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수성을 잃지 않기 위하여

by 어진

며칠 전부터 '감수성'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계속 맴돌고 있다. 사춘기 소년 시절에도 부끄러움을 느낄 법한 단어가 새삼 떠오른 이유는 왠지 나이가 들어 갈수록 감수성이 점점 메말라가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 사고를 요구하는 시대에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모호한 느낌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불성설이지만 그럼에도 사람을 기계가 아닌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나 자신과 타자를 향한 감수성이 아닐까 싶다.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사회와 교회를 향한 피로감이 잔뜩 누적되었지만 어떻게 털어낼 도리가 없다. 가짜 뉴스를 만들어서 공포를 조장하고 누구라도 자유로울 수 없는 원리 원칙으로 혐오와 배제, 증오심만이 가득한 이 시공간에 감수성이 들어설 여유가 사라져 버렸다. 따스함은 그저 '응팔'같은 지나버린 과거의 산물인 걸까?! 감수성을 이야기 하기에 세상은 너무 딱딱하고 날카로워진 것만 같다.




'call me by your name'에서 올리버를 잊지 못하는 엘리오를 향해 아버지가 들려주는 대사가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난 네가 부럽다. 내 위치에 있는 부모 대부분은 이런 일이 없길 바라겠지.

아들이 난관을 극복하길 바라며 기도했을 거야. 하지만 난 그런 부모가 아니야.
우린 빨리 치유되려고 자신을 너무 많이 망쳐.

그러다가 30살쯤 되면 파산하는 거지.

그러면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줄 것이 점점 줄어든단다.

하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게 만들다니

그런 낭비가 어디 있니?
어떤 삶을 살든 그건 네 마음이다. 다만 이것만 기억해.

우리 몸과 마음은 단 한 번만 주어진 것이고 너도 모르는 사이

마음이 닳고 닳게 된다는 걸. 지금은 슬픔과 아픔이 있어.

그걸 없애지 마라. 네가 느꼈던 기쁨도 말이야."

나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모르겠다. 자신 있게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듯이 말하는 이들을 보면 때로 두렵기까지 하다. 예전에 품었던 확신들도 희미해지고 새로운 의문들이 자꾸 돋아나지만 누군가에게 속 시원히 물을 수조차 없다. 내 스스로가 잃지 않았으면 하는 감수성 중의 하나는 부끄러움이다. 절대자를 향해, 세상과 타인을 향해, 내 자신을 향해 부끄러움을 잃어버리는 순간 나 자신이 괴물이 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