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피로와 권태를 날려주는 A4 1장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밀감>

by 민경수

단 한 장이었다. 문단의 구분 없이 빽빽한 단 한 장의 A4였다. 일본어로 된 그 글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것이 과제였다.

나는 지독히도 우울한 유년을 보냈는데, 사소한 일도 받아넘기지 못하고 죽어서 갚아야만 할 것 같은 죄책감에 잡혀 살았다. ‘나 같은 것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런 분란 따위는 없었을 텐데’라는 식이었다. 하루하루가 무사히 넘겨야 할 생의 과제였다. 꼬마 때부터 줄기차게 이 세상에서 내가 고통 없이 없어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실행할 수 없는 내 생의 종결을 바라곤 했다.

‘인텔리’한 느낌의 화자의 서술을 따라 해석을 진행한다. 이등 칸, 발차 호각 등 100년은 전의 일일 것 같은 이질감 외엔 특별할 것이 없는 일상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그 서술은 다음을 계속해서 기대하게 하는 힘이 있다. 인텔리하고 세련된 그의 기분을 거스르는 ‘천박한 얼굴’을 한 그와 다른 계집아이가 등장한다. 소녀에 대한 화자의 솔직한 묘사는 그녀보다는 화자의 고급스러움이 거슬릴 정도다. 사건의 진행, 이윽고 하이라이트, 공중에 던져진 밀감 여섯 알. 이것이 그림이라면 주변은 온통 회색이요, 그 밀감만은 회색의 보색과도 같은 선명한 노랑주황일 것이다.

그제야 까탈스럽기만 하던 화자의 마음에도 노랑주황의 온기가 돈다. 피로와 권태, 불가해(이해가 안 되는), 하등 한 따분한 인생을 겨우 잊는다.

화자뿐만 아니라 내 마음도 그러했다. 작가 류노스케의 힘이었다.


류노스케는 결국 30대 중반에 요절한다. 천재와 어울린다고 여겨지는 죽음이었다. 그는 정신병자 어머니의 병이 유전되었을 거라는 강박에 결국은 점령당했던 것이다. 화자는 확실히 작가 자신이다. 그의 소설 <갓파>, 정신병원에 감금된 남성은 원래는 갓파였는데 실수로 인간 세상으로 와버려서 그리 된 것이라 한다. 그 또한 그다. 이 세상과 자기 자신으로는 융합할 수 없었던 그의 처지였을 것이다.

그의 글은 살아있기가 피로했던 그때의 나와 공명했다.



