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병주 Feb 28. 2022

<마스터>의 프로세싱, 클로즈업의 마법과 침묵, 음악.

[영화의 연출은 어디서 발견되는가 #2-1]

   

    처음에는 영화 <마스터>에 대해 그리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계획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영화 <리코리쉬 피자> 개봉 기념으로 에무시네마에서 다시 상영해주는 덕에 그 기념으로 말을 조금 덧붙이고자 한다. 또한 이 영화를 5번 정도 감상하는 동안 극장에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그것을 기념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영화 <마스터>에서 인상 깊은 장면을 뽑으라 하면 적지 않은 확률로 앞으로 이야기하게 될 ‘프로세싱’ 장면이 언급될 것이다. 그것은 필히 이 장면이 구치소 장면과 더불어 영화 내에서 가장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요소가 우리로 하여금(적어도 나로 하여금) 그런 강렬한 에너지를 느끼게 만들었는지 간단하게 영화를 한 번 따라가 보도록 하겠다. ‘프로세싱’ 장면에 드러나는 거의 모든 요소가 이 장면의 에너지를 형성하는데 일조했다고 볼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클로즈업, 침묵, 음악의 활용에 집중해 보려 한다. 


질식의 클로즈업과 리드미컬한 작법


    가장 먼저 언급하게 될 클로즈업은 그야말로 관객을 질식시킬듯 옥죄는 듯한 밀도를 가진 클로즈업이다. 또한 그러한 클로즈업들을 배치하는 방식과 탁월한 대화의 리듬을 만들어낸 작법은 거의 완벽에 가깝다. 본격적으로 프로세싱 장면을 살펴보기 전에 직전 장면을 함께 볼 필요가 있다. 프레디가 랭커스터를 위해 특제 술을 제조하는 장면이다. 사실상 랭커스터와 프레디 단 둘이서만 공유하는 술이라는 소재가 매개가 된 이상 이 장면 또한 프로세싱 시퀀스의 일부로 본다고 하더라도 무리는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시퀀스의 시작부터 프레디는 좁은 통로에서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과 반대 방향으로 이동한다는 점에서 이 술이라는 것이 프레디와 랭커스터만의 내밀한 관계를 표현하는 소재가 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 보인다. 이어지는 장면은 술들의 클로즈업, 더 내밀한 곳으로 내려가는 프레디의 모습, 정체불명의 약과 페인트 시너를 가지고 술을 타는 클로즈업 인서트들로 이루어져 있다.

장소가 바뀌면 랭커스터와 함께 술을 따르고 마시는 장면이 이어지는데, 여기서도 클로즈업은 유지된 채 술잔과 손에서부터 그대로 카메라가 이동해 랭커스터의 클로즈업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프레디와 랭커스터가 서로 클로즈업을 교환하게 된다. 결국 술이라는 내밀한 매개체, 클로즈업이라는 내밀한 쇼트로 구성하면서 전체적으로 은밀하고 내밀한 분위기를 형성해낸 것이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해 볼 것이 바로 음악이다. 시퀀스의 시작부터 흐르던 몽환적인 음악이 술을 마실 때 자연스럽게 끝나게 되면서 인물의 목소리, 그 공간의 소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준 것이다. 추가적으로 조명 또한 콘트라스트가 아주 강하고 얼굴의 4분의 3 이상이 어두운 가운데 보이지 않는 면만 은은하게 비춘다는 점에서 내밀한 인상을 아주 극대화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먼저 내밀한 정을 나눈 뒤에 프로세싱을 프레디에게 제안하면서 끈끈하게 내밀했던 쇼트가 잠시 풀어지게 된다. 이는 분명 앞으로 이어질 클로즈업의 향연에 대한 휴식기로 볼 수도 있지만 오히려 한 번 풀어졌기 때문에 다음에 오는 결속이 더욱 강렬하게 느껴지도록 만들기도 한다. 

