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by 어진 in lisbon.
습하고 무더운 토요일 밤, 아내와 딸 혜원이와 함께 오랜만에 난지한강공원으로 산책을 갔다. 접근성이 썩 좋지 않아서인지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다른 한강공원보다 살짝 어두운 느낌이 들었지만 오히려 호젓이 걷기엔 분위기가 차분하고 좋았다. 새로 짓고 있는 월드컵대교를 지나 불빛이 반짝이는 성산대교 방면을 향해 천천히 걸으면서 일렁이는 한강물과 그 위에 떠 있는 요트도 보고 벤치에 잠시 앉아 하늘을 보며 ‘구름이 조금만 적었더라면 별도 보았을 텐데..’ 라며 아쉬움도 전했다.
목이 마르다는 혜원이 말에 근처 편의점으로 가서 탄산수와 군것질거리 몇가지를 샀고, 발걸음을 돌려 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돌아오면서 혜원이에게 오늘 친구들과 잘 놀았냐고 물어보니 갑자기 이런 말을 한다.
- 아빠, 저는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성격이 달라지는 거 같아요.
- 응? 왜 그렇게 생각해?
- 어떤 친구를 만나면 나도 막 신이 나는데, 어떤 친구를 만나면 차분해지기도 하고.. 그런데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는 친구를 만나면 어색해서 그 분위기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아내가
- 그건 혜원이가 상대를 잘 배려하고 공감하기 때문일 거야. 상대에 따라서 그 특성을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주려고 하기 때문에 그 부분이 어렵다고 생각되는게 아닐까?
아내의 말에 나도 한마디 거들면서
- 맞아 혜원이가 또래에 비해 맘이 넓어서 다른 친구들을 잘 품어줄 수 있기에 이런 고민도 하는 것 같아. 그 부분은 아빠를 참 꼭 닮았네..! 라고 하니 아내가 슬쩍 눈을 흘긴다.
- 또, 또, 아빠 자랑 시작되었다.!
아내의 놀림 정도는 가볍게 넘기고 다시 혜원이의 이야기로 들어갔다.
- 혜원아, 누군가를 이해하고 품어주기 위해서는 수많은 경험과 노력이 필요해. 그리고 지금 혜원이가 어렵다고 느끼는 이런 감정들은 더 성숙해지는 과정으로 보면 좋을 것 같아. 예를 들어서 아빠와 혜원이 사이만 해도 혜원이가 3살때, 7살때, 10살과 14살의 혜원이가 다른 만큼 계속해서 아빠는 3살의 혜원와도 맞춰주고, 7살, 10살과 지금의 14살 혜원이와 맞춰주기 위해서 노력하는 거잖아. 만약 이런 노력이 어렵다거나 왜 내가 꼭 맞춰야만 하지? 라고 생각해서 혜원이에게 ‘이제부턴 너가 마흔이 넘은 아빠한테 맞춰!’ 라고 한다면 그럴 수 있겠니?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혜원이가 천천히 고개를 젓는다.
- 그렇다고 무조건 상대에게 맞추기만 하라는 말은 아니고 혜원이가 스스로의 중심은 잘 잡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하는 말인데.. 혜원이는 지금도 너무 잘 하고 있지. 아빤 그런 혜원이가 참 대견하고 자랑스러워.
셋이서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 새 주차장에 도착했고 이내 차에 올라 시원하게 에어컨을 틀었다. 중학생이 되어 이제 한학기를 막 마친 혜원이가 제 나이에 맞는 건강함을 간직한 채 잘 자라주고 있음이 감사했고, 모든 부모가 그렇듯이 나와 아내도 혜원이에게 늘 그 자리에 있는 나무처럼 언제든 와서 기대기도 하고 그늘이 되어주기도 하는 존재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누구나 홀로 단독으로 설 수 없는 존재이니 여러 상황과 환경의 지배를 받기도 하고, 마치 아이가 엄마의 젖을 빨듯 그렇게 타인에게서 에너지를 흡수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조금 더 어렸을 때는 나의 생존을 위해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낭비하지 않고, 물질이나 시간을 움켜쥐고 살아갈 수 있을까가 중요한 관심사였다면 이제는 자신을 내어주기 위해 존재하는 삶의 양태가 있음을 조금씩 알아간다고 해야될까? 아무튼 나 또한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고 익숙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우치고 있는 중이다. 요세미티국립공원에서 100m가 넘는 나무가 뿌리 채 뽑혀 있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족히 지름 10m는 넘을 것 같은 뿌리의 크기에 놀랐는데 적어도 나는 내 삶의 뿌리를 어느 정도 견고히 내려야 그 자리에 굳건히 서있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