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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Jun 01. 2018

야망 없이 살자는 야망

바쁨 공화국 #5

 아버지는 저녁을 먹다가 자꾸 소소한 격언을
 늘어놓았다. 아버지가 음식 앞에서 떠올리는 건
 생존이었다.
 “성공하지 못하면 달걀 껍데기를 핥게 된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사람은 (어쩌고 저쩌고)….”
 “미국에서는 하고자 하면 누구나 성공한다….”
 “하늘이 돕는 자는 (어쩌고 저쩌고)….”
  
  대체 누구한테 말하는 걸까
  나는 늘 아리송했고
  아버지를 정신 나간 머저리라고 생각했지만
  어머니는 항상 그 설교 시간에
  추임새를 넣었다. “헨리,
  아버지 말씀 새겨듣거라.
  
  그 나이의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음식이 설교와 함께
  배 속으로 내려갈 때면
  식욕은 가시고
  속은 더부룩했다.
  
  내 생각에
  아버지만큼
  내 행복에 초를 치는 사람은
  세상에 둘도 없었다.
  
  그런데 보아하니 나 역시
  아버지에게 똑같은
  존재인 듯싶었다.
  
  “게을러터진 녀석.” 아버지는 내게 말했다.
  “평생 게으름뱅이로 살 녀석!”
  
  그러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게으름뱅이로 산다는 게
  이 개새끼와 정반대로 사는 거라면,
  앞으로 꼭 그렇게 살아야겠구나.
  
  아버지가 오래전에
  죽는 바람에
  내가 그것만큼은
  성공했다는 걸
  못 보여주는 게
  안타까울 따름.


- 찰스 부코스키, <야망 없이 살자는 야망> - 


빈민가의 계관시인, 열정적인 미치광이로 불리는 작가 찰스 부코스키. 그는 거진 평생을 잡역부, 집배원, 경마꾼 등의 일을 하고, 술과 노름을 즐기며 밑바닥 생활을 전전했다. 특유의 솔직하고 거침없는 필체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그가 작가로 주목받은 것은 오십에 가까운 나이가 됐을 때였다. 여타의 유명 문인과 달리 방탕한 하류층 노동자의 삶을 살았던 찰스 부코스키는, 묘비명도 그의 굴곡진 삶만큼이나 독특하다. 그것은 바로 "애쓰지 마 (Don`t try)"이다. 


'야망 없이 살자는 야망', 지금 한국인에게 필요한 것은 적극적 내려놓음이다. '하면 된다'는 긍정의 과잉 속 팽배한 물질주의와 집단주의로 인해, 한국인은 바쁘게 달리는 경주마의 신세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획일적인 사회 잣대와 만족을 모르는 성과주의로 인해, 한국인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사력을 다해 경주에 임해야 한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가 '성공'이라는 신기루를 위해, 야망을 품고 분주히 살 것을 주입받는다. 한국인이여 야망을 가져라! 바쁘게 살아라!


문제는 이러한 야망이 남들과 비교하길 좋아하는 한국에선 결코 실현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일반적인 성공의 정의는 곧 출세 및 물질적 성취를 의미하는데, 이러한 형태의 성공이 주는 일시적 만족감은 대개 타인과의 비교에서 오는 우월감이다. 가령, 남들보다 얼마나 버는지, 얼마나 높은 지위인지, 얼마나 땅값이 비싼 동네에 사는지 등 따위를 성공의 기준으로 여기고, 자신이 소유한 것을 타인과 끊임없이 비교하는 천박한 풍토가 한국 사회에 만연하다. 한국 개발 연구원이 실시한 <비교성향의 명암과 시사점>에 따르면, 비교성향이 강한 한국인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는데, 이것은 모두 우리의 삶을 가속화하고 불행에 빠뜨리는 원인이다. 


- 비교성향은 물질주의 및 목표 지상주의 가치관과 관련이 있다

- 비교성향이 강할수록 집단 추종, 극대 주의, 이기주의 성향이 강하다.

- 비교성향이 강할수록 경제적 성과와 소비성향이 높다

- 비교성향이 강할수록 정신건강과 행복감 및 삶의 만족도가 낮다.

