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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빛 Feb 20. 2021

덜큰한 바다 꿀 생각에
통영 박신장으로

통영 굴

  

  콧등 시린 찬바람이 불면 노릇하게 절여진 배춧잎으로 굴을 감아 먹을 때이다. 전국적으로 굴 생산지 1위를 기록하는 통영. 오밀조밀 크고 작은 섬들이 모여 있는 바다. 박경리 추모공원에서 보이는 통영바다는 푸르다.


 연안(沿岸)의 인평동 길목에는 
굴껍질이 산을 이룬다. 



  어떤 것은 길을 따라 늘어선 모양이 담장처럼 멋스러워 보인다. 버리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나일론 줄에 꿰어놓은 굴껍질은 바다로 돌아가기 위해 잠시 대기 중이다. 4-5월, 봄이 되면 바다 어디쯤 굴 채묘(천연 또는 인공 종묘 생산의 한 과정)가 잘 되는 곳에 내려질 것이다. 바다 깊이 말뚝을 박고 굴껍질을 맨 굴 줄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단단히 부표에 고정시킨다. 부표는 굴 줄이 있는 곳을 표시할 뿐만 아니라 가라앉음 정도로 굴의 무게를 짐작하게도 한다. 통영바다에 흰 부표가 많은 이유이다.




  대체로 10월부터 굴 줄을 걷기 시작하는데 알이 작으면 해를 넘겨 2월까지 작업을 한다. 이른 아침 작업을 시작하면 점심때 끝난다. 굴 줄에는 해초와 홍합, 미더덕 등이 달라붙어 있다. 그것들을 제거하고 세척하여 굴껍질만 커다란 자루에 담는다. 


"통영 사람들은 모두 꿀이라고 합니다.
경상도 발음이 억세서 그런 것도 있고
 바다의 꿀이다 해서 그리 부릅니다.
꿀은 물이 들어가고 나가는 곳에서 단련시킵니다. "


  “우리는 꿀, 통영 사람들은 모두 꿀이라고 합니다. 경상도 발음이 억세서 그런 것도 있고 바다의 꿀이다 해서 그리 부릅니다. 꿀은 물이 들어가고 나가는 곳에서 단련시킵니다. 저기 줄을 맨 꿀 껍데기를 가지고 와서 30m 간격으로 꿀을 달아 키웁니다. 저 밑에 꿀 하나 떠 있는 곳에 부표에 하나씩 100m-200m, 열 개. 저건 양식면허가 있어야 하고 꿀밭이라고 하죠. 옛날에 멀리 조업 나갈 때 뱃일하면서 충무김밥 많이 먹었습니다. 김만 하나 싸고 그냥 김치, 오징어, 석박지 이런 거는 상하지 않으니까요. 요즘은 뭐, 간단하게 소주 한 잔 하고 끝날 일인데요.”


충무김밥과 석박지


  은하수산 김홍관(남, 58세)씨는 육지에서 농작물을 키우듯 바다사람들에게 바다는 밭과 다름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육지의 농작물을 키우듯이 성장촉진제를 주거나 동물사육 하듯이 사료를 주는 것은 아니다. 굴이 먹는 것은 바닷속에 사는 플랑크톤과 유기물이다. 바다에 두면 굴껍질에 자연 채묘가 되고 시간과 자연이 굴을 키운다. 그래서 바다가 깨끗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우리는 태풍이 가끔씩 올라와야 해요.
태풍이 바다 밑바닥까지 뒤집어주면 깨끗해지죠.
바다청소를 안 해주면 유독가스가 올라와서 굴이 잘 크질 않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자주 오면 안 되죠. 껄껄껄.”    


  굴껍질을 전문적으로 까는 곳, 박신장. 박신(剝身)은 껍질을 벗긴다는 뜻으로 굴껍질을 벗기는 장소, 굴껍질 까는 공장을 의미한다. 새벽 4시, 박신장에는 굴껍질 까는 아주머니들로 분주해진다. 작업에 집중하는 4-50명 아주머니들의 손은 날래다. 


박신장의 굴 껍데기 까는 작업 


  두 번의 손놀림에 상처 하나 없는 굵은 굴을 거친 껍질에서 떼어낸다. 짧은 무쇠 칼날은 줄눈을 정확히 찾아 윗 껍질을 젖히고 굴의 관자를 단숨에 떼어낸다. 필자는 굴눈이 어디 있는지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주머니들은 순식간에 한 바가지 가득 굴을 채운다. 이렇게 오후 4시까지 열두 시간을 서서 일한다. 무게에 따라 성과급을 받기 때문에 남들보다 부지런히 하면 그만큼 더 벌 수 있다. 각굴(석화)을 작업장 위에 쏟아내고 밀어내는 소리와 자그락 껍질을 까는 소리만 들린다.  


  “여 눈이 있어. 고기를 콕 찔러서 칼을 돌려.
알이 상하면 안 돼.
아이구, 이것도 한 철만 하니까 하는 거야.
좀 더 있으면 손 시룹고 문 열고 있으니 춥지.
그래도 일한 만큼 버니까 좋아.
 이리 벌어도 다 약값으로 드간다.”


  필자에게 입담을 늘어놓으시는 아주머니는 굴 까는 방법을 설명하면서도 손은 쉬지 않는다. 그녀의 단단한 어깨가 숙련된 솜씨임을 증명해 준다. 우리가 먹었던 굴 한 봉지에는 이들의 노고도 담겨 있었던 것이다.


굴 세척

  껍질을 제거한 굴은 세척작업을 해야 한다. 굴껍질을 깔 때 섞여 들어간 껍질 부스러기나 오물 등을 ‘쩍’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제거해야 온전한 상품이 된다. 싱싱한 굴들은 당일 오후 5-6시면 위판장에서 경매를 한다. 그리고 마트나 시장을 통해 우리의 식탁으로 올라오게 된다. 바다에서 우리의 식탁까지 오는 시간은 길어야 3-4일이다. 



  이제 우유빛깔 굴국밥을 먹으러 가보자. 그런데 통영에는 굴국밥이 흔하지 않다. 분명 몇 년 전만 해도 있었다. 이는 굴국밥보다 복국을 찾는 손님들이 많아지면서 생긴 현상이다. 그래서 결국은 굴국밥을 먹지 못했다. 대신 굴전과 굴무침, 굴숙회를 맛보았다. 먼저 생굴을 한 입 물어보자. 생굴이 볼록한 배에 담아두었던 덜큰한 바다를 뱉어낸다. 다음은 홀홀 불어 먹어야 하는 갓 익은 굴전이다. 고소함이 부추 향과 함께 계란 옷에서 터져 나온다. 굴 몇십 마리를 해치웠다.  


굴전
굴전
굴숙회
굴무침
굴 회


  검은색 테두리가 또렷한 굴이 맛있다는 식당 주인의 말을 듣고 나오는 길에 조선 칼을 판다는 트럭을 만났다. 문득 박신장의 아주머니들이 생각난다. 굴껍질 까는 칼은 대장간에서 만든 칼을 사용한다고 했다. 무쇠가 튼튼하고 오래가기 때문이란다. 무쇠처럼 단단한 그들의 삶처럼 통영바다의 청정함도 오래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도움 주신 분]

은아수산 김홍관(남, 58세)씨는 굴 채취에 대한 설명을, 홍덕수산 박신장에서는 사진 촬영을 협조해 주셨다. 굴향토집(문복선 여, 53세)에서는 굴요리 사진 촬영을 도움받았다.          


* 위 글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의 지역n문화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s://ncms.nculture.org/food/story/1894?_ga=2.54138472.1559705289.1613814797-477163452.1613098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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