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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석 Apr 16. 2018

강원도 인제에 있는 버라이어티 파머를 찾아서

월간농터뷰 [3월호] 취재 편




4월, 꽃피는 봄의 계절


어느새 4월, 소리 없이 봄이 찾아왔다. 반면, 겨울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황급히 자취를 감췄다. 매년 반복되는 계절의 순환. 그 속에서 올해는 봄이 조금 더 길었으면 한다. 길거리마다 가득 핀 꽃들의 향기를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 싶은 마음에.

출근 길에 자주보는 개나리 꽃






논과 밭을 보다 떠오른 생각


버스 창가 측에 앉는다. 달리는 버스 창문 밖으로 시선이 머무는 곳엔 온통 푸른 논과 밭이 보인다. 바꿔 말하면 농사를 짓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뜻이기도 한데, 문득 저곳에 얼마나 많은 청년들이 농사를 짓고 살까 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과연 청년들이 지내고 있긴 할까.


  현재 농촌에는 기성세대와 청년들 간의 간극이 크다는 것이 나의 견해다.(사실 모두의 견해다) 물론 예전에 비하면 상당히 많은 청년들이 농업에 뛰어들고 있다. 특히, 가업을 물려받거나 농촌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농촌에는 더 많은 청년들을 필요로 한다. 


  청년들이 농촌을 바라보는 시선이라도 조금 나아지면 좋으련만. 회사 생활에 지쳐 시골의 평화로운 삶을 꿈꿀 때 즈음에야 농촌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삶에 여유가 필요해서 혹은 소박한 자급자족의 삶을 원해서일 테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농업의 위기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그 위기들이 이대로 등한시돼도 될 문제인지 나부터 고민해보는 요즘이다.


강원도 인제로 가는 버스안에서 찍은 풍경


위기의 밥상, 농업


몇 해전 읽었던 '위기의 밥상, 농업'의 단편적인 한 사례를 통해 농업의 위기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아이티의 벼농사 몰락
아이티는 1986년에 국제통화기금(IMF)에 돈을 빌리며 쌀 시장을 개방했고, 1995년에는 수입 쌀의 관세 35 퍼트에서 3퍼센트로 급격히 내렸다. 이에 따라 미국 쌀이 아이티 쌀 시장을 지배하게 되었고, 자급률이 100퍼센트에 가까웠던 아이티의 벼농사는 몰락하고 말았다.

  

  내용인즉슨 1970년대 후반 미국 정부에서 아이티 국가에 거액의 원조를 주겠다고 했는데 이에 조건이 붙었다. 쌀, 옥수수 같은 작물은 돈이 안되니 더 이상 농사짓지 말고, 돈이 되는 커피, 사탕수수, 카카오를 심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아이티는 30년 동안 부자들이 권력을 독차지하고 있었고, 국민들의 반대를 무마하기 위해서 미국의 원조가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결국 아이티 정부는 미국의 조건을 받아들이고 쌀, 옥수수 대신 그들이 원하는 작물을 재배하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커피, 사탕수수, 카카오 값이 폭락하기 시작한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너도나도 이 작물들을 재배했기 때문이다. 불행은 그뿐만이 아니다. 더 이상 생산하지 않게 된 쌀, 옥수수를 미국으로부터 수입하게 되는데, 곡물회사에서 매년마다 값을 올려 국민들이 굶주림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진흙에 소금과 마가린을 섞어 햇볕에 바짝 말린 진흙 쿠키를 먹었다. 그거라도 먹어야 배를 채울 수 있어서다.(중략)


[출처:저자 서경석/위기의 밥상, 농업]


  아이티 벼농사의 몰락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크다. 우리가 제3의 아이티가 되지 말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더군다나 농업에 관심이 부족한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더욱더. 나는 도시에 사니깐 농업은 별로 나와 상관없는 얘기다 라고 계속 치부한다면, 우리에게도 언젠가는 다른 방식으로 '식량주권'을 포기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날이 오지 않길 바라고 있다.


농업의 위기와 심각성을 깨닫게 해준 책


쌀의 공급과잉과 식량안보 위기


화제를 바꿔서 그럼 우리가 처한 위기를 한 번 살펴보자. 얼마 전에 우연히 식량자급률에 관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 깊이 파고들면 '쌀의 공급과잉' 문제에 대한 얘기다. 요점만 정리하자면 2000년 이후부터 지금 까지 쌀의 소비량의 감소가 생산량 감소보다 초과했다는 것이다.(밥을 대체할 메뉴들이 많아지니 소비가 줄었고 반면 생산량은 그대로거나 별로 줄지 않았다.) 


