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 나쓰메 소세키, 문예출판사, 오유리 번역
<도련님>은 110여 년 전에 발표된 소설이다. 일본의 셰익스피어라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가 그 작가다.
고전이라면 고전이다. 아니 고전이다. 그래서 고등학생이 읽어야 할 고전 100선과 같은 목록에 반드시 들어가 있다. 그래서 <도련님>의 내용은 몰라도 제목을 아는 이는 많을 것이다.
도련님 자신이 화자인 1인칭 관찰자 시점이다. 하녀(기요)를 쓸 정도로 부유한 집 안의 막돼먹은 그와 그럼에도 그를 유독 예뻐한 충직한 기요(기요의 나이는 할머니다) 얘기로 소설은 시작된다. 부모님의 작고와 집의 처분, 그때로부터 고교, 대학을 자취하며 수학하느라 잠시 기요와 떨어져 살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에도(현재의 도쿄)를 떠나 시골 깡촌에 교사로 부임해 가는 대목이다.
막무가내인 '나'는 깡촌 교사 생활에서도 막돼먹게 좌충우돌하다 도망치듯 돌아와 기요부터 찾아간다. 좌충우돌 깡촌 교사 생활이 작품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시작과 끝은 기요의 나를 향한 변함없이 자애로운 '엄마'이상의 애정이다.
작가는 어렸을 때, 남자아이가 태어나지 않은 큰 집에 입양되었다. 당시 일본은 장손인 아들이 대를 잇는 문화였다. 그러나 그 부부도 사이가 좋지 않아 파양 되어 돌아온다. 원부모에게도 입양 간 친척인 큰아버지 내외에게도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그의 사정을 안다면 기요가 무식해서 충직한 하녀가 아닌, 작가 자신이 일평생 목말라하던 엄마의 애정을 주는 대상임을 짐작할 수 있다.
작품의 마지막도 죽을 때까지 변함없이 굳건하고 자애롭고 큰 사랑을 '나'에게 준 기요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 나름의 해피엔딩이다.
덧붙여 작품 속에서 “갈엿이라구?”와 같은 서울 사투리는 “에도코”(당시 도쿄의 지명에 남자를 붙인 말로 우리 말의 늬앙스로 대체하자면 “서울깍쟁이”에 준함)인 “나”를 묘사하고자한 작가의 의도를 반영한 번역으로 오타가 아니다.
그런데 짐 챙길 생각을 하니 약간 귀찮아졌다.
짐을 정리하고 난 다음에는 기요가 사는 집에 자주 들렀다. 기요의 조카는 뜻밖에도 썩 괜찮은 사람이었다. 내가 갈 때마다 이것저것 내오면서 대접을 했다. 기요는 날 앞에 앉혀두고 자기 조카에게 내 자랑을 했다.
"이제 학교를 졸업하시면 고지마치에 집을 장만하시고 관청에 다니실 거다."
자기 혼자 정하고 자기 마음대로 떠들어대니 그 앞에서 나는 민망해서 얼굴만 벌게질 뿐이었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가끔 내가 어릴 적에 밤에 자다가 이불에 오줌을 싼 것까지 들춰내는 데 결국 나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조카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기요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앉아 있었을까. 어쨌든 내가 보기에 기요는 자신과 나와의 관계를 무슨 옛날 막부 시절의 주인과 하녀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자기에게 주인이면 조카에게도 내가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조카도 참, 성격 한번 되게 무던한 사람이다.
시코쿠로 떠나기로 한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다. 떠나기 사흘 전 기요를 다시 찾아갔는데 다다미 석 장짜리 북향 방에 감기에 걸렸다며 누워 있었다. 그래도 내가 방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몸을 추슬러 일어나 앉았는데, 앉기가 무섭게 "도련님, 언제 집 장만하세요?"하고 물었다. 학교만 졸업하면 돈이 저절로 굴러들어 오는 줄 아나 보다. 나 같은 사람을 붙들고 아직도 도련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정말이지 바보 같은 짓이다. 내가 간단하게 "당분간 집은 살 수 없어. 나 시골에 가는 길이야"라고 답했더니 기요는 고개를 푹 떨구며 아무 말 못 하고 흐트러진 하얀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그 모습이 안돼 보여서 "지금 떠나기는 하지만 곧 돌아올 거야. 내년 여름방학 때 꼭 올게"하며 위로해주려고 애썼다. 그 말을 듣고도 기요 표정이 밝아지지 않아서 "선물로 뭘 사다 줄까? 뭐가 갖고 싶어?"하고 물어봤더니 작은 목소리로 "에치고의 갈엿이 먹고 싶어요"라고 했다. 에치고의 갈엿이라구? 들어본 적도 없는데. 그리고 에치고라고 하면 그 방향부터가 영 틀린데. 그래서 "내가 가는 곳에서는 그런 엿을 구할 수 없어"라고 솔직히 말했더니 "어디께로 가신다구 그랬지요?"하고 다시 물었다. "여기서는 서쪽이야"하고 또 가르쳐주자 이번엔 "거기가 하코네 가기 전이예요?"하고 또 엉뚱한 걸 물어보았다.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무척이나 난감했다.
떠나는 날에는 아침부터 와서 이것저것 챙겨주었다. 역까지 오는 길에 가게에 들러 치약이랑 칫솔이랑 수건을 사서 가방에 찔러 넣어주었다. "이런 것 필요 없대두"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인력거를 타고 역 앞에 도착해 기차에 자리를 잡고 앉은 나를 보고 기요는 작은 목소리로 "이제 이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네요. 부디 몸 건강하세요"하고 말했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매단 채로. 나는 울진 않았지만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했다. 기차가 덜커덩거리면서 움직였기 때문에 이젠 시간이 다됐다고 생각하면서 차창으로 고개를 빼고 돌아보니 역시나 기요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기요의 모습이 너무나 작아 보였다.
기요 이야기를 잊고 있었다. 나는 도쿄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든 채로 기요가 있는 집으로 향했다.
"기요, 나 돌아왔어"하고 뛰어들어갔더니 "아이고 도련님, 우리 도련님, 일찍 돌아오시네요"하고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나도 너무 기뻐서 "이젠 시골에 안 갈 거야. 도쿄에서 기요하고 같이 살 거야"하고 말했다.
그 후 어떤 사람의 소개로 철도회사의 기수로 취직했다. 월급은 25엔이고 다달이 내는 방값은 6엔이었다. 기요는 으리으리한 대궐 같은 집은 아니지만 나와 같이 지내면서 항상 "좋아요. 기뻐요"하다가 올 2월 폐렴으로 죽었다.
죽기 전날, 나를 불러서 "도련님 부탁이 있는데요, 내가 죽으면 도련님 다니시는 절에다 묻어주세요. 무덤 속에서 도련님 오시길 기다리면 좋겠어요"했다. 그래서 기요의 묘는 고비나타에 있는 요겐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