어느 흐린 겨울날 저물녘이다. 나는 요코스카 (横須賀) 발 상행선 이등 칸 객차에 앉아 우두커니 발차 호각 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작부터 전등이 켜진 객차 안에는 드물게도 나 말고는 승객이 한 명도 없었다. 밖을 내다보니 어둑어둑한 플랫폼에도 오늘은 어쩐 일인지 전송 객들의 자취마저 끊기고 그저 우리 속에 갇힌 강아지 한 마리가 이따금 처량 맞게 짖어댈 뿐이다. 그런 모습들은 당시의 내 기분과 이상하리만치 썩 잘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내 머릿속에는 말할 수 없는 피로와 권태가 마치 눈이라도 흩뿌릴 듯한 하늘처럼 칙칙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나는 외투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양손을 찔러 넣은 채였으며, 비치되어 있는 석간을 꺼내 볼 기분도 들지 않았다. 이윽고 발차 호각소리가 울렸다. 나는 어렴풋이 마음이 가라앉는 걸 느끼며 뒤 창틀에 머리를 기대고 눈앞의 정거장이 슬금슬금 뒷걸음질 쳐주기를 기다릴 요량도 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기차가 움직이기에 앞서 요란스러운 게다 소리가 개찰구 쪽에서 들려오는가 싶더니 이윽고 차장이 뭔가 욕설을 퍼붓는 소리와 함께 내가 앉아 있는 이등 칸 문이 열리더니 열 서 넛 쯤으로 보이는 한 계집아이가 허둥지둥 안으로 들어섰다. 그와 동시에 차체가 크게 한번 덜컹이더니 서서히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개 씩 시선을 끊어놓는 플랫폼의 기둥, 깜박 잊고 내버려둔 듯한 운수차 (運水車), 기차 안의 누군가에게 축하 인사를 하는 아카보 (赤帽子:정거장에서 수하물을 나르는 짐꾼 : 역주)―그 모든 것들은 차창에서 내뿜는 매연 속에서, 미련이 남은 듯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나는 잠시 한숨을 돌리려는 생각에서 궐련에 불을 붙이며 비로소 느른하게 눈꺼풀을 들어 올려 앞자리에 앉아있는 계집아이의 얼굴을 흘긋 쳐다보았다. 윤기 없이 푸석푸석한 머리를 은행잎 모양으로 해서 아무렇게나 뒤로 틀어 올린, 볼에는 소맷부리로 콧물을 닦아 길게 두 줄로 콧물이 말라붙은 자국이 나 있고 기분 나쁘리 만치 온통 벌겋게 양 볼이 튼, 너무도 촌티가 배어있는 계집애였다. 게다가 꼬질꼬질한, 연두 색 털실로 짠 목도리가 축 늘어져있는 무릎 위로는 큼직한 보따리가 놓여있었다. 거기다 보따리를 끌어안고 있는 동상이 걸린 손 안에는 삼 등 칸 기차표를 소중한 듯 꼭 움켜쥐고 있었다. 나는 이 계집애의 천박스러운 얼굴이 맘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계집아이의 지저분한 옷차림 역시 불쾌했다. 그리고 끝으로 이등칸과 삼등칸의 구별조차 못하는 우둔함이 내 화를 돋우었다. 그래서 궐련에 불을 붙인 나는 한편으로는 이 계집애의 존재를 잊고 싶다는 마음도 있어 이번에는 석간을 건성으로 무릎 위에 펼쳐놓고 읽었다. 그러자 그때 석간의 지면 (紙面)에 떨어진 외광 (外光)이 돌연 전등 빛으로 바뀌며 인쇄 상태가 좋지 않은 몇몇 란(欄)의 활자가 의외일 만큼 선명하게 내 눈앞에 떠올랐다. 말할 것도 없이 기차는 지금 요코스카 선의 수많은 터널 중 첫 번째 터널로 들어선 것이다. 그러나 그 전등 빛이 비춰주는 석간의 지면을 읽어봐도, 역시 나의 우울을 위무하기에는 세간 (世間)은 너무도 평범한 사건들로 가득 찼다. 강화 (講和) 문제, 신랑 신부에 관한 기사, 독직 (瀆職)사건, 부음 광고― 나는 터널로 들어선 순간 기차가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듯한 착각을 하며 그 삭막한 기사와 기사 사이를 거의 기계적으로 건성건성 눈길을 옮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에도 계집아이는 마치 비속한 현실을 인간의 형상으로 만들어놓은 것 같은 표정으로 내 앞에 앉아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의식시켰다. 이 터널 속의 기차와 이 촌뜨기 계집애와 그리고 또 이 평범한 기사들로 가득 찬 석간― 이것이 상징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불가해한, 하등(下等)한, 따분한 인생의 상징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그 모든 것들이 시들해져서, 읽고 있던 석간을 치워놓고, 다시 차창 틀에 머리를 기대고 죽은 듯이 눈을 감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쯤 지났을 때였다. 문득 뭔가에 위협을 받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무심코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 틈 엔가 예의 계집애가 맞은편에서 내 옆자리로 옮겨와 자꾸 차창을 열려고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묵중한 유리문은 좀처럼 생각대로 올라가 주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 추위로 튼 볼은 더욱 빨개지고, 이따금 콧물을 훌쩍거리는 소리가 잔 숨소리와 함께 쉴 새 없이 귀로 들어왔다. 