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가슴 한편에 그리운 이를 간직한 채 살아간다.
슬프지만 숙명임을 받아들이고 우리는 그렇게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여행 내내 마주하던 아이들이 어쩜 그리 예쁘던지. 아이를 보면 나도 저렇게 투명한 해맑음을 간직한 아이였던 때가 있었음에, 그런 나를 지켜보던 아빠가 함께했음에 따스한 생각들이 마음을 한 없이 물들였다.
스페인에 오기로 다짐하면서 이 결정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후회도 고민도 없었다. 어릴 때부터 이 곳은 너무나도 특별한 곳이었기에 무조건 스페인이었다. 츄러스를 좋아하는 내게 스페인 츄러스는 살면서 꼭 먹어봐야 하는 것이었고, 한 권의 책 이후로 이 넓은 지구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나라. 또한 그 무엇보다도 아빠와 함께 오고 싶던 곳이었다. 고등학생 때, 한창 스페인에 빠져 “나는 그곳에 가서 가이드를 할 거야.” 하던 시절이었다. 자연스레 천재 건축가 ‘가우디’를 접하게 되었고 ‘우리 아빠도 건축가니까 나중에 아빠 모시고 여행 가야지.’ 라며 다짐했었다. 이런 점에서, 생각보다 일찍 여행 올 수 있었음에 반은 성공이지만 혼자 왔다는 사실이 반은 실패라고 해야겠다. 혼자 하는 외로운 여행이었지만 여행 내내 아빠는 하늘에서 나와 함께했다. 지갑에 아빠 사진을 넣고 많이 걸으며 스페인을 느꼈다. 보고 싶을 때면 꺼내어 보며 이 곳의 향기를 함께 나누었다.
이 나라에 온 지 3일째, 하루 통째로 가우디를 만나는 날로 정했다. 아침 일찍부터 일어났다. 도미토리 안은 암흑이었고 내 알람만이 고요함을 깨며 신나게 울리고 있었다. 혹여나 다른 사람들이 깰까 재빨리 휴대폰에 손을 뻗어 알람을 껐다. 누운 상태 그대로 기지개를 켰다. 오늘 하루에 대한 기대를 듬뿍 담은 채. 세수를 하며 거울을 봤는데 웃고 있는 나와 마주했다. 그것도 아침부터. 세수하며 거울 볼 여유도 없던 아침을 살던 내가 이렇게 일찍 일어나 느긋하게 하루를 준비하다니 말이다. ‘매일을 여행하듯이 산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쉽게 풀리지 않는 상념들을 늘어놓으며 간단한 식사를 하고 숙소를 나섰다.
마치 소풍 가는 아이 마냥 걸음걸음이 설레었다. 실제로 가우디의 위엄과 마주하게 된다는 사실에 너무나 신이 났다. 이 여행을 떠나오기 전, 수 없이 상상했다.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 안에 있는 내 모습을. 천주교 신자가 아님에도 상상 속 나는 감동에 벅차올라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실로 그 빛을 마주한 순간 벌어진 입은 쉽게 다물어지지 않았다. 감탄을 금할 수 없는 관경들이 눈 앞에 펼쳐졌다. 보고 사진 찍고 보고 사진 찍고 반복된 행위가 계속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찍어도 사진에 이 모든 것을 담기에는 역부족. 의자에 앉아 위에서 아래로 다시 아래에서 위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또다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두 손을 모았다. 두 눈을 감고 아빠에게 이야기했다. 비록 혼자일지라도 이 곳에 도착했음을, 아빠가 보고 있는 것처럼 나는 이 땅에서도 안녕히 잘 있음을, 앞으로의 여정도 계속 지켜봐 달라고. 그리고 오늘도 여전히 보고 싶다고.
아빠는 평소 매우 자상한 분이셨다. 일 때문에 멀리 가 계셨을 때는 내 생일을 위해 “오늘은 너의 날, 생일 축하해.”라며 전보를 보내주셨고, 책을 선물할 때면 첫 장에 짧은 메세지가 늘 함께 했고, 수능 보는 날에는 힘내라며 격려의 편지를, 어린 시절에는 온 가족 함께 어디든 가는 것을 좋아하셨다. 어쩌면 내가 이토록 여행을 좋아하게 된 것도, 스페인에 오게 된 것도, 이 곳에 와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아빠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 하곤 한다. ‘고마워. 아빠.’