    이제야 본격적으로 프로세싱이 시작된다. 이 시퀀스는 놀랍게도 플래시백을 제외하면 모든 쇼트가 클로즈업으로 제시된다. 프로세싱이 진행되는 동안의 클로즈업은 대화 상대방의 어깨를 걸쳐서 찍는 오버 더 숄더 클로즈업으로 이루어져서 사실상 투 숏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시퀀스에 사용된 쇼트들은 조명에 의해 상대방, 특히 랭커스터는 거의 어둠으로 처리된다는 점에서 프레디의 클로즈업을 화면 한쪽에 완전히 가둬놓게 만드는 느낌이 들게끔 한다. 이러한 구성만으로도 감정적인 과부하를 주겠다는 의도를 엿볼 수 있겠다. 

이 쇼트들이 전부이다.

프로세싱은 자신의 이름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름을 반복적으로 되뇌며 자신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인식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반복되는 질문과 대답의 음성은 그것을 듣는 관객들조차 그것을 되뇌게 만들며 함께 프로세싱에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그렇게 시작된 첫 프로세싱에서 프레디는 종종 웃음을 터트리기도 하고 귀를 후비기도 하면서 좀처럼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랭커스터가 ‘과거의 실패가 괴롭히는가?’를 반복해서 물을 때에도 계속 ‘아니요’라고 대답은 하지만 그의 표정과 말투를 미루어 보았을 때 그 질문의 반복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 이후로도 표리 부동한 대답이 이어지거나 질투에 관해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누가 내 여자를 건드리는 게 싫다’ 정도의 피상적인 대답에 머문다. 화룡점정으로 ‘자넨 예측 불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방귀로 응수하면서 첫 프로세싱이 끝나게 된다. 첫 프로세싱에서의 클로즈업은 주로 프레디를 비추게 되면서 랭커스터가 대화에서 갖는 힘이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그에 따라 그저 재미로 프로세싱에 임하는 프레디의 태도가 더욱 부각된다. 랭커스터가 ‘과거의 실패가 괴롭히는가?’를 반복해서 물어볼 때도 우리는 프레디의 얼굴만을 보게 되며 반복해서 물어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프레디의 얼굴 표정과 반응만을 보게 되는 것이다. 결국 프레디의 기세가 더욱 강했던 첫 프로세싱은 가벼운 선에서 마무리가 된다. 그런데 앞선 과정에서 재미를 느낀 프레디가 조금 더 하자는 제안을 하게 되고 그에 따라 두 번째 프로세싱이 시작된다.

    두 번째 프로세싱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랭커스터가 ‘눈을 깜빡이지 말 것’, ‘고민 없이 바로 대답할 것’을 제안하면서 시작된다. 앞에서 프레디가 보인 태도를 미루어 보아 이 제안은 ‘온전히 집중할 것’을 의미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또한 이 제안은 극 중 프레디를 향한 것이지만 동시에 관객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에 관객이 프로세싱 과정에 더욱 몰입하도록 유도하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질문과 대답 사이의 간격을 없애버리면서 시퀀스의 속도감, 긴장감, 밀도를 높이게 된다. 이 제안을 프레디가 흔쾌히 받아들이게 되고 우리는 또다시 여유롭고 마냥 재미있어하는 프레디의 얼굴을 보게 된다. 그러나 곧 몇 번 눈을 깜빡이면서 실패하게 된 프레디의 눈빛은 변하게 된다. 질문 또한 앞선 프로세싱과 달리 근원적 존재, 신의 구원과 같은 내밀한 신념을 건드리는 질문으로 변모한다. 그것에 이어 ‘근친상간을 해본 적 있나?’라는 도발적인 질문이 이어지는데 프레디는 이에 ‘네’라고 답하고 이 순간 우리는 랭커스터의 얼굴을 보게 된다.

 이제부터 랭커스터가 본격적으로 대화에서 힘을 얻게 되는데 근친상간에 대해 한 번 더 질문하고 누구랑 했는지 물어본 뒤 살인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고 다시 근친상간 이야기로 돌아와서 과거의 회한에 초점을 맞춘 질문을 퍼붓는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랭커스터의 얼굴만을 보게 되고 힘을 얻은 랭커스터의 프레임은 그가 프레디를 몰아세우는 형국을 형성한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다시 프레디로 돌아오면 우리는 눈을 부릅뜨고 이마에 주름이 깊어진 프레디의 얼굴을 보게 된다.

