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처음은 언제나 눈부셨다

My Favourite Things

by 아침이




처음이란 얼마나 설레는 단어인가요. 첫 키스, 첫사랑, 첫 연애처럼 달콤한 이야기들이 아닐지라도요. 첫 아이의 첫걸음마, 태어나 처음으로 사귄 친구, 인생의 첫 해외여행 등 긴 인생 속 딱 한번 주어지는 '처음'이기에 소중하게 기억되는 평범한 날들이 있습니다.


기억 속 제 인생 첫 영화는 고전 명작인 '사운드 오브 뮤직'입니다. 제가 초등학생이던 시절엔 동네마다 하나씩 있던 비디오 대여점이 OTT를 대신했고, 주말 밤 TV에서 주말의 명화를 방영해 주는 걸 공테이프에 녹화해서 돌려보는 것이 유튜브 대신이었습니다. 벌써 20년 전의 일이 되었네요.


그 시절 아빠와 함께 본 첫 영화가 바로 '사운드 오브 뮤직'입니다. 아름다운 풍경과 노래를 모아놓은 영화 속 세계는 저를 한 순간에 매료시켰습니다. 저는 비디오가 닳도록 그러한 따뜻한 영화들을 보고 자라며 시네필이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제가 처음으로 자동차 극장에 간 것도 아빠와 함께였습니다.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휠체어를 타야 했던 아빠는 저와 많은 곳을 자유롭게 갈 순 없었지만, 덕분에 자동차는 아빠와 저의 추억을 가득 담은 곳이 되었습니다. 버거킹이 동네에 처음 생겼을 때 아빠와 함께 햄버거를 먹은 곳도 자동차 안이었고, 야자를 마치고 나면 교문에서 매일같이 저를 기다리고 있던 것도 아빠의 차였습니다. 서울로 올라가 첫 자취를 시작할 때에도 서울까지 제 짐을 옮겨준 것 아빠의 차였고, 첫 운전대를 잡을 때에도 아빠와 함께였습니다. 자동차 하나만으로도 아빠와 함께한 수많은 처음의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아빠와 함께 간직한 처음의 기억들이 늘 따뜻한 것만은 아닙니다. 아빠가 폐암 의심 소견을 받고 대학병원으로 정밀 검사를 받으러 올라왔을 때, 태어나 처음으로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어 의사 선생님을 만났고, 태어나 처음으로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병원 로비에서 목을 놓아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태어나 처음으로 아빠의 당황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다인실 병원 보호자 침대에 누워 누군가의 병간호를 했던 것도 아빠와 함께 한 것이 처음이었고, 1인 병실에서 누군가의 임종을 지킨 것 역시 처음이었습니다.


아빠는 저에게 삶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알려주었고 동시에 슬픔과 상실이 무엇인지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지만 아빠가 저에게 주신 것 중 나쁜 것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개척교회 목사 가정이었던 저희 집은 평범하게 가난했습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고 자란 저는 그런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품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교원대를 가서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거나 어서 빨리 공무원이 되어 부모님을 안정적으로 모시길 추천했습니다. 오직 아빠만이 내가 원하는 것을 하라며 서울로 진학하는 것을 응원해 주셨습니다. 아빠는 내 세상의 시작이었고 내 세계를 넓혀준 사람이었습니다.



아빠가 그리울 때면 가끔씩 어릴 적 앨범을 들춰보곤 합니다. 아빠가 어깨 위에 올려놓고 있는 아주 아기 때의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얼굴이라던가, 아빠의 목을 끌어안고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행복하게 웃고 있는 유치원생 때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행복을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사진 속 아빠 얼굴 역시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한 표정입니다.


저 역시 아빠의 세상이었고 아빠의 세계를 넓혀준 존재였음이 분명합니다. 이제와 물어볼 순 없겠지만요.


그러고 보니 떠난 이를 그리워한 것도 아빠가 처음이네요. 전하지 못한 말들이 너무 많이 남아 사무치게 아쉬운 것도, 기댈 곳이 필요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도요. 후회는 언제나 늦지만 그래도 언젠간 다시 만날 날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나의 영혼이 육신을 떠나고 어디론가 가게 된다면 그곳에서 처음으로 마주하는 것이 아빠의 얼굴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태어나 처음으로 아버지라 불러 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어딘가의 끝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면, 부디 많이 그리웠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