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미스터리, 미스터리

by 뭉클


<계간 미스터리> 2024 봄호는 독자 자문위원 성격의 서포터즈를 모집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봄에 나는 없었다> 그리고 존 스칼지의 3부작을 시작으로 영국과 일본의 흡입력 끝내주는 추리 소설들을 찾아 도서관을 뒤지던 터라 망설임 없이 지원했었고 새롭게 맡게 된 임무(?)에 조금 들떠있었다.




수업 전 쉬는 시간 10분간 특집 르포르타주 <인스타그램 주식 여신>을 읽었는데 '푼돈 욕심 없다'던 주식 여신, 두 아이의 엄마이며 미모와 재력을 모두 갖춘 여우비의 마지막이 대구교도소라는 점에서 주변 온도가 1도는 낮아진 것 같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데번 주 스티컬헤이번의 니거 섬에 등장인물들이 하나씩 모이는 장면을 읽거나 불륜 중에 낸 교통사고를 은폐했지만 어쩌다 보니 본인도 모르는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몰리게 되는 영화 속 스토리에 몰입했다.


묘하다. 추리소설이 나를 단련시킨다는 기분.


SF가 작은 별 지구를 조명하고 머나먼 행성을 옆집처럼 상상하면서 나를 겸손하고 대범한 우주 먼지로 만들어 준다면, 추리소설은 대체로 내게 '이 정도로는 두렵거나 놀랍지 않은' 상태로 만들어줬다. 복도를 걸으면서 생각한다. 아주 안온한 하루다. 새벽에 비가 왔고 꽃샘추위로 서늘해진 가운데 하늘은 칙칙했지만 '뭐든 상대적이야'라고 중얼거리며 걸었다.


몇 권 더 읽다 보면, 아니 몇 꼭지만 더 읽어도 내 하루에 숨어있던 추리소설의 프리퀄이나 스핀오프의 한 씬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아니, 발견하면 큰 일이고 상상. 나는 제 몸보다 훨씬 큰 떡볶이 코트를 걸친 가연이를 보고 헤르미온느를 떠올리거나 하이얀 유광 봄버 착장을 한 수연이를 보고 '오! 마이클 잭슨 같아'라고 말하는 엉뚱 면이 있으니까.



폭력적인 드라마나 공포 영화, 재난 영화를 즐겨 보는 게 정신적으로 유익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시카고대학교의 콜턴 스크리브터가 주도한 연구에 따르면 암울한 작품을 즐겨보는 사람들은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기간에 정신적 스트레스를 덜 받았다고 한다. 어두운 미스터리에 노출되며 "현실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효과적인 대처법을 연습"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때로 가상의 트라우마는 우리가 현실의 트라우마에 더 잘 대처하도록 돕는다.
<지루하면 죽는다), 조나 레러



어쨌든 모든 게 미스터리. 모든 이야기가 미스터리였다. 적어도 재미있는 이야기는 다 그랬다. <계간 미스터리>를 읽는 내내 몇 년 전 구독했던 민음사의 문예지 <릿터>도 떠올랐는데 문예지 특유의 감성을 대체될 수 없다고도 생각한다. 이 문예지를 읽지 않았다면 추리소설과 SF의 진입 장벽을 느꼈을 듯한데 어쩌면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인다.


추리소설과 SF를 읽으면서 쉴 새 없이 인문학의 흔적을 발견한다. 이제 시작이지만 간질간질 재미있는 마음으로 문학적, 철학적 경험을 하게 되면 기록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