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를 지우고 사랑을 담아
아빠 안녕하세요.
저예요 아빠 딸. 오랜만에 쓰는 편지네요. 생각해 보면 어버이날이나 아빠 생일에 짧게 쓴 편지가 전부였던 거 같아요. 아빠가 읽지 못 하는 때가 되어서야 왜 이렇게 편지를 쓰고 싶은지. 정말 이상하죠.
그런데 참 재밌는 건 저도 아빠한테 받은 편지가 없더라고요. 아무래도 제가 아빠 딸은 맞나 봐요. 엄마는 맨날 부녀가 똑같이 마음이 차갑다고 서운하다고 했었잖아요. 그때는 왜 엄마는 말로 사랑을 표현하길 바라는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막상 떠나보내고 나니 더 자주 사랑한다고 말하고 고맙다고 말하지 못한 게 생각이 나더라고요. 정말 바보 같죠.
아빠, 사전에서는 사랑의 뜻을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다.’라고 말해요. 사전의 정의를 빌려오자면, 아빠는 저를 참 많이 아끼고 귀하게 여겨주셨죠. 제가 집에 내려가면 아빠는 역까지 꼭 저를 데리러 왔었잖아요. 그때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빠가 보여준 사랑이라는 걸 이제야 알아요.
올해 설에는 작은 아빠 댁에 갔어요, 버스에서 내릴때 쯤에 갑자기 눈이 펑펑 내렸어요. 늦은시간에 택시도 없고 우산도 들고있지 않아 버스에서 내리면 어떻게 가야할지 조금 난감했어요. 작은 아빠께 데리러 와달라고 하면 되는건데 그 말을 하기가 왜 그리 어려운지. 그때 저는 아빠가 저에게 주셨던 사랑을 떠올렸어요.
아빠는 제가 도착하는 시간이 몇 시건 꼭 먼저 와서 주차장에서 절 기다려 주셨잖아요. 날씨가 궂은날 조차 한 번도 제가 아빠를 기다린 적은 없었어요. 무심하게 넘겼던 아빠의 그 기다림이 아빠에겐 어떤 시간이었을까요. 얼마나 일찍부터 와서 어떤 마음으로 무심한 딸을 기다리셨을까요. 물어볼 곳이 없다는게 서글퍼요.
한 번은 집에 가던 길에 아빠가 길거리 도심 화단을 보고 그런 말을 하셨었죠.
‘아빠 눈에는 저 꽃보다 네가 더 예쁘고 귀하다.’
알록달록한 꽃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던 보라색 팬지꽃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그 때 제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이제 떠오르지 않지만, 그 순간 느꼈던 기분은 마음속에 남아있어요.
아빠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 제일 로맨틱한 분이세요. 아빠만큼 저를 사랑해 주는 사람, 또 만날 수 있을까요?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아빠는 뭐라고 대답 하셨을까요?.우리 이런 말들을 나눈 적이 거의 없어서 상상이 되질 않아요. 무뚝뚝한 딸이라 미안해요. 그러고보니 아버지란 말도 한번도 뱉어본 적이 없네요.
사실 존댓말도 잘 쓰지 않았죠. 아빠는 나에게 친구 같았고 편했고 기댈 수 있는 언덕이었어. 지금도 사는 게 벅찰 때면 아빠가 그리워. 그런데 아무리 기억을 뒤적 거려봐도 고마워,사랑해,보고 싶었어 라는 말들보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짜증 냈던 날들이 더 많았던 것 같아. 그게 너무 속상해.
아빠 잘 지내? 밥은 먹었어? 아픈덴 없고? 그런 평범한안부조차 자주 하지 묻지 않았다는 게 너무 슬퍼. 아빠는 꼬부랑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내 옆에 있어줄 거라 믿고 있었나 봐. 보고 싶단 말조차 전하지 못할 날이 올 거라는 걸 몰랐어. 아빠가 아프고 우리의 이별이 예정된 이후에도 왜 좀 더 사랑하지 못했을까. 사랑을 받기만 하는 나쁜 딸이어서 미안해..
후회란 언제나 한걸음 늦고 늦은 만큼 아픈 건가 봐. 그래도 마음은 이어져있지 않을까. 아빠의 영혼은 하늘에서 안식을 누리고 있을 거라 믿어. 잘 지내야 해 나도 잘 지내볼게.
사랑을 담아,
아빠의 하나뿐인 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