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신체 이해(3)
현재 아들은 만 6세 6개월을 살고 있습니다. 매일 밤 10~11시간 정도는 통으로 굿하게 자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미국 의료계에서 권장하는 연령별 수면 시간상으로도 이상이 없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영유아기 때의 수면 패턴과 양은 권장사항과는 조금 다른 양상이었습니다. 그래서 평균의 육아서에 근거해 씨름을 했더니, 돌아오는 것은 ‘나는 수면교육에 실패한 무능한 엄마다’, ‘다른 아이들은 다 잘 자는데, 우리 애만 제대로 못 재워서 발육에 이상이라도 오면 어쩌나’라는 좌절과 절망감이었습니다.
저도 아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프랑스 아이처럼>과 같은 육아서를 읽으며, 생후 1달부터 아이를 혼자 오래오래 재우고 자기 계발을 하게 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런 기대를 했죠;
아이가 혼자서 일찍 잠들어 밤새도록 푹 잠으로써 엄마에게 치유와 자유의 시간을 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날이 오기는 왔습니다. 다만 육아서가 말하는 대로 오지는 않았습니다.
먼저 제 아들은 보통의 육아서에서 말하는 ‘100일의 기적’부터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100일의 기적의 핵심은 통잠입니다. 아기가 태어나서 평균 3시간 간격으로 먹고 자다가 생후 100일 정도면 처음으로 밤새 5~6시간을 통으로 자서 붙여진 별칭입니다. 고문 중에서 최고봉으로 꼽히는 고문 중 하나가 잠 안 재우기입니다. 밤에도 3시간 간격으로 우는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다시 재우기를 몇 달 동안 하면 양육자는 몹시 피폐해집니다. 몇 달 동안 쪽잠을 자다 밤에 5~6시간을 푹 자면 얼마나 편안하고 상쾌할까요! 그러니 ‘기적’이라고 할 만합니다.
제가 경험한 바로는, 이 100일의 기적의 핵심은 100일이 아니라 체중이 출생 시에 비해 2배로 되는 때였습니다. 평균의 아기들은 생후 100일이면 태어났을 때보다 체중이 2배로 증가합니다. 소아학회의 소아청소년 평균 발육치(2007년)를 보면 남아 기준 출생 시 3.41kg, 3~4개월에 7.04kg입니다. 이 정도로 자라면 통으로 5~6시간 정도는 잘 수 있는 신체발달이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제 아들은 생후 6개월쯤 7kg를 넘었고 그때부터 밤에 5~6시간을 자기 시작했습니다. 수치로 말하니 출생 시의 2 배지, 5~6시간을 연속해서 잘 수 있는 신체발달 정도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사실 잠을 자는 데에도 에너지가 듭니다. 잠자는 동안 고차원적인 사고를 하는 뇌 활동은 멈추지만 생명유지에 필요한 호흡과 같은 생체활동은 멈추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루 종일 수면에 필요한 칼로리보다 약간만 더 먹고 잠을 많이 자는 다이어트법이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각설하고 자는 데에도 에너지가 든다는 점을 감안하면, 통잠은 한 번에 오랜 시간을 잘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에너지를 공급할 만큼 음식물을 섭취하고 소화할 수 있는 신체 상태가 되어야 가능할 것입니다.