- 비교성향이 강할수록 주로 상대적 박탈감에서 한국인이 불행한 이유를 찾는다


이러한 비교성향은 '개천의 용 신화'를 대하는 한국인의 인식에서도 드러난다. 개천에는 용도 있지만, 피라미, 붕어, 개구리, 미꾸라지 등 다양한 생명체가 살고, 이들이 상생하며 조화를 이루고 살아가는 것이 자연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용을 성공, 승자로 규정하고 나머지를 싸잡아 실패, 패자로 치부함으로써, 용이 되지 못한 다수에게 좌절감 및 열패감을 느끼게 한다. 게다가 무너져버린 계층 이동 사다리 및 '수저론'이 사회적 공감을 얻고 있는 마당에, 여전히 과거 고도성장기를 향수하는 기성세대는 아이들에게 용이 될 것을 주문하고, 이는 비정상적인 사교육 열풍 및 생산 강박증 등의 부작용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스스로 아름다운 개천을 죽음의 전쟁터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한편, 이스털린의 역설은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기본적인 소득 수준을 충족하면 그 이후에는 소득 증가가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한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소득이 크게 증가했지만, 삶의 질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이를 뒷밤침하는 근거로, OECD가 매년 발표하는 더 나은 삶 지수 (Better Life Index)에서 한국은 항상 하위권을 차지하는데, 그마저 최근 들어 하향 추세를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2017년 조사에서 한국은 38개국 중 29위를 차지했는데, 특히 삶의 만족, 일과 삶의 균형, 공동체 등에서 현격히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이 결과를 보면 미래에 한국이 국민소득 4만 불, 5만 불을 달성한들, 우리의 삶의 질은 전혀 개선되지 않을 것임이 자명하다. 오히려 미래의 한국인은 더욱 빠르게 돌아가는 바쁨의 분쇄기에 시간을 갈아 넣고 생을 고갈시키며, 더 큰 우울감에 시달릴 확률이 높다.

출처: OECD, 연합뉴스

이러한 한국의 고질적 문제를 없애기 위해서는 가치관의 변화 및 제도적 개선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선 바쁨의 파괴가 수반돼야 한다. 물론 한국이 단숨에 변하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소유냐 존재냐'의 기로에서, 여전히 다수의 한국인은 소유를 택한 채 바쁨에 삶을 소진하는 방식을 택할 것이다. 게다가 사회 안전망을 확충하기 위한 정치권의 개혁도 안보나 성장의 중요도에 밀려 지지부진한 상태에 머물러 있을 확률이 높다. 다만,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물질주의 가치관에 피로감을 느끼고 기성세대의 논리를 거부하는 움직임은, 한국 사회가 서서히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혹자는 나라 안팎으로 위기인 마당에 느긋하게 여유 부리고 있을 틈이 어딨냐고 반박할 수 있다. 하지만 건국 이후 한국이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있는가? 바쁨의 지배를 받아들인 결과, 우리의 삶은 얼마나 피폐해졌는가? 오히려 바쁨의 파괴는 성과주의자들이 그토록 집착하는 성장에도 긍정적이다. 가령,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저자들은 국가의 성패는 제도의 착취성 및 창조적 파괴의 유무에 달렸다고 말한다. 즉, 사람들을 착취하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국가는 필멸하고, 포용적 제도하에 혁신을 장려하는 국가만 성공한다는 것이다. 


이는 바쁨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노동자의 시간을 착취하고 혁신 없이 남의 것을 모방하며, 바쁨을 성장의 동력으로 삼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창조적 파괴가 절실히 필요한데, 이는 단기성과만을 요하고 창의성을 저해하는 바쁨 사회에서는 결코 실현될 수 없다. 죽어야 산다. 한국은 그동안 경제발전을 이끌었던 바쁨과 구시대적 근면성을 온전히 버린 뒤에야,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사회에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개인이 각자의 리듬에 맞춰 삶을 살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이것만이 인간다운 삶, 높은 수준의 삶의 질을 향유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방향일 것이다. 꼭 '무엇'이 돼야 하나? 사회가 정한 획일적 기준이나 주입된 야망에서 벗어나, 그냥 자신만의 속도로 인생을 살 수는 없는 걸까. 한국 사회가 '야망 없이 살자는 야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한다. 이글이 우리의 삶을 갉아먹는 바쁨의 지배에서 벗어날 대안을 함께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데미안>에 나오는 다음의 구절로 글을 맺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길의 추구, 오솔길의 암시다. 일찍이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 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어떤 사람은 모호하게 어떤 사람은 보다 투명하게, 누구나 그 나름대로 힘껏 노력한다. 누구든 출생의 전제, 시원의 점액과 알 껍질을 임종까지 지니고 간다. 더러는 결코 사람이 되지 못한 채, 개구리에 그치고 말며, 도마뱀에, 개미에 그치고 만다. 그러고 더러는 위는 사람이고 아래는 물고기인 채로 남은 경우도 있다. 그러나 모두가 인간이 되려고 기원하며 자연이 던진 돌인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모두 유래가 같다. 어머니들이 같다. 우리 모두는 같은 협곡에서 나온다. 똑같이 심연으로부터 비롯된 시도이며 투척이지만 각자가 자기 나름의 목표를 항하여 노력한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건 누구나 자기 자신뿐이다



++ 얼마 전 <바쁨의 해부> 원고로 출판사와 계약을 하게 됐습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면, 7월에 책이 출간될 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울러 책을 소개하는 채널 '21세기 살롱' 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굽신굽신

21세기 살롱 페이지 -> 유튜브페이스북인스타그램

영상 샘플

https://www.youtube.com/watch?v=zJMbuFp0-i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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