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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수 Feb 12. 2024

능청스럽고 싶었다

 

몹시 능청스럽고 싶었다. 

능청스럽다; 속으로 엉큼한 마음을 품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천연덕스러운 데가 있다.

내가 나쁜 뜻으로 그런 게 아니라는 걸, 120%의 친절로 비위 맞추며 증명하길 애쓴 시간을 살아내면서 가지게 된 소망.


"저건 지밖에 몰라."

열 살이 안 됐고, 골지가 흐트러짐 없이 나란히 정렬된 깔끔한 양말이 눈에 들어와서 신었을 뿐이었다.

그냥 그랬을 뿐이었다. 예쁜 걸 굳이 골라낸 것도, 동생의 것을 뺏고 싶은 생각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냥 그렇게 까발려져서 이기적인 인간으로 정의되어 비참해지고야 끝이 났다. 판결자에게 그게 진실인지는 크게 상관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렇고마는 정해진 수순. 양말 켤레에도 나의  의도는 악의 자체, 정당한 변호는 부당한 폭력으로 점철되었다. 보상없는 맷값, 결국은 악행의 주인이 되었다.


지나간 시간은 다시 살아내지 않아도 된다. 순행하는 시간에서 발생하는 엔트로피는 역행값을 가질 수 없다. 그래서 지구에 사는 한변함없을 고정된 이치. 지나간 시간을 다시 살아내지 않아도 된다는 다행스러운 안도의 뒷배. 


법적으로 완벽한 성인. 

밥벌이도 하고 있는 완벽한 성인. 

이 완벽한 성인은, 이제 자신을 보여주고 싶은 만큼만, 보여주고 싶은대로 보여주겠노라.

속으로는 벌벌 떨고 있을지언정, 의도가 악의적으로 해석될까봐 겁이날지언정... 겉으로는 의연하고 웬만해서는 겁먹지 않는, 대수로울 게 별로 없는... 능청스러운 면모만 드러내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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