  쌀이 남아돈다는 얘기인데, 우리는 늘 식량 안보 위기에 처해 있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곤 한다. 어째서일까. 내가 보았던 기사에 이런 내용이 있다.


공급과잉은 다양한 문제를 파생한다. 가장 심각한 것은 재고 비용이다. 과잉 생산된 쌀이라고 해서 버릴 수는 없다. 그럼 일단 저장이다. 창고에 보관하는 것이다. 정부가 양곡 1만 톤을 1년 관리하는데 드는 비용은 보관료 등 직접 비용이 11억 원과 보관으로 인한 가치 하락분인 간접비용 20억 원 등 총 31억 원이 소요된다.
농업과 관련된 지원이 쌀에 집중되면서 다른 곡물을 육성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쌀은 남아도는데 자급률은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쌀에 이렇게 많은 지원과 비용이 집중되다 보니 다른 작물들의 자급률은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콩은 7.0%, 밀과 옥수수는 1.0% 미만. 정부는 쌀의 공급 과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산조정제'를 추진 중이다. 생산조정제는 쌀을 짓던 논에 벼 말고 다른 농작물을 경작하도록 유도해서 공급량을 조절하는 것을 말한다. 문제는 실효성인데 이에 의문을 갖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곡물의 자급률이 떨어지니 식량안보 위기가 언급된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이 있다. 만약 우리가 먹을 일정량의 식량을 스스로 생산해내지 못하고, 외국에 의존하게 되면 벌어지게 될 일이 끔찍하다는 것이다. 당장 내일이라도 밀, 콩, 옥수수 등 수입에 의존하는 곡물들이 수출 중단이 되면 어떻게 될까. 밀가루 값은 폭등할 것이고 쇠고기, 닭고기는 구경도 못하게 될 것이다. (쇠고기 1kg를 얻는데 곡물이 8kg 정도 필요하다고 한다.)


[출처: 정리=FARM 에디터 강진규 / 자료= 한국 농촌경제연구원]

[출처: 살아있는 지리교과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먹을거리 산업]


  이제 정말 심각한 문제에 대해 얘기해보자. '농촌의 고령화'. 누구나 알듯 농촌의 고령화는 점점 가속화되고 있다. 예전에 읽었던 기사에서 벼 재배 면적이 점점 줄고 있다는 내용을 보았다. 농사를 지을 땅은 많은데, 농사를 지을 사람이 점점 줄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비단 벼농사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는 잘 버텨왔다. 정부와 농부들, 농업에 관심을 두고 있는 기성세대, 몇 안 되는 청년들 덕분에 말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농업이 계속 소외되고 젊은 세대에서 농사짓는걸 점점 더 거부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더 이상 가업을 물려받지 않으려 하고, 농촌을 살리기를 포기해버린다면?


  우리도 언젠가는 모든 농산물을 외국에 의존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우리나라도 아이티가 그랬듯 굶주림에 시달리는 일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농업은 모든 산업의 뿌리입니다. 뿐만 아니라 농민이 없다면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어요. 그러니 농민과 농촌, 농업을 지키고 키우기 위한 노력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위기의 밥상, 농업> 저자가 했던 말이 가슴속에 와 닿는다. 부디 농업을 지키는 일에 우리 청년들이 중심에 있었으면 한다.




버라이어티 파머와 만나다


인제 터미널이 보인다. 9시에 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아직 30분 정도 시간이 남았다. 뭘 할까 고민하다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간다. 음식이 나오기 전 인터뷰할 '오창언 농부'의 질문지를 정리하다 실소가 나왔다. 농튜버로 꽤 유명한 버라이어티 파머를 직접 보게 될 줄이야.


  오창언이란 이름보다는 버라이어티 파머로 더 알려진 오늘의 주인공은 일명 농방, 농튜버로 꽤나 유명한 인물이다. 물론 농업이나 농업 방송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 한해서다. 평소 그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본인이 농사를 짓는 일상의 모습을 공유한다. 나도 애독자로서 몇몇 영상을 본 적이 있다. 트레이드 마크로 보이는 커다란 밀짚모자를 쓴 앳되 보이는 소년은 야무지게 농장을 정리하거나, 우리에겐 조금 생소한 '초당옥수수 파종', '야생 머위대 채취', '아피오스(인디언 감자) 수확' 등 다양한 농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최동녘 농부에게 버라이어티 파머를 소개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둘의 인연이 참 궁금하다. '어떻게 서로 알게 된 걸까?'. 배가 고프지 않아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다 보니 어느새 9시가 조금 지났다. 그리고 이내 오창언 농부에게 연락이 온다. "저 터미널 앞이에요." 가게 문을 나서니 아주 편안한 차림을 한 오창언 농부가 보인다. 


