다. 일본의 고독사는 심각한 사회문제다. 과연 이런 낭만적인 과연결을 본인의 도시를 배경으로도 그릴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주인공은 부족한 삶을 충만하게 채워가며 살아가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실질적으로 더 바랄 것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만약 이 영화가 재벌가 자제가 매일 책을 읽고, 사진을 찍고, 취미를 즐기며 삶을 음미하는 이야기였다면, 사람들은 이 영화에 열광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작품은 주인공의 직업이 ‘화장실 청소부’여서 성립하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현실적 노동자로 그려지지 않는다. 맨날 내 집보다 깨끗한 화장실을 ‘천천히’ 닦으며 장인 정신을 발휘하고, 워라밸도 완벽하다.
왜 가족과 연을 끊었는지, 왜 그런 표정으로 동생을 안아주었는지, 왜 마지막 장면에 우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늙어가는 게 슬픈 것이었을까? 외로운 것일까? 초반에는 왜 그렇게 과묵했던 것일까? 배우의 연기가 뛰어나 모호함이 감성적으로 포장되긴 했으나, 이는 결국 메우려고조차 하지 않은 서사의 공백이 아니었을까. 영화에서 밝혀지지 않는 이야기가 캐릭터에게 실제로 존재할 것이라 믿어지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
샅샅이 찾아봤는데 정말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영화를 칭찬한다. 희한하다.
그러던 중 하나의 비평을 발견했는데 너무 공감하고, 또 나와는 천지차이인 정보와 통찰력으로 이 영화를 비평하여 링크를 남겨둔다. (위의 내 글은 비난에 가깝다.) 링크의 글을 통해서 내가 위에서 말하고자 한 바가 무엇인지 이해될 것이라 생각한다.
- 아래 비평 중 -
나는 만약 이 감독이 '도쿄라는 배경에서 화장실을 선전한다'는 미션 없이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본인이 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알고 있는 공간에서 그려냈다면 어땠을지 궁금함과 아쉬움이 남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