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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병주 Dec 21. 2021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너무나도 지나친 성장담'

이런 선물은 사양할래




<결말을 포함한 주요 내용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스파이더맨은 어떤 히어로인가.

돈 없고, 매번 연인과 갈등에 빠지고, 친구랑도 싸우고, 친구도 잃고, 그야말로 짠내 나는 히어로 원탑이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가장 어린 스파이더맨에 부쩍 젊어진 메이 이모, 토니 스타크를 등에 엎은 부유함까지 기존의 '푸어 스파이디'와를 결을 달리 하는 새로운 스파이더맨인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새로운 '톰스파'마저 '푸어 스파이디' 계보에 합류하게 됐다.

그리고 새로운 스파이더맨의 종착지이자 새로운 시작점인 마지막 장면에서 눈 내리는 뉴욕 거리와 창 밖을 바라보는 피터의 모습, 눈을 맞으며 사람들 위를 활강하여 지나가는 모습이 만들어 낸 시각적인 감각과 정서적인 감정은 '홈스파'가 시작되기 전 5편의 영화에서 느꼈던 그것과 사뭇 유사한 느낌을 자아내며 스파이더맨 팬들에게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MJ와의 절절한 감정선까지 더해지며 그것을 강화시키기도 한다.

또한 '삼스파'의 등장과 그들이 각각 가진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치유하고 더 나아가 악당들까지 치유했다는 점에서 <노 웨이 홈>은 더할 나위 없는 힐링 무비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적어도 나에게는 그런 힐링 무비가 되지 못했다.

마블에 대한 애정은 옛날 옛적부터 떨어진 지 오래였지만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가 짠내 나는 스파이더맨과 데어데블인 만큼 스파이더맨 사가 8편이 총망라되는 이 영화를 기다리지 않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많았는데 대부분 맛이 없었다.

특히 '왜' 이런 재료를 이렇게 써서 만들었을까에 대한 의문만 계속 남아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하게 되었다.


그중 가장 걸렸던 것은 사건의 발생이다.

물론 이 영화처럼 의도치 않은 작은 소동이 걷잡을 수 없는 큰 사건으로 번지는 이야기 구조는 수도 없이 존재한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의 핵심은 주인공의 어떤 행동이 큰 사건에 대한 촉매제가 되긴 했으나 사건이 발생한 본질적인 원인이 주인공에게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웨이 홈>은 이 모든 사건의 원인을 피터에게 돌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너를 아는 사람이 다 몰려들고 있어.', '그만 좀 쫑알대란 말이야.' 등의 대사도 그렇고 마지막에 가서도 닥터 스트레인지는 다른 차원에서 사람들이 몰려오는 이유는 '다 너를 알기 때문이야.'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이런 식의 대사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피터가 희생을 선택한들 그 선택은 은연중에 강요를 받고 있던 선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히어로의 존재 자체가 오히려 빌런을 만들어낸다.'라는 쟁점이 여러 히어로 무비를 통해 제기됐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그에 대해 '그래. 히어로 탓이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피터가 쫑알대서 주문이 꼬이긴 했지만 차원에 균열이 간 건 동시에 다른 생텀에서 걸고 있던 주문이 겹쳐서 그렇게 됐다거나, 주문을 거는 도중 어떤 우주적 현상이 겹쳤다든가 하는 약간의 설정 첨가만 했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그리고 계속 드는 의문 중 하나는 이 사건이 정말 막을 수 없었던 사건일까 하는 의문이다.

애초에 그 주문 자체가 물론 원래 용도는 아니지만 카마르타지 보름달 파티 같은 시답잖은 일에 대한 기억을 지우는 데 사용되기도 할 정도로 가벼운 주문처럼 언급이 되는데, 그런 주문이 이렇게 쉽게 꼬여버리고 그 꼬여버린 대가가 이렇게 심각한 문제라는 것도 그냥 영화적 허용으로 넘어가기엔 그 피해가 너무 커다랗다.

그렇게 심각한 주문이었으면 시전 하기 전부터 유의사항에 대해서 훨씬 신중하게 다가갔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동안 닥터 스트레인지는 무슨 성장을 한 건가 하는 의문도 드는 것이다.

그리고 처음만 하더라도 지나친 요구가 아니면 두 세명 정도의 기억은 예외로 만들 수 있었는데 마지막에 가서는 왜 굳이 모든 것을 다 희생하게 만들어야 했는지 그 당위성에도 의구심이 든다.

결국 이런 것들이 모여 전체적인 피터의 성장과 희생이 무슨 의미였을까 하는 극 전체에 대한 불신을 가져다준다.

'이렇게 까지 모든 것을 다 희생할 필요가 없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또 미스테리오 사건에 대해서 스타크 인더스트리는 뭘 하고 있었을까?

정말 피터를 보호하기 위해 온 노력을 기울였던 걸까 하는 의문도 지울 수 없다.

