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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병주 Dec 22. 2021

퍼스트 카우 '흔적과 복원, 그러나 씁쓸한'

영화 <퍼스트 카우>의 화면비와 프레이밍에 대해서



<결말을 포함한 영화의 주요 내용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거대한 선박은 화면 정 가운데를 대담하게 가로지르며 이동한다.

작은 나룻배는 아무리 이동해도 화면 밖으로 넘어서지 못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하고 싶었던 영화적 장치이다.

1.37:1 화면비의 필름 촬영 또한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치 과거에 대한 하나의 장면을 광활하게 풀어주면서 무한한 가능성을 찾기보단 기꺼이 시야를 좁혀 더욱 집약적으로 그 현장을 보존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도 그럴 것이 영화에서 인물이 제시되는 방식에는 카메라가 거의 땅에 붙어 있는 듯 앙각으로 잡아 인물의 머리가 프레임 윗부분 가장자리를 넘어갈락 말락 할 정도로 비좁은 프레임 내에 꽉 채워 제시하는 방식이 많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프레이밍이 결말부에서 그 힘을 최대로 발휘하는 것은 킹 루와 쿠키가 함께 숲 속에 서 있을 때 프레임 속에 인물은 가득 차 있고 그 인물들 주위로 수풀과 나뭇가지들이 둘러있는 것은 2중의 프레이밍으로써 그들이 프레임 속에 갇혀 있다는 느낌마저 들게 만들었고 마치 그들이 그 순간에 하나의 사진으로 박제된 것 같은 이미지가 형성되었다.

또한 초반부에 그들이 다시 만나 킹 루의 집에 처음으로 함께 왔을 때 카메라는 이동하다가 대문 안 쪽에 무심하게 정지되어 화면 왼편에는 쿠키가 화병을 놓고 집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오른편에는 작은 직사각형 창 너머로 킹 루가 나무를 하는 모습을 비춘다.

이 프레이밍은 그 자체로 두 인물을 대비시키는 장치가 되기도 하고 하나의 프레임을 양분하여 두 가지 모습을 함께 담아내면서 상반된 두 인물이 함께 뭉치는 초석이 되기도 하지만 끝에 가서 그 진가가 다시 한번 드러난다.

킹 루와 쿠키가 추격을 당하게 되면서 잠시 떨어지게 되고 집에 돌아와 다시 만나는 장면에서 같은 프레이밍이 한 번 더 등장하는 것이다.

이 순간에서야 둘은 우정으로써 완전히 하나가 된다.

그와 동시에 네모난 프레임과 네모난 대문, 네모난 창문으로 3중의 프레이밍이 된 이 장면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사진이 된 것처럼 보인다.


결국 과거와 그 흔적을 현재에 다시 복원시키고 보존시키려는 하나의 시도가 아니었을까.

영화의 시작 또한 킹 루와 쿠키의 유골을 찾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과거의 흔적이 현재에 발견되면서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는 순간인 것이다.

그리고 분명 그들은 당시 서부개척시대의 중심에 존재하지 않던 비주류였다는 점에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분명히 존재했고 그들은 아름다웠기에 그 흔적을 찾아내고 아름다운 이미지로 보존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분명 아름답지만 동시에 서늘하고 씁쓸하기도 한다.

킹 루의 이야기처럼 변화의 물결에 속하지 못하고 현재만을 살아가는 인물의 비애인 것이다.

너무도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미래를 향하지 못하고 현재만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철저히 그 순간과 공간에 종속되어 벗어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결국 울타리에 둘러싸이게 된 퍼스트 카우처럼.

그리고 1.37:1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프레임은 그 역할을 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종반부 수풀을 헤쳐나가는 킹 루와 쿠키의 모습은 둘의 전신이 모두 프레임 속에 갇혀있거나 이동을 하여 카메라 가까이 오게 되어 둘의 허리 부분만 잡힐 때도 그 비좁은 공간을 두 허리가 부대끼는 듯 함께 카메라 앞에 존재하며 폐쇄감을 극도로 강화시킨다.

하지만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은 그들은 화면 왼편 아래쪽에 누워있고 오른편 위쪽은 풀 숲과 하늘을 적절히 비추며 안정감 있는 프레이밍이 이루어진다. 

결국 그들은 변화의 물결에 합류하지 못하고 영원히 그 순간으로써의 흔적으로 남아 있지만 그 박제되는 순간만큼은 아름다웠던 것이다.    

이것은 분명 영화 중간중간 담기던 인디언 원주민들에게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영화 내내 그 숲 속과 마을 밖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결국 나가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인물들이다.

그리고 빠르게 일어나는 변화와 그 속에서 현실만을 살아내야 하는 인물들은 서부개척시대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문명의 발전 과정에서 그러한 사람들은 항시 존재해왔고 현대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퍼스트 카우>는 그러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위로이자 동시에 '변화'와 '발전'에 던지는 하나의 씁쓸한 한 마디가 아니었을까.


킹 루가 타고 있던 나룻배는 프레임 속에서만 움직였지만,

첫 장면에 등장한 선박은 거대한 고동과 함께 거침없이 프레임을 가로질러 지나갔다. 

하지만 그렇게 현재에 존재하는 것들도 결국은 하나의 흔적으로 남아 먼 미래에 누군가에 의해서 발견되고 복원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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