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가장 아름다운 풍경

그럼에도 불구하고

by mauve

“안녕하세요. 산니콜라스로 가주세요.”

혹은 “산미구엘 알토로 가주세요.”




택시에 탔다. 짧지만 스페인어라고는 “안녕”과 “감사합니다.” 밖에 모르던 나에게는 전부였던 말들을 기사님께 건넸다. 고작 며칠이라고, 그 짧은 날들 동안 이 작은 도시에 적응한듯해 보이는 내가 좋았다. 늦은 시간이기에 걸어가도 충분한 길을 택시를 선택했다.


그라나다에 있는 일주일이 되지 않는 날 동안 밤늦게 도착한 첫날을 제외하고 매일 이 곳에 올랐다. 어떤 날은 치안이 좋지 않다는데 걱정하며 한걸음 한걸음 날이 잔뜩 선 채로 올랐고, 어떤 날은 택시를 타고 편안히 골목의 집들 사이로 펼쳐지는 풍경들을 마주하며 올랐다. 달리는 택시 안의 나 또한 집들 사이의 잠깐잠깐 보이는 풍경들에 잔뜩 설렜다. 크지 않은 그라나다를 나는 이 곳 때문에 떠나지 못했다. 그저 모든 이들이 아슬하게 돌담에 걸터앉아 그라나다의 전경을 바라보는 곳. 알바이신이 보이는 전망대. 이곳으로부터 나는 높은 곳에 대한 이유 있는 애착이 생겼다. 등 뒤로는 어느 아저씨의 기타 소리와 맞은편 작은 식당으로부터 나오는 희미한 불빛들 그리고 밤의 알바이신은 그라나다에 도착한 둘째 날 다녀온 곳이지만 디테일하게 가까이에서 본모습보다도 좋았다. 밤에 더욱 빛나던 알바이신과 해 질 녘이면 황금의 그라나다가 되곤 하는 풍경에 넋을 놓았다. 사진이 내 눈에 담기는 것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최소한의 사진을 찍었다. 걸터앉은 채로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고 햇빛이 들면 그 빛들을 마주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들이 계속됐다. 꽤 오랜 시간 앉아있어도 배고픔이 따위가 되어버리는 곳이었다. 배고픔 따위. 사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이 곳이 처음이 아니었다. 주말 오전 오른 산에서 내려다본 내가 사는 곳과 바르셀로나의 벙커에서 내려다본 계획도시의 정갈한 바르셀로나 풍경들. 모두 최고였지만 이 곳이 특별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고민하며 여러 가지들을 늘어놓다가 ‘좋은 게 좋은 거지.’ 라며 이유를 찾는 것을 포기했다. 수많은 고민과 걱정들을 늘어놓으며 한숨이 노래가 되듯 살아왔던 지난날이 절로 반성되었다. 나는 어쩌면 우주 속 아주 작은 먼지 일 뿐일 텐데 무엇에 그리 지쳐하며 살아왔는가.


어느 하루는 우연히 만난 스페인어에 능통하며 한국과 스페인이 아닌 곳에 살고 있는 한국인 여성과 함께 그곳을 동행했다. 다른 날 보다 조금은 일찍 서둘러간 덕분에 해가 지기 전의 풍경을 보며 그곳에 올랐던 날들 중 가장 큰 벅차오름에 사로잡혀있던 날이었다. 그 감정에 가득 취해 내려오는 길에 보이던 새하얀 집들과 어떤 이의 뒷모습, 노을 그 모두를 잊지 못한다. 한 꼬마의 인종차별 또한. 동행했던 분이 통역해주기 전까지는 몰랐다. 입을 내밀며 큰 소리로 우리에게 쏘아붙이듯 말하기에 ‘우리에게 욕을 한 게 분명해’ 정도였다. 꼬마의 당돌했던 말은 “나에게 키스를 해봐.”였고 아주 어린 꼬마에게 그런 모욕을 당했다는 것이 별로였다. 당시에는 따뜻한 온탕에서 나오자마자 찬물을 맞은 사람처럼 좋지 않은 기분이었음에도 지금 생각하니 그 또한 그날의 기억이다.


그 기억을 안고도 다음날이면 오르고 했던 그곳을 살면서 얼마나 더 갈 수 있을까.

산미구엘 알토와 산니콜라스.

여러 전망대 스팟들 중 내가 갔던 두 곳의 이름을 새긴다.


가장 아름답던 그곳은 여전히 내게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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