그 소리는 물론 내게도 얼마쯤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기차가 막 터널 입구로 접어들려 한다는 것은, 땅거미 속에서 건초더미만 훤히 보이는 양쪽의 산허리가 창 쪽으로 육박해 오는 것만으로도 금방 수긍이 갈 것이다. 그런데도 계집애는 일부러 닫혀있는 창문을 내리려고 한다―그 이유가 나로서는 좀처럼 납득이 되지 않았다. 아니, 내게는 그것이 단순히 계집애의 변덕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마음속에 여전히 험악한 감정을 비축하며 그 동상 걸린 손이 유리문을 들어 올리려고 악전고투하는 모습을 마치 그것이 영원히 성공하지 않기를 기원하는 듯한, 냉혹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윽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기차가 비스듬히 몸을 틀며 터널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계집애가 열려고 했던 유리문은 마침내 툭하고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자 그 네모난 공간 속에서 매연을 휘저어놓은 것 같은 시커먼 공기가 느닷없이 숨이 막힐 것 같은 연기를 차내에 자욱이 피워냈다. 원래 인후염이 있는 나는 손수건을 얼굴에 갖다 댈 겨를도 없이 연기를 온 얼굴에 뒤집어쓴 채 거의 숨도 못 쉴 정도로 콜록거려야만 했다. 그러나 계집애는 내게는 신경을 쓰는 기색도 없이, 창밖으로 고개를 길게 빼고는 어둠 속에서 불어대는 바람에 은행잎 모양의 빈모 (鬢毛)를 나부끼면서 계속 기차가 진행하는 방향 멀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매연과 전등 불빛 속에서 응시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창밖이 환해지면서, 열어놓은 창으로 흙내와 건초 냄새와 물 냄새가 서늘하게 흘러 들어오지 않았다면, 간신히 기침을 멈춘 나는 이 난생처음 보는 계집애를 무조건 호되게 야단을 쳤거나, 아니면 원래대로 창문을 닫게 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기차는 이미 순조롭게 터널을 빠져나와 건초가 쌓여있는 산과 산 틈에 끼어있는 어느 초라한 마을 근방의 건널목을 지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건널목 근처에는 하나같이 허름한 초가집과 기와집이 너저분하고 옹색하게 빽빽이 들어차 있고, 건널목지기가 흔들고 있는 것 같은 희뿌연 깃발이 느릿느릿 저녁 빛을 흔들어놓고 있었다. 이윽고 터널을 빠져나왔는가 싶었는데 그 순간 그 쓸쓸한 건널목의 울짱 맞은편에 나는 볼이 빨간 세 명의 사내아이가 밀치락달치락 하며 늘어서 있는 것을 보았다. 아이들은 모두 이 흐린 하늘로 인해 찌부러졌다고 생각할 만큼, 하나 같이 키가 작았다. 게다가 이 외딴 마을의 을씨년스러운 풍경과도 닮은 빛깔의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지나가는 기차를 올려다보며 일제히 손을 들어 올리기가 무섭게 목을 한껏 뒤로 젖히고 열심히 뭔가 의미를 알 수 없는 고함을 질러댔다. 바로 그때였다. 차창으로부터 상반신을 내놓고 있던 예의 그 계집애가 그 동상에 걸린 손을 불쑥 뻗더니 있는 힘껏 좌우로 흔들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홀연 가슴을 뛰게 할 만큼 따스한 일몰에 물든 밀감 대, 여섯 알이 기차를 지켜보고 있던 아이들 위로 후두둑 떨어졌다. 나는 엉겁결에 숨을 삼켰다. 그리고 그 순간 모든 걸 깨달았다. 계집애는 지금 필시 남의 집 살이를 하러 가는 것이며, 그 품속에 넣고 있던 몇 알의 밀감을 차창에서 던져주는 걸로, 일부러 건널목까지 전송을 나온 남동생들의 수고에 보답하는 것이었다. 황혼 빛에 물든 외딴 마을의 건널목과, 작은 새처럼 소리를 질러대는 세 명의 사내아이들과, 그리고 그들 위로 어지러이 떨어지는 선명한 밀감 빛깔―그 모든 풍경들은 기차의 창밖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는 안타까우리만치 또렷하게, 그 광경이 박혀버렸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청징함이 솟구쳐 오르는 걸 느꼈다. 나는 똑바로 머리를 들고, 마치 딴 사람을 보듯이 계집애를 주시했다. 계집애는 어느 틈엔가 내 옆 자리로 돌아와 여전히 온통 튼 뺨을 연두색 털실로 짠 목도리로 푹 감싸고, 큼지막한 보따리를 끌어안은 손안에 삼등칸 기차표를 꼭 움켜쥐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뭐라 표현할 수 없는 피로와 권태를, 그리고 또한 불가해한, 하등한, 따분한 인생을 겨우 잊을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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