버라이터티 파머로 더 많이 알려진 오창언 농부



버라이어티 팜에 방문하다 


오창언 농부가 타고 온 차량에 몸을 싣고 어색한 인사를 나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지만 언제나 첫 만남은 내게 익숙하지 않다. 반면 밝은 얼굴로 그가 먼저 내게 농장을 둘러보자고 얘기한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인데 오창언 농부는 이미 여러 차례 인터뷰를 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터미널에서 얼마 채 가지 않아 주차를 하고, 급경사진 비탈길을 올라가니 드넓은 황무지가 보인다. 간간이 포대자루 같은 것도 보이고 시커먼 재같은것도 보인다. 요즘 이곳을 개간하기 위해 무지 애쓰고 있다고 한다.


도심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오창언 농부의 농장


오창언 농부: "아, 사진 같은 것도 찍으셔야 하죠?"

나: "편하게 있으시면 찍을게요."


  인터뷰에 앞서 찍는 이놈의 사진 때문에 늘 곤욕을 치른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고 싶은 마음에 웬만하면 설정샷을 부탁드리지 않는데, 농부들은 이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늘 자기 할 일에 바쁘다. 문제는 사진을 찍으면서도 자신감이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DSLR은 내게 너무나 미지의 존재.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하며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좀처럼 실력이 늘지 않는다. 


  오창언 농부는 아직 가꿔지지 않은 땅이 못마땅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거침없이 위로 걸어간다. 나도 그의 보폭에 맞춰 중심지 정도까지 걷다 질문을 건넨다. 


나: "여기 있는 것들은 다 뭔가요?"

오창언 농부: "뜯어놓은 파란색 포대는 퇴비고요, 저기 시커먼 건 숯가루예요".


밭에 뿌려질 퇴비와 숯가루


  이곳은 장차 오창언 농부의 주력 농사가 될 '블랙 커런트' 밭이라고 한다. 블랙 커런트는 일종의 블루베리 사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땅에 빽빽하게 블랙커런트가 심길 예정이라고 한다. 나는 블랙커런트에 대해 좀 더 묻고 싶었지만 이따 물어보기로 결심하고, 계속해서 오창언 농부의 걸어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농장은 여기 말고도 몇 군데가 더 있지만 지금은 농사를 준비하는 철이라 별로 보여드릴 게 없다고 한다. 못내 아쉬웠던 건 평소 영상으로 보던 땅을 밟아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농번기의 바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다음을 기약했다.


걱정에 가득 찬 오창언 농부의 뒷 모습



취재는 즐겁지만 연재는 고통


밭을 구경하고서 다시 읍내로 향한다. 오늘의 인터뷰 장소는 아주 조용하고 한적한 작은 카페. 드디어 내가 좋아하는 취재의 순간이다. 오늘은 또 어떤 농사 이야기를 듣게 될까. 취재는 항상 설렌다. 그런데 말입니다. 취재는 즐겁지만 그것을 다시 듣고 또 들으면서 글을 적는 과정은 언제나 고통스럽다. 왜냐하면 인터뷰의 내용을 음성메시지로 녹음하는데 그것을 돌려 듣는 게 여간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끔씩은 헤드벵잉 하듯이 머리가 빙글빙글 돌 때가 있다. 특히, 두현이와 했던 인터뷰는 무려 4시간 40분이었다.


  '파밍 보이즈'(내가 출연했던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고 몇 번의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인터뷰를 하시는 분들이 대부분 노트북을 들고 오셔서 즉석에서 타이핑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나는 노트북이 무겁기도 하고 타이핑이 느리기도 해서, 핸드폰 음성메시지를 활용하고 있다. 사서 고생을 한다는 얘기다. 그래도 인터뷰이의 대화가 끊기지 않고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나: 그래서 처음 했을 때는 4시간인가 정도 걸렸어요. 제 친구를 한 거여서..

오창언 농부: 아 맞다. 파밍보이즈 아 그분이세요? 유명하신 분이네요(호탕한 웃음)

  

  다행히도 오창언 농부가 나를 알아본다. 정확히는 나를 알아본다기보다 우리를 알아보는 거겠지. 농업 쪽에 속해 있는 분들 사이에서는 우리도 꽤나 인기가 있는듯하다. 물론 지금은 뿔뿔이 흩여져 있고,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어쨌든 의도치 않게 화기 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되었고 약간 남아있던 긴장도 풀리고 있다.


  본격적인 인터뷰 질문을 던진다. 이번에는 또 어떤 농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나보다 한 참 어려 보이는 그가 들려줄 농사 이야기가 무척이나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다음화에서는 [3월호] 오창언 농부의 버라이어티한 농사 이야기 편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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