그런데 육아서는 이제 100일의 기적에 이어 생후 6개월이 되면 밤 수유를 끊으라고 합니다. 밤에 잠자기 전에 수유를 하고는 그대로 11시간 정도를 쭉 재우라는 거죠. 진짜 통잠의 시작입니다. 하지만 제 아들은 그때 5~6시간을 자다 새벽 2시경에 깨서 수유를 하고 다시 잤습니다. 아들이 중간에 깨지 않고 10시간 이상을 통으로 잘 수 있게 된 때는 18개월 무렵이었으며, 그나마 통으로 11시간을 잘 수 있었던 것은 일체의 낮잠을 없앤 후였습니다(참고로 통상 세 돌까지 낮잠을 재웁니다). 그래서 두 돌 전까지는, 아들이 깨는 새벽 2시경에 일어나 우유나 달걀 등으로 요기를 시키고 재우느라 새벽 4시경에 잠들어 아침 10시는 돼야 일어나니, 게으르다는 자괴감도 들었습니다. 그 와중에 아들의 수면 시간 중 특이점이 있었는데, 밤 8시가 넘어서 자야 통으로 11시간을 자고 다음 날 아침 7시가 넘어서 일어나지, 7시 30분에라도 잠이 들면 2시간 정도 낮잠처럼 자고 일어나 새벽 4시는 돼야 잠이 들었습니다. 마치 어떤 확고한 생체시계가 몸 안에 내장되어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18개월 무렵 인상 깊은 일이 있는데, 아들이 갑자기 평소의 1.5~2배에 달하는 양의 식사를 하며 하루에 대변을 최대 9회까지 봤다는 점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성장하는 때에 소나기가 쏟아지듯 한꺼번에 식사량이 확 느는데, 아마도 그때였나 봅니다. 아들이 그때 통으로 11시간 정도를 잘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육아서는 평균의 성장치를 반영한 것이지, 성장의 모범답안은 아니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아들은 100일의 기적 이전인 신생아기에도 신생아 평균인 3시간을 연속으로 자지 않았습니다. 고작해야 1시간 30분 정도를 잤습니다. 하지만 성장에 비례해서 수면의 양도 차츰차츰 늘어갔습니다. 평균의 아이들보다 1년 정도 늦게 통잠을 자게 됐지만, 그때까지 하루 동안 잔 잠의 양의 모두 합하면 커트라인이긴 해도 평균의 범위 안에 있었습니다.
다만 잠을 재우고 중간에 깨지 않게 유지시키는 것이 관건이었습니다. 처음에 아들은 아무리 작은 소리에도 놀라 깨고, 이상한 냄새가 나도 깨고, 강한 빛이 들어와도 깼습니다. 무엇보다도 엄마에게 붙어 있지 않으면 잠이 들지도 않았고, 자다가도 깼습니다. 반드시 안아서 재워야 했고, 잠든 뒤에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100일을 보내니 안아서는 재우되, 잠이 들면 내려는 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곁에 꼭 붙어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깼습니다. 정말 자면서도 오감을 곤두세우고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아들이 잠들면 암막커튼을 치고 어두컴컴한 상태로, 불빛이 나오는 핸드폰도 켜지 못한 채 멀뚱멀뚱 있다가 같이 잠이 들곤 했습니다.
그렇게 또 돌이 되니, 아들은 안아서는 재우되 잠이 들면 내려놓고, 곁에 누워서 무음으로 영화를 보거나 스마트 폰을 검색해도 될 정도로 빛에 적응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돌이 넘으니 더 이상 안지 않고 곁에 누워서 재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11kg가 넘는 아이를 안고 많게는 한 시간 이상을 걷지 않아도 되니 무척이나 홀가분했습니다. 하지만 만 4세까지는 엄마가 오랜 시간 곁에 누워 있지 않으면 자다가 깼습니다.
이랬던 아들이 만 6년 3개월 크리스마스이브 날, 2시간 정도 성탄미사가 거행되는 동안 미동도 않고 잠이 들고, 그 2개월 뒤에는 엄마 따라 국악 연수를 가서는 옆에서 시끄럽게 꽹과리, 장구를 치는 통에도 낮잠을 자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마치 아들의 수면 역사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위험에 대비해 24시간 경계태세를 유지하는 예민한 신체가 이 세상에서 안전하게 잠들어도 된다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데 만 6년이 필요했다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잘 시간이 되었다고, 주변이 온통 조용하고 어둡다고 해서 아들이 순순히 잠이 들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