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엄마와 아들의 전용 성우
엄마는 어릴 적 있었던 사고 때문에 시력과 청력이 모두 좋지 않으시다. 안경이나 수술, 어떤 방법으로도 정상적인 시력 회복은 불가능하다고 했고, 청력에 보탬이 되는 보청기를 사용하신지는 꽤 오래됐다. 나의 가장 오래된 영화 친구인 엄마와 영화를 볼 때는 주로 TV로 보고, 극장에 가는 일은 많지 않았던 이유도 다름 아닌 자막 때문이었다. 어렸을 적 TV에서 방영되는 외국영화는 성우들이 우리말로 더빙해서 자막이 필요 없었지만, 극장에 가면 영화를 보는 내내 자막을 계속 읽어야 하니 시력검사표 제일 윗줄에 있는 큰 숫자도 잘 보이지 않던 엄마에겐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편,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를 제외하고 볼 수 있는 영화란 영화는 모두 부지런히 찾아보던 영화킬러(filmkiller) 소녀였던 나는 이제 TV에서 보는 오래된 영화만으로는 성이 차질 않았다. 극장이라는 신세계에 입성한 뒤 개봉하는 영화들을 자주 보러 가고는 싶었지만, 책도 사 보고, 음악 테이프도 사서 들어야 하고, 친구들이랑 같이 떡볶이도 사 먹으려니, 코 묻은 용돈은 아끼고 아껴도 항상 부족했다. 그때 고맙게도 비디오테이프가 널리 보급되면서 여기저기 비디오 대여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엄마한테 졸라(그 '졸라'가 아닙니다) 힘겹게 받아낸 돈을 들고 대여점 문을 열면, 벽면 가득 빽빽이 꽂힌 영화들이 나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던 그곳은 내 새로운 놀이터가 되었다. 그렇게 매번 들어갈 때는 신이 났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엔 아쉬움이 더 컸다. 보고 싶은 영화는 많아도 가진 돈으로 빌릴 수 있는 비디오테이프는 한 두 개뿐이었고, 그나마도 엄마와 남동생이 같이 볼 수 있는 착한 영화만 골라야 했으니, 그저 어른이 되어 보고 싶은 영화를 맘대로 볼 수 있는 때가 빨리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으니까...
빌려 온 비디오테이프를 틀고 영화가 시작되면 그때부터 나는 엄마를 위한 성우가 되었다. 처음엔 자막을 그냥 또박또박 읽기만 했었는데, 점점 배역에 몰입해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악당과 정의의 사도를 넘나들며 나도 모르게 목소리 연기에 재미를 붙여갔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더빙 연기에 대한 순수한 열정도 식고, 나도 내 취향대로 맘껏 영화를 골라 볼 수 있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지금도 엄마는 TV로 가끔 영화를 보시지만, 이제는 성우들이 더빙해서 방영하는 외화도 드물고, 엄마만을 위한 꼬마 성우도 없으니 주로 한국영화를 보신다.
중국인 남편, 열 살 아들과 중국에 살고 있는 지금, 내게도 나만의 꼬마 성우가 있다. 아무리 십 년 넘는 중국 생활을 했어도 나의 중국어 실력은 십 년 동안 중국어를 모국어로 쓰면서 자란 아들의 중국어 실력을 뛰어넘지는 못한다. 그래서 듣고 보는 언어가 하나로 통일된 중국 영화를 볼 때는 덜하지만, 아직도 영어나 다른 나라 언어를 들으며 중국어 자막으로 영화를 보는 건, 여유 있게 즐기는 오락이 아니라 공부를 하는 느낌일 때가 종종 있다. 그때 곁에서 내게 조근조근 설명해주는 아들을 보고 있으면, 어릴 적 엄마 옆에서 자막을 읽던 내 모습이 생각난다. 그리고 가끔 한글자막의 빠른 속도가 버거운 아들에게 성대모사를 해가며 자막을 읽어 줄 때면, 어쩌면 더빙은 내 운명이 아닌가 싶어 웃음 짓는다.
붙임 : TV에 방송되는 외국영화 속 멋진 남자 주인공 역을 맡아 더빙을 했던 성우 박일 씨는 올해 세상을 떠나셨고, 그 수많은 비디오 대여점도 이제 우리들 기억속에만 남아있고 모두 사라졌다. 때로는 그때가 속절없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