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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병주 Feb 24. 2022

<마스터>의 첫 시퀀스에 나타난 영화적 에너지

[영화의 연출은 어디서 발견되는가 #2] 


    영화 <마스터>의 첫 시퀀스에서 주인공인 프레디를 소개하는 방식은 인물을 스케치하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방식이라고 말하고 싶다. 단 3분에 그치는 시퀀스임에도 불구하고 시퀀스를 구성하는 장면들, 리듬, 조형성 등에서 프레디라는 인물을 소개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것 외에도 영화를 이끌어나갈 시적, 영화적 에너지를 완벽하게 형성해낸다.

     처음부터 하나하나 뜯어보자면, 영화는 첫 세 쇼트부터 강렬한 에너지를 형성해낸다. 

첫 쇼트는 화면을 아래에서 위로 수직으로 가로지르는 물결 이미지로 시작한다. 전후 맥락을 고려한다면 아마도 배가 지나간 자리인 것으로 보인다. 그 이미지가 지속되는 동안 물결 소리가 흐르는데, 곧 물결 소리 위에 강렬한 현악 음악이 얹힌다. 그리고 화면이 바뀌면 어느 구조물 위로 프레디의 얼굴 반쪽이 드러난다.

프레디의 얼굴이 드러난 직후 음악은 잔잔하게 잦아들며 서정적인 선율이 더해지는데, 서정적인 선율이 흐르는 동안 꽤나 오랜 시간 비춰주는 프레디의 얼굴은 그 선율 덕분인지 와킨 피닉스의 연기 덕분인지 어딘가 슬픈 인상을 풍긴다. 바로 이어 음악에 타악기 선율이 추가되면서 나무에 올라타 코코넛을 따고 있는 프레디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쇼트에서 화면과 음악은 직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형성하게 되면서 그러한 대비를 통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한 동력을 얻는다. 앞에서 이미 언급한 음악의 선율 대비를 포함해 물결의 수직적 이미지, 프레디의 얼굴을 가로지르는 수평적 이미지, 코코넛을 따는 대각선 이미지의 조형적 대비가 그 감각적 에너지를 더해주는 것이다. 더해서 세 번째 쇼트는 그 자체로도 프레디가 칼을 휘두르는 소리와 음악의 타악기 소리가 교차되면서 절묘한 리듬을 형성하기도 한다. 이미 단 세 개의 쇼트만으로도 시퀀스를 끌고 나갈 힘을 다분히 영화적인 방법으로 얻고 있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프레디라는 인물에 대한 스케치가 시작되는데, 다음 쇼트 또한 같은 음악 선율로 이어가며 같은 에너지를 발산하게 된다. 그런데 이번 쇼트에서는 타악기 선율뿐만 아니라 간헐적인 현악기 선율이 더해지며 기묘하고 날 선 에너지를 더해준다. 또한 카메라가 가진 왜곡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면서 마치 천막이 프레디를 감싸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면서 동시에 음악에 상응하는 기묘한 분위기를 형성해낸다. 

이런 총체적 에너지를 가지고 프레디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미디엄 클로즈업 숏이 이어지는데, 담배를 피우면서 코코넛에 정체불명의 액체를 섞어 마시는 모습을 통해 주정뱅이로서의 프레디의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프레디가 가진 특유의 분위기를 형성해낸다. 


그런 프레디의 모습을 보여주고 나면 넓게 원을 형성하고 원 안에서 씨름 비슷한 놀이를 하는 다른 군인들의 모습이 이어진다. 이 쇼트는 프레디가 코코넛 물을 마시는 동안 군인들의 환호 소리가 먼저 프레디의 프레임을 침범하고 프레디가 고개를 쳐드는 수직적인 운동성과 반대되는 수평적인 운동성을 형성하면서 등장한다. 이런 역동적인 쇼트가 지나가고 다시 프레디로 돌아오면 프레디 혼자 있는 공간의 청각적인 대비와 홀로 있는 프레디의 시각적인 대비, 거기에 자신의 손을 자르려고 하는 프레디의 이상한 행동까지 더해지며 같은 군인임에도 그들과 섞이지 못하고 다른 위치에 있는 프레디의 성격을 강조하게 된다. 이렇듯 영화는 첫 세 쇼트부터 가지고 있던 대비의 에너지를 온갖 시청각적인 요소들을 통해 감각적으로 전달해 주고 있는 것이다. 