‘눈을 깜빡이지 말 것’에서 기인한 표정이겠지만 일련의 질문과 대답을 듣고 난 이후에 포착한 얼굴 표정의 변화는 분명 심리적인 것에서 기인했으리라고 관객은 느끼게 된다. 여기서 이 프로세싱 시퀀스를 구성한 감독의 능력이 엿보이는 것이다. 어떤 질문에 어떤 인물의 얼굴을 배치할지, 관객을 어떻게 상황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 것인지, 클로즈업으로만 구성하여 단조로워지기 쉬운 상황 속에서 인물의 외형과 내면 모두의 극적인 변화를 어떻게 모색할 것인지 고민한 흔적이 엿보이고 그것을 성취해낸 지점들이 영화 속에 그대로 담겨 있는 것이다. 이어진 어머니에 대한 질문에 프레디는 눈을 깜빡이게 되고 분노하며 자신의 뺨을 세 번 친다. 어머니에 관한 질문이 프레디를 흔든 것은 분명 영화 초반에 제시된 프레디의 꿈과 연관되어 관객으로 하여금 프레디가 가진 어머니에 대한 결핍을 상기시키도록 유도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책상을 내려치고 뺨을 때리는 행위는 프레디가 그만큼 프로세싱 과정에 몰입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고 긴 프로세싱 과정에서 청각적인 분기점을 형성하면서 시퀀스의 리듬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렇게 프로세싱은 후반으로 접어들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프레디와 관객 모두를 프로세싱 과정에 사로잡은 이 영화는 온전히 프레디에게만 집중하며 프레디만을 비추게 된다. 스스로 뺨을 때린 프레디의 얼굴은 또 다른 변화를 보이게 되는데, 오히려 평온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대답하는 목소리도 차분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의 대답을 들어보면 이전과는 다른 대답에 질문은 점점 그의 내밀한 과거를 향한다.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고, 과거의 실수와 전쟁, 살인의 기억이 계속해서 뒤따르고 누군가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히고, 주정뱅이 아버지로 무너진 가정 속에서 정신병원에 입원한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사랑에 실패한 겁쟁이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프레디의 이러한 내면을 관통하는 ‘도리스’를 건드리며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자기 스스로도 모르는 겁쟁이의 절규가 이어지고 프로세싱의 절정에 도달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보는 프레디의 얼굴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 없이 보기만 하더라도 모두 느낄 수 있다. 또한 완전히 몰두한 상황에서 눈 깜빡임은 아무 의미가 없어지고 프레디의 부릅뜬 눈과 일그러진 얼굴은 온전히 그의 심리적 상태를 반영한 것이 되어버린다. 

프레디의 절규 끝에 랭커스터는 눈을 감으라고 한다. 그렇게 프레디가 눈을 감으면 비로소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오던 클로즈업이 풀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침묵으로의 폭발

    클로즈업에서 벗어나는 것은 화면의 전환, 즉 프레디의 외면에서 내면으로 향함과 동시에 침묵을 동반한다. 계속해서 이어지던 프레디와 랭커스터의 티키타카, 점점 고조되는 프레디의 어조와 절규, 그 끝에 찾아온 침묵은 이 전환점이 가진 에너지를 극대화시킨다. 또한 정적인 클로즈업과 동적인 미디엄 사이즈의 트래킹 샷이 가진 대비, 어두운 선실과 대낮의 주택가의 대비와 같은 요소들이 특유의 에너지를 더해준다. 결국 앞에서 클로즈업의 향연들이 있었기에 그것이 가졌던 답답하기까지 할 정도로 내밀한 에너지들이 응축되어 한 순간 폭발하는 순간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 이러한 강력한 에너지가 침묵과 밝음, 풀숏 혹은 롱숏에서 느껴지게 만들면서 그 효과를 극대화시키기도 한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소리와 과잉이 아닌 침묵과 덜어냄을 통해서 가장 극적인 효과를 얻어낸 것은 분명 이 영화가 성취한 부분 중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분출된 강렬한 에너지를 머금은 쇼트들은 그것을 기반으로 프레디의 기억의 조각들을 보여주게 된다. 다시 눈을 감고 노래를 흥얼거리는 현재의 프레디로 돌아오게 되면, 그제야 우리는 다시 랭커스터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 순간은 프레디와 랭커스터 모두 공평하게 쇼트를 배분받으며 동등한 힘을 갖게 되고 함께 흥얼거리는 행위를 통해 교감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뒤이어 우리는 프레디의 과거를 마저 엿보게 되고 랭커스터의 음성과 바다의 이미지와 함께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그렇게 프로세싱이 종료되는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각 인물이 새롭게 부여받은 쇼트이다. 

