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 없이 이 곳에 왔다.
예외가 있다면 가우디, 이 나라의 엽서와 우표 정도였다.
관광의 목적보다 그토록 가보고 싶던 나라에서 내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이 곳에 도착해 며칠을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빼곡히 무언가를 하며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가우디의 여러 건축물들에 이어 다음 날은 몬세라트와 분수쇼까지. 관광 책이나 블로그를 배제했음에도 이 곳에서 만난 한국인들과 함께 하다 보니 나 역시도 그들에 섞여 관광객들이 으레 하는 일정들을 소화했다. 하루하루 꽉 찬 일정에 숙소에 돌아와 누우면 바로 잠에 들기 일쑤였다. 단시간에 많이 본 다는 장점도 있었지만, 내가 바라던 여행이 아니었다. 이틀을 여러 사람들과 함께 다니다가 혼자 다니려니 갑작스레 외로움이 느껴졌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게 원래 내 모습이지 않은가. 단지 잠깐 틀에 벗어나 여행했던 것이었다. 물론 틀에 벗어난 이틀 또한 나쁘지 않았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웃고 공감했다. 몇 년 동안 이 나라를 좋아하며 얻은 정보들 외에 내가 관심 없었던 것들에 대한 여러 정보들도 공유했다. 그리고 다시 나는 혼자가 되었다.
눈을 뜨니 햇빛이 내 침대를 향해 내리쬐고 있었다. 강렬하다고 유명한 스페인 볕이. 햇빛과 하얀 커튼이 너무 예뻐서 누운 채로 한동안 눈을 떴다 감았다 반복했다. 그렇게 빛을 기억했다. 여유롭게 일어나 마트에서 사 온 컵파스타를 먹었다. 그리고는 다시 침대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고 뒹굴거리기를 반복하며 나갈 준비를 했다. 몇 시에 어디에서 만나야 한다는 약속도 없었으며, 정해진 일정 역시 없었다. 가방도 없이 코트 주머니 양쪽에 일회용 카메라와 휴대폰을 각각 넣고 숙소를 나섰다. 이렇게 가고 싶은 곳이 딱히 없는 날은 바르셀로네타로 향하고는 했다. 푸른 바다를 보며 가만히 서있었다. 밀려오는 파도가 내 것이라도 되는 마냥. 날씨가 흐렸음에도 그 분위기는 나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바르셀로네타 해변으로 향하던 그 걸음에 담겨있던 기대를 기억한다. 바르셀로나에 일주일을 머무르며 몇 번이나 그곳으로 향했는지 모른다. 바다 근처에 살면 이런 기분일까. 광활한 이 곳이 때론 나의 위로이지 않을까. 마드리드로부터 바르셀로나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풀고 나왔다. 굶주린 배를 빠에야로 든든히 채우고 무작정 갔던 그곳은 스페인에 도착 한지 이틀 째 처음 마주한 커다란 감동이었다. 감탄으로 밤하늘을 가득 채웠다. “너무 좋다.”는 혼잣말이 수 없이 하늘을 물들여 까만 밤을 만든 것처럼. 이미 해가 지고 난 뒤라 바다가 푸르게 보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물 냄새와 주변 음식점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야자수들로 이루어진 그곳은 나로 하여금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었다. 이 곳을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계절 계절마다 여행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