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가구가 된 골칫거리 부레옥잠

해외 - 태국의 요타카 인터내셔널

by 소리빛

태국을 여행하게 되면 여러 탈 것들이 있는데 매연을 온몸으로 맞아가며 타야 하는 뚝뚝이(Tuk Tuk)와 썽테우(Songtaew)는 여행자라면 대부분 경험하게 된다. 이 외에도 기차와 보트도 재미있는 교통수단이다.


보트로 통학하는 아유타야 학생들

방콕에서 아유타야(Ayutthaya)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덜컹거리는 기차에 앉아 더운 바람 속의 시간들을 상상하다 보면 창 밖의 풍경과 함께 졸음이 쏟아진다. 그렇게 2시간가량을 달리면 아유타야 역에 도착한다. 아유타야는 짜오프라야 강(Chao Phraya R.)의 지류인 롭부리 강(Lop buri R)과 빠싹 강(Pa Sak R.)에 둘러싸인 섬이다. 섬 안에는 왓 마하탓(Wat Mahathat)과 왓 프라 씨 싼 펫(Wat Phra Si Sanphet) 등의 사원들이 있다. 빠싹 강을 건너려면 보트를 타야 하는데 아유타야 역 앞의 짜오 프롬 시장 (Chao Phrom Market) 근처에 비용 저렴한 보트 선착장이 있다. 근사하지도 낭만적이지도 않다. 마을 사람들의 이동수단이며 학생들의 통학 수단이기도 한 낡은 보트는 최소한의 엔진과 의자, 천막이 전부이다. 심지어 선장은 점심이 담긴 그릇을 무릎에 올려놓고 식사를 하며 운항한다. 친숙하고 편안한 광경에 웃음이 난다. 보트 너머 푸른 부레옥잠(water hyacinth)이 잔디처럼 깔려있다.


태국의 부레옥잠에 대한 이야기를 풀자면, 라마 5세 출라롱콘(Chulalongkon) 대왕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873년 15세의 어린 나이에 왕이 된 출라롱콘 대왕은 왕권강화와 근대화 개혁을 시도한 왕이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가 태국에 대한 욕심을 드러냈을 때 러시아 니콜라스 2세와 독일 카이저 빌헬름 2세를 만나 영국, 프랑스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한 외교를 펼친다. 그는 열강들 사이에서 진정한 독립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으로 개혁의 필요성을 깨달았고 직접 유럽을 방문하여 서양문물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무조건 적인 수용이 아니었다. 서양의 기술과 태국의 정신을 조화시켜 태국의 종교와 문화를 보존할 수 있는 범위에서 변화를 고민하였다. 그로 인해 태국은 고유한 주권을 지킬 수 있었으며 지금까지도 라마 5세 출라롱콘 대왕은 태국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대왕이라는 칭송을 받는 왕이다.


라마 5세 대왕의 통치 기간이었던 1901년, 왕의 궁전 정원수로 사용하기 위해 부레옥잠이 인도네시아에서 태 국으로 도입된다. 이후 번식력이 강한 부레옥잠은 홍수로 인해 주변 수로로 빠르게 확산되었고 태국의 강과 운하를 덮어버렸다. 수생식물들은 부레옥잠으로 인해 산소의 차단으로 인한 오염으로 죽어갔으며 보트의 이동을 방해하기에 이른다. 태국 정부는 부레옥잠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부레옥잠 요리와 동물사료, 의약품 개발 등에 고심하였다.


현재 태국의 푸미폰 아둔야뎃 (Bhumibol Adulyadej) 국왕은 라마 9세로 1946년 6월 9일에 왕위에 올라 지난 6월, 70주년을 맞았다. 세계 최장수 왕좌를 지킨 국왕이다. 그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로열 프로젝트 (Royal Project)는 막대한 왕실 재산을 농업과 지역 개발에 투자하여 경제를 활성화시킨 성공 사업이다. 버려지는 부레옥잠을 생산성 있는 재료로 재탄생시키는 작업도 로열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그동안 골칫거리였던 부레옥잠에 대한 생각의 전환을 시도하기 위해 태국의 많은 디자이너와 아티스트, 장인, 공예가들이 이 사업에 참여하게 된다. 그 결과 1986년, 부레옥잠은 친환경적인 재료로 인테리어 소품 제조에 활용되었고 자연을 담은 단순한 심미감은 세계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말린 부레옥잠 줄기로 만든 의자

