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와 논문 그리고 졸업
2025년에는 글을 하나도 안(못) 쓴 줄 알았다.
그런데 올해 2월에 그래도 두 번은 썼더라.
이곳에 글을 올릴 때마다 늘 같은 다짐을 한다. '이제부터는 자주는 아니더라도 꾸준히 써야지.' 그런데 신기하게도 브런치에 다시 들어와 보면 반년쯤 훌쩍 지나 있다. 저번 글을 올린 2월의 나는 롱패딩과 목도리에, 입김을 불며 그림을 전시장에 옮기고 있었는데, 그 장면이 지금은 정말 오래된 과거처럼 느껴진다.
그 사이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하루하루를 우다다다 달린 것 같은데, 돌아보면 몇 년쯤 지난 듯하다.
올해 겨울 학기에 졸업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3월부터는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퇴근 후에는 새벽까지 (해뜨는 것을 늘 보고) 책상 앞에 앉아, 쓰고 또 쓰고, 다시 쓰고 또 쓰는 시간을 보냈다. 학교 수업, 일, 그 외의 시간은 모두 논문을 썼다. 쓰면서 머리를 쥐어뜯는 상상을 수도 없이 했다. 그렇게 6월,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논문을 끝내고 드디어 제출했다.
아주 찰나의 자유를 맛보고 일주일 뒤, 갑자기 코피가 쏟아졌다. 독일에 와서 첫 코피다.
어릴 때 코피가 너무 많이 나서 이비인후과에서 불로 지진 이후로 코피 난 적이 거의 없었는데 말이다. 긴장 속에서는 아무렇지 않다가 긴장이 풀려 마음을 놓는 순간에서야 몸에 반응이 온다. (다행히 코피 말고는 아프지는 않았다.) 아 - 아름다운 계절 봄을 느껴보지도 못한 채 3,4,5,6월이 사라졌다.
논문이 끝나니 곧바로 여름. 학교 룬드강 전시를 준비하고 또 마치고 새로운 작업 스케치들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4월에 아틀리에도 이사했었네. 이번에 감사하게도 아틀리에 장학금 또 받았는데 아쉽게도 다른 호로 옮겨야 했었다. 그래서 2년 동안 정든 아틀리에 잘 정리하고 새 아틀리에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그래도 같은 층에 있어서 그나마 수월했다. 그래도 이사는 이사여서 꽤나 피곤했다는...
무튼 그렇게 (어느새 후다닥) 8월이 되었고, 짧게 여름휴가도 다녀왔다.
(이 이야기는 잊기 전에 따로 글을 써야겠다. 너무너무 행복했던 크레타섬 여행!)
바쁜 와중에도 이상하게 9월이 되자 한국이 너무 가고 싶었다. 한국 안 간지도 꽤 되었고 그냥 뭔지 모르겠지만 무엇인가가 그리웠다. 2주 동안 비행기표만 들여다보며 계속 고민했다. 졸업도 앞두고 해야 할 작업도 산더미인데… 그러다 결국 내 표 대신 엄마의 비행기표를 끊어버렸다.
얼마 전 통화에서 내가 “한국 못 가면 엄마가 놀러 왔으면 좋겠네”라고 했더니, 엄마도 “그러면 좋겠다~” 하고 웃으셨다. 우스갯소리인 줄 알았는데 '엄마 나 엄마 비행기표 샀어. 놀러와' 내가 정말로 표를 끊어 통보하니 엄마도 조금은 당황하신 듯하다. 하하핫. 아무튼 9월 중순쯤, 엄마가 열흘 정도 오신다. 내가 이곳에 산 지 10년 만에 처음이다. 흑흑흑 ㅠㅠ 딸이 예술가로서 든든히 자리 잡아 풍족한 여행을 만들어드리고 싶지만, 현실은 나의 모든 (하지만 소소한) 수입은 학업과 작업비를 보태는데 늘 간당간당한 삶이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너무, 너무 설렌다!!!
일단 디플롬 전시를 위해 재료를 짜르륵 주문해 두었다. 이번 주에 재료가 도착하면 캔버스 몇 개를 짜두고, 엄마가 오기 전까지는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오시면 잠시 놀러 다니다가, 다시 겨울까지 주구장창 그림을 그리며 올해가 마무리될 것이다.
2025년은 끊임없이 해야 할 일들로 가득하다. (졸업 막바지라 당연한 일이겠지만.) 졸업하고 나의 삶은 어떻게 흘러갈까, 그런 걱정과 고민할 틈조차 주지 않는다. 그런데 다행인 건 이 바쁨이 정신적인 압박이나 부담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냥 해야 할 게 많을 뿐... 하나씩 해내면 된다. 그래서일까, 마음은 이상하게도 그 어느 때보다 고요하다.
그나저나, 2025년이 가기 전에 기회가 된다면 12월쯤 첫 개인전을 하고 싶다. 어떻게 될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리고 이번에는 한 달에 한 번이라도 꾸준히 글을 써보려 한다. 그림으로만 생각하다 보니 이미지를 떠올리고 기록하는 건 점점 수월해지는 반면, 글은 버벅거리기 시작했다. 엉켜 있는 무언가를 쭉쭉 펴고 싶다.
2025년 상반기 + 8월까지 하반기 근황,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