여전히 의자에 등을 기댄 채로 이 곳을 만끽했다. 주변의 기도하는 사람들 틈 사이에서 내 기도 또한 하늘까지 온전히 닿았기를 바라면서. 1882년. 내가 태어나기 이 전의 심지어 아빠도, 할아버지도 태어나기 이 전부터 지어지기 시작한 이 곳은 ‘시간’이란 숫자가 바깥세상과 동떨어진 무의미해 보이는 곳이었다. 또한 그런 시간들에 쫓겨 사는 우리에게 인간의 유한성을 제시한다. 많은 이들이 이 곳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갔듯. 가우디 또한 완성하지 못한 채 눈을 감았듯 말이다. 그가 살아있지 않은 현재에도 그가 남긴 설계도를 통해 그의 뜻을 이어 이 곳을 완성해 나아가고 있다. 나는 그 과정 안에 와 있는 것이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이 과정에 내가 두 발을 딛고 서있다는 사실이 실로 영광스러웠다. 내가 다녀감으로 인해 이 성당이 지어지는데 타일 한 장이라도 아니 흙 몇 톨이라도 보탤 수 있다니 진정 행복한 순간이었다. 2026년 완공을 예상하고 있는 이 곳에서 완공한 후 지금보다 완벽해진 이 곳에 있는 나를 상상해보았다. 생각해보니 완공 한 이 곳 안의 나보다 현재, 공사 중인 이 곳 안의 내가 더 행복할 것 같았다. 결과보단 과정 속에 함께 했다는 사실에 더 큰 감사함이 들었다. 이 의자에 얼마나 앉아 있었을까. 의자의 온기를 느끼며 일어났다. 나가기 전, 다시 한 번 성당을 둘러보며 다시 올 것임을 스스로와 약속했다.
종일 계속되는 감동에 가우디에 취해 하루를 보냈다. 밤이 되었고, 스테이크가 맛있다고 했지만 새우요리가 입에 잘 맞던 집에서 식사를 했다. 부른 배를 잡고 밤의 바르셀로나 공기를 마시며 산책했다. 오늘 하루를 되돌아봤고 밤하늘을 배경으로 한 성당이 궁금했다. 휴대폰을 꺼내 자연스레 구글맵을 켰고 다음 일정이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으로 정해져 있었던 것 마냥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sagrada familia’를 검색했다. 도보로 30분 정도 걸리는 위치였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낮과는 다를 성당을 상상하며 골목골목을 지났다. 꽤 걸었을까. 성당의 첨탑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낮에 봤던 옥수수 모양의 첨탑은 조명들로 인해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몇 개의 횡단보도를 지나 다시 성당을 마주했고 낮과는 다른 모습에 성당 근처를 뺑뺑 돌며 또다시 감탄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계속된 산책에 낮에는 몰랐던 성당의 뷰 포인트를 찾았다. 성당 앞 호수를 지나며 발견 한 벤치에서 바라보는 성당은 찬란함 그 자체였다. 물에 비친 성당과 시선을 올리면 보이던 나뭇가지 사이의 금빛 성당은 살면서 이 곳에 또 와야 하는 이유임에 틀림없었다.
이토록 반짝이는 이 곳을 아빠도 보고 있을까. 스페인에 도착하는 비행기에서 본 가로등 불빛으로 빛나던 마드리드처럼 하늘의 아빠에게도 이 성당이, 성당 앞의 내가 그런 모습들로 보이지 않을까. 이런 금색의 찬란한 빛들이, 혼잡한 도로 위 빼곡한 차들의 라이트가, 누군가 야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건물의 꺼지지 못하는 불빛이 모여 야경이 된다. 누군가에는 고난의 순간들이 다른 누군가에는 아름다움으로 비춰진다는게 씁쓸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아빠가 그렇게라도 깜깜한 이 곳의 나를 바라봐준다면 말이다. 외로운 순간들이 많았지만 외로울 때면 아빠 생각이 많이 들었다. 곁에 있을 때는 몰랐던 크기의 그리움이 느껴졌다. 2013년 10월 29일. 갑작스레 찾아온 이별이었다. 언젠가는 겪어야 했던 슬픔을 남들보다 조금 빠르게 경험한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기를 여러 번. 지금 나는 그 당시의 나보다 조금은 튼튼해졌다. 튼튼한 몸과 마음으로 내 기억 속 50대 초반의 아빠 모습 그대로 간직한 채 좋았던 기억만을 가득 안고 내 여행은, 나의 이야기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