물론 스파이더맨 신상 공개는 아무리 무죄를 입증하고 미스테리오가 범죄자임을 밝혀낸다 치더라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적어도 '맷 머독' 한 명 부르고 심지어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맷 머독은 애초에 변방에 아주 작은 변호사 사무실 운영하는 무명 변호사인데 전 세계 최대 규모의 스타크 인더스트리가 고용한다는 게 고작 맷 머독이라는 것도 그냥 어떻게든 세계관에 끼워 맞추려는 의도로 밖에 안 보인다. (차라리 포기를 부르든가.)


결국 이 영화는 장점은 확실하지만 그 장점을 위해 기존 캐릭터와 드라마를 지나치게 경시한 것처럼 보인다.

아무리 삼스파가 나오고 한들 중요한 건 톰 홀랜드의 피터 파커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피터 파커가 진정한 스파이더맨으로 거듭나는 서사와 그에 따른 MJ, 네드, 메이, 해피와의 관계의 변화가 더욱 포커스에 집중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제로도 영화에서 가장 잘 살아남은 것 또한 피터와 MJ의 러브스토리이다.

이 지점은 기존의 스파이더맨 시리즈와 차별화된 부분이기도 했고 '홈스파'만의 특색이기도 했다.

그런데 영화의 본론 내내 MJ는 저 귀퉁이에만 존재하는 느낌이다.

빌런 5명의 이야기, 삼스파의 이야기가 너무 커다래서 MJ가 주목받는 건 도입부, 중반에서도 메이 숙모가 죽고 나서 잠깐, 후반부 정도다.

물론 주목받는다는 게 무조건 전면에 나설 필요는 없다.

그런데 빌런들이 해피의 집에 모이고 맨션에서 그 소동이 벌어지는 동안 MJ의 존재감은 0에 가깝다.

그냥 네드 집에서 등 따시게 잘 있겠지 정도다.

그렇다고 그동안 피터와 MJ의 이야기가 많았나?라고 물으면 그것도 아니다.

<파 프롬 홈>부터 시작해서 MJ는 항상 본 갈등의 변두리에 존재했고, 갈등이 발생하기 전에도 피터와 MJ의 관계는 그다지 깊게 다뤄지지 않는다.

피터와 MJ, 네드의 관계는 대입을 중심으로 가볍게 제시되는데, 사실 삼스파보다 중요한 게 이들의 관계 아니었을까?

그냥 간단히 빌런의 숫자를 조금 줄이고, 피터의 신상 보호를 위한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움직임, 그 풍파를 함께 견뎌내야 하는 피터와 MJ, 대입 이야기, 이런 식으로 초반 설정 부분을 조금 확장시키면 훨씬 더 드라마틱한 각본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빌런의 숫자의 관해서도 말할 수 있겠다.

단순히 리자드와 샌드맨은 굳이 없어도 됐을 것 같다.

애초에 리자드는 과학자로서 뒤틀린 신념이 문제였지 리자드로 변한 것 자체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1>에서 이미 치유되지 않았던가.

그리고 샌드맨은 영화 내에서 가장 동기가 불분명한 인물이기도 하고 <스파이더맨 3>에서도 베놈과 같은 부류로 보기 어려운 빌런이었다.

딸의 이야기, 벤 삼촌에 관한 이야기까지 함께 어우러졌을 때 캐릭터가 완성되는데 딸 얘기만 갖고 만들려니 반쪽짜리 캐릭터가 된 것이다.

심지어 둘 다 캐스팅도 제대로 안 된 거 그냥 빼도 무방한 거 아닌가?

물론 그래야 옥토퍼스, 그린 고블린 빼놓고도 3:3 구도가 나오니까 액션을 구성하기 좋고 훨씬 더 다채롭게 만들 수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액션 연출을 잘한 것도...


이러한 사족 때문에 주목받아야 할 빌런이 주목을 제대로 못 받기도 한다.

둘을 빼면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일렉트로, 옥토퍼스, 그린 고블린인데 그중 일렉트로에 관한 이야기다.

치유를 해서 두 번째 기회를 준다. 좋은 이야기다.

그런데 정말 치유받아서 돌아가면 잘 살 수 있을까?

특히 맥스의 경우 오스코프에서 박봉에 주변인들의 멸시를 받았고 그로 인해 생긴 열등감이 스파이더맨에 대한 시기심을 불러일으키고 결정적으로 스파이더맨의 무관심이 그를 분노케 만든다.

물론 전기를 다루는 능력을 얻고 자신감을 회복하며 방구석 찐따에서 완전히 변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한 들 돌아가서 본질적인 처지가 바뀔 것이라는 생각이 크게 들진 않는다.

또한 차원 이동 전에도 이미 빌런이었다는 점에서 돌아가면 법적인 처벌을 받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그렇게 이미 범죄자로 낙인찍힌 인물이 출소해서 자신감을 얻고 제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잘 상상이 안 간다.

결국 또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다.

