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보에 - 양홍원

대한민국 힙합

by 작가

지금까지 살아가며 한 앨범의 모든 곡이 인상 깊게 다가왔던 적이 없었다. 국악과 트로트를 제외하고는 모든 음악들을 다양하게 듣지만, k-pop 씬의 앨범들은 수록곡보다는 타이틀 곡에 훨씬 신경을 쓰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pop 씬의 앨범들은 그런 경향이 좀 덜했지만 모든 수록곡들이 완벽히 나의 취향에 맞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앨범은 모든 수록곡들이 나를 만족시켜 주었다. 그래서 적어도 지금까지의 인생에서는 이 앨범이 내 기준 최고의 앨범이다.


전반적으로 곡들의 분위기를 표현해 보자면 몽환적, 어두움, 탁함 정도가 될 것 같다. 전체적인 사운드가 요즘 유행하는 EMO랩의 분위기를 따라가는 것 같지만 복제품의 느낌은 전혀 아니다. EMO랩은 곡에서 감정적인 분위기가 훨씬 더 강하고 청자들에게 그걸 전달하려는 느낌인 반면에, 오보에는 절제된 감정을 "담아낸" 느낌이다. 처음 들었을 때도 전율이 흐르는 느낌이라기 보단, 계속 들으며 새로운 느낌이 느껴지는 곡들이다. 음악의 경우에도 많이 들으면 질린다. 하지만 적어도 처음 이 앨범은 접한 뒤 2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들을 때마다 신선한 느낌을 안겨준다.


이 앨범이 유난히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평이 좋은 이유가 있다. 바로 가사다. 모든 곡들의 가사가 굉장히 추상적이다. 마치 시를 읽는 것처럼, 표면적이고 명확한 뜻을 전하는 게 아니라 소위 말해 "뭔 소리지?"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가사들이다. 이런 가사의 느낌은 멜로디의 몽환적인 느낌과 결합되어 곡의 분위기를 한층 더 심화한다.


흔히 '국힙'이라고 하는 요즘 한국의 힙합씬은 하락세를 걷고 있다. 일단 10개가 넘는 시즌동안 달려온 '쇼미 더머니'의 잠정적 방영 중단, 갈수록 획일화되어가는 래퍼들의 스타일 등의 측면만 보아도 대한민국 힙합씬은 현재 위기다. 나는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선 힙합의 이미지 개선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은, 사람들의 일상에서 부수적인 측면에 자리 잡혀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리 중요한 포지션은 아니지만 문화에서 절대 빼놓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 또 음악이다. 이런 음악의 이중성 때문일까, 생각보다 리스너들의 취향은 확고하다. 그런데 과연 힙합을 모르는 사람들이 접하는 힙합의 외적인 측면은 긍정적일까? 불필요한 비속어가 난무한 가사들, 무엇을 시사하는지 모르겠는 허무맹랑한 가사들, 끝없는 사건사고와 미디어에 유통되는 모습들. 힙합을 즐겨 듣는 내가 보아도 부정적으로 비친다. 무언갈 겉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대부분은 외적인 측면이 주는 인상이 그것의 본질까지 정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별로 생각을 안 해도 되는 분야에서는 말이다.


이러한 이미지를 탈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난 그중에 첫 번째가 가사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가사를 보며 숨은 뜻을 생각하고 멜로디가 크게 꽂히지 않더라도 가사가 공감이 되어서, 가사의 언어적 아름다움 때문에 노래를 듣기도 한다. 힙합과 랩의 가장 큰 장점,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는 것이다.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말들을 담을 수 있고, 이것이 보다 압축적인 내용을 풀어낼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현재 한국힙합은 이러한 장르의 장점들을 묵살하고 점점 획일화되어가고 있다. 음악과 같은 예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독창성이다. 하지만 독창성을 중시하진 못할 망정 안 좋은 쪽으로 다 비슷해져가고 있으니 위기가 찾아올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정말 힙합이라는 장르를 순수하게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오보에 같이 독창적이고 힙합만의 매력을 보여주는 앨범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물론 예술에 정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혼자 만들고 혼자 들을게 아니라면 대중성에 관한 깊이 있는 고민을 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훌륭한 앨범을 만들어주신 양홍원 및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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