그중 방콕의 스완(Swan Khongkhunthian) 디자이너는 요타카 인터내셔널(Yothaka Intenational)의 대표로 태국의 자연소재 전문 가구 디자이너이다. 1989년에 설립한 요타카 인터내셔널은 부레옥잠을 태국의 가구시장에 최초로 도입하였다. 동남아시아의 이미지를 디자인하여 중산층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한 독특한 수공예 가구를 생산하게 되었다. 요타카의 모든 모델은 스완 디자이너가 직접 디자인하며 작업에 관여한다. 매년 지속적인 모델을 탄생시키는데 그의 호기심 많은 상상력은 식물의 줄기나 잎 등의 자연재료와 사용하고 버려진 밧줄 등 재활용 소재까지 섭렵한다. 프랑스와 영국을 비롯한 유럽과 일본의 호텔, 규모가 있는 저택에서 그의 가구를 찾는다. 가격대를 살펴보면 공정에 비해 높지 않다. 수출한다고 하여도 인건비 등 제작비를 제하고 나면 남는 것도 없을 것 같다. 그만큼 그의 디자인은 단순하고 진솔하다.


요타카 인터내셔널의 스완(Swan Khongkhunthian) 대표

스완 대표의 갤러리이자 사무실은 방콕의 중심가에 있다. 사무실 입구에는 가구와 소품 제작을 위해 진행하였던 낡은 디자인 스케치와 부레옥잠, 얀 리파오(Yan Lipao), 파인애플 잎 등의 재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인품 좋아 보이는 멋쟁이 디자이너의 마인드를 짐작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는 태국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러나 경제가 어려워지는 요즘 그에게도 고민거리가 있다. 생산공장의 규모가 작아지면서 200명이 넘던 직원들도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에 의존하던 그의 회사도 경제 불황을 실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난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렵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나는 자연의 소재를 계속 사용할 것이고 재료의 질을 절대 낮추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생활은 변화하고 있습니다. 자연과 공감하며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나의 가구를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사용하는 재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조상들이 사용하던 것이지만 나의 디자인과 현대적인 기술력이 재료의 가치를 높이고 있습니다. 대량생산에 의존하여 디자인을 바꿀 생각은 없습니다. 나의 가구들은 모두 손으로 제작합니다. 그것이 나의 가구의 매력입니다. ”


파인애플 의자-red.JPG 파인애플 섬유지를 염색하면 다양한 색감을 낼 수 있다. 오렌지 컬러의 파인애플 섬유지 NUT Furniture



그의 가구 중에는 파인애플 섬유지로 만든 의자가 있다. 한 장 한 장의 파인애플 섬유지를 면으로 적층(積層) 압축하여 인체의 굴곡에 따른 유연한 가구 표면을 형성한 따뜻한 나무 표면의 느낌이다. 종이에 대한 소재의 활용은 그리 신선하지만은 않다. 아주 오래전 나일강 일대에서 무성하게 자랐던 파피루스는 약용이나 식용 외에도 신발, 옷, 가구, 배, 끈, 장식물 등으로 이미 다양하게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기원전 5세기에 쓰인 헤로도토스(Herodotos)의 기록을 보면 파피루스로 돛과 밧줄을 만들었으며 필기로 사용하지 않는 아랫부분은 구워서 먹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그는 파인애플 섬유지의 천연 색감과 질감, 두께 등을 분석하고 파악하여 종이가구계에 새로운 지평을 연 역할을 분명히 하였다. 무엇보다 태국 파인애플 농업의 고용 창출과 소득 향상에 기여했기에 그의 작업은 더 큰 의미가 있다.


회사 이름이 ‘요타카’인데 무슨 의미예요?

“요타카는 ‘하늘의 나무’라는 태국어입니다.”

태국의 스완 디자이너는 하얀 이를 보이며 수줍게 웃는다. 그는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자연을 닮은 그의 생각들이 날개를 달고 세상에 펼쳐지길 바란다.



위 글은 2016년 넥스트 데일리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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