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 요코. <시즈코상> , 윤성원 옮김, 펄 북스, P.54~
사노 요코는 일본에서는 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독일에서는 석판화를 공부했다. 그림 동화를 많이 펴냈는데, 그중 <100만 번 산 고양이>가 밀리언셀러다. 우리나라에서는 비룡소 그림동화83번으로 나와있다. 어린이 동화라 하기엔 어린이가 어떻게 느낄지 무척 궁금한 책이다. 고양이가 사랑받는 삶을 99만 번을 살고서야 100만 번째 삶에서 사랑하는 고양이를 만났는데 수명이 다해서 죽고 다시는 태어나지 못한다는 결말이다. 유년의 애정결핍은 솔직하고 편안한 사랑을 어렵게 한다. 그 사랑은 간절하지만 한편으로는 잘못될까 저어되어 물러나 있다가 차라리 잘 못 돼 버려 라며 망가지고서야 카타르시스에 도달하는 슬픈 프로그래밍이다.
사노 요코는 1938년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일본이 중국을 강제 점령한 시대에 베이징에서 태어나 유복하다 불릴만한 시절을 보내고 8살, 패전과 동시에 귀환선을 타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일본에서 디자인과를 전공하고 독일에서 석판화를 전공했다. 그림책 외에도 수필집을 수 권 썼다. <사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 등 2010년 72세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유쾌하게 써 내려간 수필집도 유명하다.
<시즈코상>은 사노 요코의 어머니 이름이다. 이 수필집 또한 작가의 말년에 쓰인 작품이다. 유년기로부터 어머니와 자신의 뒤틀린 관계를 중심으로 가족사를 덤덤하게 공개했다. 어머니와 불편한 관계에 있거나 유년의 상처를 현재도 앓고 있다면, 그녀가 털어놓은 개인사가 묘한 위로가 될 것이다. 그녀가 자신의 모친과 이룬 화해가 100만 번을 산 고양이만큼 사람마다 다르게 다가올 것 같다.
이 대목은 사랑하는 피붙이, 동생과 사별한 8살 아이, 8살이 감당할 수 없던 슬픔을 조금도 감당해주지 않은 모친과 조잡한 8 살인채로 홀로 봉합한 사별의 상처가 노인이 되어서도 그대로 생생하게 깊이 파여있음을 짐작케 하는 회고다. 그녀의 문장은 덤덤하지만 문장을 타고 공명하는 감정은 비통과 애통이다. 어쩌면 그녀는 슬픔이 너무 슬퍼서 씹지 않고 그냥 꿀꺽 삼켜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사별이라는 거대한 인생사를 수용하기엔 8세 아이의 능력치로는, 자신으로 인해 매일이 즐거웠을 4년을 보낸 동생보다는 마지막으로 손을 심술궂게 잡아당긴 자책을 도출하고는 일평생 생생하게 박제를 해두고야 말았다.
그녀뿐만 아니라 누군가는 유년의 능력 이상을 초과해서 조우한 이별을 성인이 되어서도 감당하고 있다. 그녀의 글은 또 묘한 위로가 된다. 이상적인 해피엔딩의 해법은 아닌데, 똑같이 아파하는 사람이 있다는 안심이라고 할까, 동질감이라고 할까... 그러니 그냥 묘하다 하자. 백만 번을 산 고양이처럼.
귀환선 안에서 나는 네 살짜리 남동생을 맡았다. 배 안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과 짐짝들로 꽉꽉 들어차 있었고 화장실은 갑판에만 있었다. 화장실에 갈 때면 나는 남동생의 손을 잡고 사람과 짐짝 사이를 헤집어 줄사다리나 다를 바 없이 흔들거리는 계단을 올라갔다. 그러고는 얼어붙은 갑판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살금살금 걸었다. 화장실 안에서는 엉덩이를 드러낸 남동생을 앞에 안고 볼일을 보았다. 남동생은 장군감이었다. 울음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유난히 짙은 눈썹에 가마가 있는 얼굴은 메이지 유신의 일등 공신이었던 사이고 다카모리를 닮았다. 입을 야무지게 꼭 다물고 있는 과묵한 아이였다. 지금도 내 손을 잡고 있던 작은 손의 부드러운 감촉만은 기억하고 있다. 전후의 이역 땅에서의 혼란스럽던 2년이 내게는 그 아이로 인해 눈부시게만 느껴졌다.
엄마가 치매에 걸려 대부분의 기억을 잃고 나서야 깨달았다. 어린이 사이고 다카모리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동생 다다시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나뿐이라는 것을. 오빠는 우리가 귀환한 이듬해에 죽었고, 다다시는 일본에 돌아오고 석 달 후에 죽었다. 갓난아기였거나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던 여동생들은 다다시를 기억하지 못한다.
다다시가 죽기 이틀 전 내 바로 밑의 남동생인 히로시는 아버지의 친가에서 고열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나는 다다시를 놀게 해 주려고 논두렁에 나가 있었다. 날씨가 좋은 5월이었다. 다다시는 논두렁의 올챙이를 잡아 모자에 넣어주면 좋아하며 웃었다. 그런데 그날은 바위에 걸터앉아 칭얼거리며 집에 가고 싶어 했다. 나는 다다시의 손을 힘껏 잡아당겼다.
애써 올챙이를 잔뜩 잡아줬는데 다다시의 행동에 심술이 난 것이다. 이틀 후 다다시는 작은 주검이 되었다. 나는 어른이 되고 나서도 날씨가 좋은 5월이면 논두렁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있던 다다시 생각이 난다. 힘껏 손을 잡아당겼던 일이 돌이킬 수 없는 한이 되었다.
어느 5월 나는 돌연히 작은 불단을 사러 뛰쳐나갔다.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종도 사고 분향꽃도 샀지만, 위패는 실버타운의 엄마가 가지고 있어 불단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다다시의 사진은 한 장도 없었다. 내 아이가 갖고 놀았던 인형과 장난감 차를 불단에 올려보았지만 더욱 휑뎅그렁하니 느껴졌다.
다다시가 죽던 날 부엌에 모여 있던 친척 아주머니들은 히로시가 죽은 줄 알았다며 수군거렸다. 엄마가 다다시의 죽음을 슬퍼했던 기억은 내게 없다. 다다시의 장례씩 날에도 히로시는 여전히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그때의 엄마 나이는 서른셋. 자식이 하나 죽었어도 네 명의 자식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직장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