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임으로 시작된 극장 입성기

<미션> 극장에서 본 첫 영화

by 영화킬러


중학생이 되고 사춘기라는 '질풍노도의 시기'(표현만큼 과격하게 보내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면서 자연스럽게 가족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늘었다. 불타오르는 학구열보다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강했던 내 발길이 자연스럽게 향했던 곳은, 바로 건전한 이성의 만남이 가능했던 교회였다. 남동생만 하나 있던 장녀인 탓에 그렇잖아도 오빠에 목말라 있었는데, 교회에 가기만 하면 멋지고 모범적인 오빠들이 우글댔으니 어떻게 친구에게 전도가 안 되고 버틸 재간이 있었겠는가. 성가대에 들어가면 좋아하는 노래도 할 수 있고, 문학의 밤이 열리면 연극 무대에 오르기도 하고, 여름방학 때 가는 수련회와 성탄 전야의 밤샘 예배를 핑계로 집이 아닌 곳에서의 공인된 외박도 가능한 곳, 그야말로 부모님과 신이 허락하신 천국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까무잡잡한 피부에 바가지 머리를 하고 바지만 입던 그때의 내 모습은 소녀보다는 소년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때가 때이니만큼 내게도 마음에만 품고 좋아한다 고백은 못하는 그런 오빠가 있었다. 성가대 연습이 있어 친구와 같이 교회에 갔던 어느 날, 나의 짝사랑 그 오빠의 제의로 여럿이서 같이 영화를 보러 갔다. 그렇게 극장에서 내 생애 처음으로 본 영화가 <미션>이었다.



영화 <미션>은 자그마치 배우 로버트 드니로, 제레미 아이언스가 원주민 마을에 선교활동을 하러 간 신부역으로 출연하고 (조연으로 출연한 우리 리안 니슨 옹의 젊은 시절 모습도 볼 수 있다), 엔니오 모리꼬네가 그 유명한 '가브리엘의 오보에(Gabriel's Oboe)'라는 영화음악을 만들었던 대작 영화다. 푹신한 극장 의자에 앉아 완벽한 어둠 속 스크린을 마주 하고 있을 때, 처음엔 가까이에 있는 짝사랑 오빠를 생각하느라 심장이 하도 저 혼자 쿵쾅거려서 영화를 제대로 못 볼 줄 알았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고나서부터는 누구와 함께 어디에 와 있는지 따위는 모두 잊고 나도 모르게 스크린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끝내 감동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도 좋아하는 배우를 꼽을 때, 로버트 드니로, 제레미 아이언스는 절대 빠지지 않고, 여전히 엔리오 모리꼬네의 음악은 들을 때마다 내 심금을 울린다. 비록 풋사랑이고 짝사랑이었던 그 오빠에게 내 마음을 고백하지는 못했지만, 그 이후로 우리는 제법 죽이 잘 맞는 '영화 친구'가 되어 재미있는 영화가 개봉했다 하면 같이 극장으로 달려갔다. 어쩌면 그때 이후로 내 사랑의 대상은 눈 앞에 존재하는 한 사람에서 만질 수 없는 스크린 속 무수한 인물들로 바뀌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가보지 못한 곳으로 어디든 날 데려가 주고, 해보지 못한 일을 영화 속 배우들을 통해 실감 나게 경험할 수 있게 해 주던 극장이라는 존재가 나에겐 '마법의 양탄자'이자 '요술램프'였던 것이다.




붙임 : 대학생이 되고 더 이상 이성과의 만남의 기회를 굳이 노력해 찾을 필요가 없어짐과 동시에 내 얕디얕은 신앙의 깊이도 바닥을 드러냈고, 교회에게도 바로 작별을 고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교회 지인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고 나서야 그 당시 한참 유행했던 SNS를 통해 다시 근황을 알게 됐다. 나의 짝사랑 영화 친구와도 연락이 닿아, 오랜만에 만나서 영화도 한편 보고 밥도 같이 먹었다. 이제는 아저씨가 되어버린 그가 "너 그거 알아. 나, 그때 너 좋아했었다."라고 했고, 나는 그제야 그 옛날 말하지 못했던 내 사랑이 어디쯤 있었는지 알게 됐다. 그리고 내 어린 시절 존재했던 로맨틱한 깜짝 반전에 쑥스럽게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