   

다음 쇼트에서 프레디가 드디어 입을 여는데, 그것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쇼트가 연결되는 방식에 대해서 짧게 언급하고 넘어갈 것이다. 

자기 손을 자르는 시늉을 하던 프레디가 손을 자르진 않고 다시 코코넛에 칼을 내리치는 순간 다음 쇼트로 넘어가게 되는데 그 쇼트는 고개를 숙이고 있던 프레디가 고개를 쳐드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이 쇼트의 연결은 어떤 의미적인 요소가 숨어있든 간에 칼을 내려치는 행위와 고개를 쳐드는 행위의 대비만으로도 앞에서 이끌고 오던 대비의 에너지를 또 한 번 강화시키고 특유의 리듬감을 형성하게 되는 아주 훌륭한 쇼트 연결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시 돌아와서 드디어 프레디가 입을 열기 시작하는데 거기서 나오는 말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성적인 저질 농담이다. 게다가 프레디는 분명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고 있지만 이 쇼트는 오로지 프레디의 얼굴만 담으면서 역시 스스로에게만 갇혀 있는 프레디의 모습을 타인과의 대화 장면에서도 형상화하고 있다. 프레디의 농담이 절정을 향하면서 프레디가 흥분하게 될 때 또 한 번의 쇼트 변화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바뀐 쇼트에서 다시 프레디는 침묵을 유지하게 되면서 다시 한번 청각적인 대비를 주게 된다. 이 쇼트는 군인들이 모래로 여자 나체상을 쌓고 있고 그것을 살짝 떨어진 곳에서 프레디가 바라보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삐딱한 자세로 물끄러미 바라보던 프레디는 갑자기 나체상으로 다가가 성행위를 흉내 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모래를 쌓던 군인들도 웃고 좋아하지만 프레디의 행위가 점점 길어지고 정교해지면서 웃음기는 사라지고 그런 분위기를 감지한 프레디는 머쓱하게 무리를 이탈하게 된다. 이 장면은 두 개의 쇼트로 이루어져 있는데, 프레디가 행위를 하는 동안 쇼트의 변화가 생기며 군인들의 무리를 가로질러 프레디를 앙각으로 담는 쇼트가 이어진다.

첫 번째 쇼트에서 군인들의 무리에 끼지 못하고 밖에 머물던 프레디가 무리의 중앙으로 가로질러 가게 되고 두 번째 쇼트에서는 행위를 하는 프레디 주위를 다른 군인들이 둘러싸고 있으면서 무리의 한가운데 있지만 프레디 혼자 동 떨어져 있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프레디가 무리를 이탈하게 되면서 군인들 속 이방인의 이미지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는 프레임에 인물이 입장하고 퇴장하는 움직임이 어떤 감각적 인상을 전달해 주는지 아주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다시 혼자가 된 프레디는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바닷가에서 자위행위를 한다. 이렇게 프레디가 타인과 관계를 맺는 장면들에서도 계속되는 대비를 통해 그의 아웃사이더적인 모습을 감각적인 요소들과 함께 효과적으로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의 성적인 농담과 성행위, 자위행위를 통해 성 도착적인 그의 성격까지 동시에 드러낸다. 그렇게 다시 혼자 떨어진 프레디는 모두가 떠난 그 모래 여자를 껴안으며 옆에 눕는다. 

그렇게 누워 있는 모습은 또다시 대각선의 이미지를 형성하며 마지막까지도 프레디의 불안정한 면모를 강조하게 된다. 또한 이 장면은 영화의 전체 맥락을 함께 고려하면 결국 가족애와 여성, 사랑의 결핍이 도착증으로 나타나게 된 쓸쓸한 남자의 모습을 그대로 함축하는 장면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로 대단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3분 남짓한 시퀀스에서 영화 <마스터>는 쇼트의 변화와 쇼트 내에서 움직임이 가져다주는 리듬, 음악이 가져다주는 분위기와 쇼트와 음악이 결합되었을 때 또 다르게 생겨나는 리듬, 프레디의 성격 드러내기까지 세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은 대단한 시퀀스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내러티브에만 종사하는 것도 아니고 감각적 형식에만 종사하는 것도 아닌 균형적인 시퀀스로 이것은 충분히 영화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조니 그린우드는 이 영화로 상을 받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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