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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효신 Feb 04. 2022

자기 전 삶의 모양새 그리고 밍밍한 평화

요즘 저는 아주 늦게 잠이 들고 있어요. 새벽 3시에서 4시쯤 자는 것 같아요.

저녁이 가까워올수록 하려던 게 생각이 나고 하고 싶은 마음이 들거든요. 시간은 어느새 밤을 지나고 밤의 시간은 정말 빠르게도 흐른답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면 아주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해요. 향기로운 바디로션을 바르고 스트레칭도 쭉쭉 해준답니다. 오늘도 컴퓨터 앞에 오래오래 앉아있던 온몸이 뻐근한 나를 위해서요. 그리고는 물주머니에 넣을 물을 커피포트에 데워요. 공기는 약간 쌀랑하면서 침대 안의 따뜻한 온기의 대비를 퍽 좋아하거든요. 따뜻한 물주머니를 안고 그냥 잠에 들어도 되지만 왠지 아쉬운 마음입니다. 그래서 자기 전에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원래 소설을 거의 읽지 않았는데요. 독일에서 오래 살다 보니 이 나라 특유의 무미건조함이 물드는 것 같아 최근 읽기 시작했어요. 오랜만에 고른 소설은 에쿠니 가오리의 도쿄타워입니다. 아주 오래전 그녀의 소설을 읽었었는데 줄거리와 책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좋았다는 감정이 남아있어서요. 그녀가 쓴 책을 훑어보다 도쿄타워라는 제목에서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궁금해서 아무 내용도 모른 채 고르게 되었어요. 아주 천천히 하루에 조금씩 읽고 있어요. 지금 이제야 반 정도를 읽었나 봐요. 

 어제 새벽, 자기 전 한 챕터를 읽고 나서 문득 무언가를 깨달아 메모장을 켰어요. 대단한 건 아니고요. 지금껏 왜 소설을 읽지 않았는지 그리고 왜 다시 소설을 읽기 시작했는지 알게 됐달까요.   

예전에는 삶이 너무 복잡했거든요. 너무 많은 생각과 고민에 잠을 뒤척이고 흘러내리는 감정들에 주체할 수 없었어요.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 그게 뭔지 알기 위해 도서관에서 철학책이란 철학책은 다 빌려서 읽었던 것 같아요. 어려운 단어와 개념 그리고 그들의 사상에 감탄하기도 하고 경외롭기까지 했어요. 십 대의 끝 무렵부터 이십 대 초반까지 복잡하고 어려운 나를 끌어안으며 책을 읽고 읽고 또 읽었던 시절을 보냈어요. 지금 와서 생각하는 건 그 시절 나는 나를 그토록 이해하고 싶었나 봐요. 그런 혼란스러운 시기를 지나(물론 폭풍 같은 마음과 격정적인 두려움에 힘들었던 시기도 (오래) 거쳤지만요.) 모든 게 잔잔한 날이 찾아왔네요. 서른 살이 되는 기점으로 이런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 것 같아요. 물론 그 안에도 파도가 치는데요. 예전만큼 높고 낮음이 극명하지는 않아요. 

 어제 소설을 읽다가 소설 안에 저런 복잡 미묘한 감정들과 마음이 요동치는 삶을 보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미칠 듯이 읽었던 철학책들에 어째서 흥미를 잃었는지, 소설은 왜 10년 만에 다시 읽게 되었는지, 왜 한국 드라마를 최근 보게 되었는지 궁금해졌어요. 그리고 지금 내 삶의 모양새를 찬찬히 보기 시작했어요. 집에서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하고, 수업은 거진 온라인으로 들으며 자기 전에는 소설을 읽고 지루한 게임을 하고 잔잔한 재즈를 들으며 잠에 들어요. 이 소설처럼 관찰자 입장으로 내 삶을 들여다본다면 정말 밍밍하겠다 싶어요. 그런데요. 저는 이게 너무 좋아요. 


 ' 언젠가부터 어려운 말과 단어와 생각을 피하기 시작했다. 그냥 빙빙 둘러대는 어렴풋한 말들 같았다. 무거운 활자와 일상에서 쓸 일이 없는 어색하고 어려운 단어를 남용하다가 결국은 자신의 할 말을 잃어버리고야 마는 미로에 갇힐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간결하고 단순한 언어를 소비한다. 이제와 알게 된 건 복잡한 감정과 어지러운 삶에 작별을 고하고 싶었다는 것' 이 뒤에 이어 글을 마저 썼어요. '밥에 물을 잔뜩 말은 듯 밍밍한 삶이지만 나는 이런 밍밍한 평화가 좋다'


 내 삶이 간결해지니 다른 이의 삶이 궁금해졌어요.

제 마음이 복잡하고 혼란스럽고 두려움에 갇혀있을 땐 다른 이의 마음과 생각을 이해하고 공감할 여유가 없었거든요. 약간은 무미하기도 하지만 잔잔한 평화를 찾은 뒤 소설을 읽기 시작하고 드라마도 보기 시작했어요. 당신의 마음과 삶은 그랬군요. 그런 감정이 들었었군요. 하며 다른 사람의 삶과 세계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요즘입니다. 그리고 문득 브런치 이웃님들의 자기 전 삶의 모습이 어떤지 궁금해졌어요. 그래서 글을 쓰게 되었나 봐요. 하루의 일상을 어떻게 마무리하시는지 각기 다른 삶의 모양 조각을 알고 싶어 졌어요.


잠에 들기 전 새벽의 모습
자기 전 하는 지루한 게임

남들이 보면 진짜 지루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게임인데요. 화려한 그래픽이나 소리효과가 없어서 약간은 조잡해 보이지만 투박해서 전 좋더라고요. 각각의 병을 같은 색으로 맞춰야 해요. 색을 맞출 때 물처럼 또로록 흐르는데 그게 저는 그렇게 잔잔하고 평화롭더라고요. 소설 한 챕터를 읽고 이 게임 한 레벨 통과하고(어려워져서 통과 못할 때도 왕왕 있음) 잠에 듭니다. 

정말 오랜만에 탄 s-bahn에서 풍경을 지나며 요즘 제 삶의 색과 비슷한 것 같아서요. 조금 더 밝고 화사하면 좋겠지만 일단 지금도 전 좋습니다. 그리고 그런 날이 오긴 하겠죠. 뭐.


https://www.youtube.com/watch?v=N9qBsmZnB5w

요즘 듣는 좋아하는 노래를 나누며 오랜만의 글, 여기서 마칠게요. 

다들 무탈하고 평화로운 2022년이 되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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