오히려 메인인 맥스, 옥토퍼스, 고블린 이 셋에 딱 집중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풀어줬으면 더 감동적인 영화가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 영화는 삼스파 VS 일렉트로, 리자드, 샌드맨 구도에서 위기 상황 속 옥토퍼스가 도와주고 톰스파 VS 고블린 대결로 마무리되는 크게 두 가지 파트로 액션이 나뉘는데, 그냥 한 가지 파트로 삼스파 VS 일렉트로, 옥토퍼스, 고블린 구도로 시작해서 위기 상황 속 옥토퍼스의 치료 및 도움, 마지막 고블린과의 대결로 이어졌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아니면 옥토퍼스의 갱생 서사를 유지하고 싶다면 리자드만 빼고 삼스파 VS 일렉트로, 샌드맨, 고블린 구도로 가는 것도 이상하진 않았을 것 같다.

그렇게 하면서 고블린이 MJ를 떨어뜨리고 그것을 앤드류 가필드가 구한다면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팬뿐만 아니라 원작 팬들도 환호하는 순간이 나오지 않았을까.

맥스에 관해서도 힘이 없어져 다시 자신감을 잃고 돌아갈 상황에 절망하는 맥스에게 앤드류 가필드가 나서서 '돌아가면 스파이더맨을 찾아. 분명히 도와줄 거야.' 같은 위로와 희망의 말을 하나만 던져줬어도 좋지 않았을까.


드라마, 드라마, 드라마. 다.

결국 종합해보면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걷잡을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리고 아무 의미 없는 싸움을 하다 억지 희생을 맞이한 피터 파커'의 이야기로 보였다.

정작 톰 홀랜드의 이야기인데 톰 홀랜드가 빠진 것 같은 이야기인 것이다.


톰 홀랜드의 피터에 대한 묘사도 형편없다,

MIT에 전화도 안 해보고 무작정 마법 써달라는 인물, 무작정 죽이면 안 된다고 큐브를 뺏어가는 인물이 된다.

그리고 이것은 어린아이의 특성으로 치부하기엔 그 대가가 너무 크고 일부 관객들로 하여금 주인공을 이해할 수 없게 만드는 장치로도 작용한다.

아무리 고구마 전개여도 관객이 주인공에게 등을 돌려서는 안 되는데, <노 웨이 홈>의 초반부에 묘사된 피터는 관객이 등을 돌리기 직전까지 발암 수치를 밀어붙인다.

예를 들어 닥터 스트레인지의 미러 디멘션에서 싸울 때 기하학이니 마법보다 아름다운 건 수학이니 할 동안 '저도 다 생각이 있어요.', '치료해서 돌려보내면 되잖아요.' 등등 피터의 계획에 대해서 넌지시 언급만 해줬어도 관객은 조금 더 주인공을 따라갈 마음이 생길 것이다.

그런데 그런 거 없이 그냥 큐브 뺏어오고 누가 봐도 계획이 없어 보이는데 계획이 있다면서 빌런들을 다 풀어주고 집으로 데려온다.

이걸 보고 누가 주인공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이런 모든 지점들이 나에게는 단순히 팬서비스로 무마할 수 없는 것들이었고, 팬서비스로도 느껴지지 않았다.

애초에 정말 캐릭터에 대한 애정은 가지고 만든 걸까? 하는 실망감까지도 들었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홈스파' 보다는 이전의 '푸어 스파이디'가 더 좋지만, 이렇게 까지 앞의 두 편, 시빌워, 어벤저스까지 쌓아온 캐릭터를 이렇게 어처구니없게 뒤집어 버리는 건 캐릭터한테나 관객한테나 너무 무례한 것이라는 생각까지도 든다.

토니 스타크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건 좋지만 이렇게 다 갈아엎으면서 벗어나는 게 성장인가?

또 그렇다기엔 빌런들을 치료한 건 토니 스타크의 기술이다.

그리고 네드, MJ, 하이틴 스파이더맨은 '홈스파'만의 장점이었는데 그것을 훌훌 털어내는 탈피가 아닌 쓰레기통에 버리는 듯한 탈피는 이해할 수 없다.

또한 메이 이모가 피터의 성장을 돕는 것도 맞지만 스파이더맨 1편에서 벤 삼촌이 죽는 것과 우리가 4편 이상에서 보았던 메이 이모가 죽는 것은 그 무게감 자체가 다르다.

거기다 그렇게 중대한 사건의 원인이 어린아이의 치기와 어이없는 실수에서 비롯됐다는 건 지나치다는 생각도 든다.

결국 영화를 보면서 든 피터에 대한 안타까움은 자연스러운 안타까움이 아니라 만들어지고 강요받은 안타까움처럼 느껴졌다.

애정 없이 만든 인물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그걸 성장이라 포장한다.

그래, 아프니까 청춘이다.


결국 나에게는 오랜 시간 함께한 선물이 아니라 폭탄이 된 격이다.


+

쿠키영상도 스파이더맨 영화인데 닥터 스트레인지 2 예고편 보여주고 닥터 스트레인지는 돌아온다. 이건 뭐야. 갑자기 너무 안 맞는 톤 앤 매너에 엉성하고 조악한 발표를 들을 때 생기는 부끄러움이 들 정도였다.


윌렘 대포는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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