이전까지의 프로세싱 과정은 전부 오버 더 숄더 쇼트로 구성된 반면, 프로세싱이 끝나자 프레디와 랭커스터는 단독샷을 부여받게 된다. 프로세싱 과정을 통해 서로 간에 묶여있던 쇼트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이전과는 다른 단독자로서 비치게 된 것이다. 더불어 인상적인 것은 프레디와 랭커스터의 시선의 방향이 반대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전의 숏들과 달리 대화의 축을 넘어온 단독 클로즈업 쇼트는 결국 프레디와 랭커스터의 온전한 교감, 어쩌면 서로 간의 합치를 내포하고 있을지 모른다. 감각적으로는, 프로세싱이 전부 끝나서야 반복되던 클로즈업 숏에 변화를 주면서 이 시퀀스가 종결되는 듯하는 감각적 인상을 심어주게 되고 인물 내면의 변화까지도 감각적으로 포착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이렇게 전체 프로세싱이 끝나게 된다.


동등한 영상과 음악의 지위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이 시퀀스를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남는다. 다채로운 쇼트의 구성없이 오로지 클로즈업만으로 시퀀스를 쌓아 올리면서 형성한 이 과잉될 정도로 커다란 에너지를 어떻게 정상화하여 다음 시퀀스로 넘어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인 셈이다. 영화에서 제시한 해답은 명쾌하다. 바로 음악이다. 잠시 앞으로 돌아가서 프로세싱 과정을 다시 살펴보자. 프레디가 눈을 감은 이후 침묵의 에너지가 흐르게 되고 그 침묵의 에너지가 다 할 즈음 서정적인 현악기 선율이 등장하며 바다의 이미지와 함께 관객으로 하여금 어떤 감정적 마무리를 돕는다. 그 음악은 프로세싱이 끝나고 프레디의 상태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면서 함께 페이드 아웃된다. 이러한 음악의 직접적인 개입 덕분에 '프레디의 과거 – 현재의 프로세싱 – 프로세싱 이후의 변화’라는 세 가지 테마를 유려하게 연결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침묵의 에너지는 해소가 되었고, 그렇다면 강렬한 클로즈업의 에너지 또한 정상화시킬 차례다. 여기에도 역시 음악이 큰 역할을 하는데, 랭커스터가 공산당과 외계인에 대한 환기성 질문을 던지게 되고 랭커스터의 ‘자네는 내가 만난 중 최고로 용감 하구만’ 대사에 이은 프레디의 미소 위로 경쾌한 피아노 선율이 흐르기 시작한다. 

이 미소와 음악과 함께 드디어 클로즈업이 풀어지며 랭커스터와 프레디의 진정한 투숏이 나타난다. 그리고 거의 대칭에 가까운 모습으로 술과 담배를 나누며 시퀀스가 완전히 끝나게 된다. 이렇게 음악과 함께 클로즈업이 풀어지는 순간은 그야말로 영화적인 장면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투숏은 단지 이 쇼트 자체로써만 의미를 품는 것이 아니라 시퀀스 전체를 통틀어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변화와 대비를 통한 감각적 인상을 전해주는데 충실한 장면이 된다. 또한 이런 시각적 대비에 더해진 음악이라는 요소는 자신의 분명한 위치를 스스로 표명하게 되면서 음악과 영상이 어떻게 결합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렇게 영화 <마스터>에 나타난 ‘프로세싱 시퀀스’를 천천히 따라가 보았다. 물론 이 시퀀스가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담은 시퀀스는 아닐지언정 대화를 구성하는 방식, 시퀀스의 리듬을 형성하는 방식, 대화 장면에서 인물을 배분하는 방식 등 연출적인 측면에서 눈여겨볼 부분이 많은 장면인 것은 분명하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의도된 것은 아닐테고 분명 터무니 없는 지점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그 효과가 의도된 것이든 우연적으로 발생한 것이든 전부 감독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스터>의 첫 시퀀스에 나타난 영화적 에너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