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마음

by 김지환

책의 마음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 연필로 메모가 되어 있다.

의도를 알 수 없는 글자 위로 체크.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은 문장에 괄호.

댓글 같은 덧말의 글자들.


원치 않는 타인의 의지가 나의 독서에 스며든다.

지우개로 흔적을 박박 지우고 싶은 마음을 누른다.

낯선 이도 그럴 수밖에 없는 마음이었겠지.

연필로 조그맣게 감상을 남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밤이었겠지.


나는 글자를 읽어가며 두 명의 타인을 읽는다.

작가와 작가의 책을 먼저 빌려 간 독자가 중첩된다.

책은 두 사람의 마음을 갈피 사이사이에 끼워두고

묵직한 시간으로 꾹 눌러 닿게 한다.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작가와

메모를 남길 수밖에 없었던 독자가

300장만큼 포개져 사랑을 나눈다.

창호지 문에 작은 구멍을 뚫고

나와 책은 장난스레 엎드려 내밀한 밤을 관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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